"장덕수, 태평양전쟁은 성전…학병 동원 선전"

심정섭 식민지역사박물관 명예관장, 친일 기고문 공개
황국신민 의무 등 강조…해방 전후 행적 재평가 요구↑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2026년 03월 09일(월) 19:05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식민지역사박물관 명예관장인 심정섭씨가 9일 1944년 1월 발간된 잡지 ‘반도의 빛(半島 光)’에 실린 장덕수의 기고문 ‘출전하는 반도인 학도에게’를 공개했다. 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일제강점기 말기 태평양전쟁을 ‘성전(聖戰)’으로 미화하며 조선 청년들의 학병 지원을 독려한 장덕수(1895~1947)의 친일 기고문이 공개됐다. 광복 이후 정치권에서 활동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의 해방 전후 행적 전반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9일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식민지역사박물관 명예관장인 심정섭 사백(83·광주 북구)은 1944년 1월 발간된 잡지 ‘반도의 빛(半島 光)’에 실린 장덕수의 기고문 ‘출전하는 반도인 학도에게’를 공개했다.

조선 황국신민화를 목적으로 조선총독부 후원 하에 운영된 반도의 빛(일제 말기 최대 잡지)에는 당시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교수였던 장덕수가 3쪽 분량의 기고문을 통해 대평양전쟁을 “인류 역사의 신기원을 여는 전쟁”으로 규정하며 참전을 독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 “이 전쟁에 참여하는 제군이야말로 세계사 창조의 성스러운 역군”이라며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이 황국신민의 의무라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장덕수는 1940년 국민총력 조선연맹 참사 겸 후생위원,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등을 맡아 서울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원병 격려 연설을 했고, 1943년에는 이광수와 함께 학병 지원을 선전했다.

같은 해 11월22일자 매일신보에 게재한 ‘학도열의에 감사’에서는 일제의 특별지원병제 실시를 찬양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삼천리’, ‘동양지광’, ‘신시대’, ‘조광’ 등 여러 매체에 글을 발표하며 황국신민화 정책을 옹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1895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장덕수는 1909년 재령 보강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김구 선생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1916년 일본 와세다대 정경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미국 오리건대와 컬럼비아대에서 수학해 1936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9년 12월에는 여운형과 함께 일본을 방문해 일본 정부 요인을 면담하고 도쿄 제국호텔 연설에서 통역을 맡았다. 1921년 상하이에서 열린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중앙위원 겸 국내 간부로 선정되는 등 사회주의 계열 활동 경력도 있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는 적극적인 친일 선전 활동에 나섰고, 광복 이후에는 한국민주당 정치부장으로 활동하며 미군정과 협력적 관계를 형성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은 생전 장덕수에 대해 “해방 공간에서 기회주의적 행보를 보였다”고 비판한 바 있다. 1947년 2월 민족진영 통합 논의 과정에서 한국독립당(조경한)·조선국민단(안재홍)·신한민족당(권태석)의 합당 추진이 무산된 배경에도 그의 반대가 작용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장덕수는 1947년 12월2일 서울 제기동 자택에서 암살됐다. 수사 과정에서 한국독립당 인사가 배후로 지목되면서 정국은 큰 파장을 맞았고, 김구 선생은 법정 증인으로 소환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김구 선생은 법정에서 암살 배후 의혹을 부인한 뒤 효창공원을 찾아 3의사 묘역(윤봉길·이봉창·백정기)과 임정 묘역에서 오열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정섭 명예관장은 “장덕수는 항일과 사회주의, 친일과 친미를 넘나든 인물로 평가된다”며 “특히 일제 말기 학병 지원을 선동한 자료가 확인된 이상, 그의 행적을 역사적으로 엄정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일 자료의 지속적 발굴과 공개를 통해 해방 전후 혼란기 인물들에 대한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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