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 차단은 구호 뿐…피해 회복은 개인 몫 사전 차단은 구호 뿐…피해 회복은 개인 몫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
| 2026년 03월 18일(수) 1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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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클립아트코리아 |
수사와 금융, 통신, 행정 체계가 각자 따로 작동하는 구조 속에서 범죄 조직은 빈틈을 파고들고, 피해자는 그 사이에서 고스란히 방치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보이스피싱 대응의 핵심은 ‘사전 차단’과 ‘사후 환급’으로 요약된다.
경찰과 금융당국, 지자체는 반복적으로 예방·주의 홍보 문구를 내놓고, 계좌 지급정지 제도를 강조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 두 축 모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경찰은 범죄 예방 캠페인과 함께 의심 거래 발생 시 즉각 신고를 당부하지만, 실제 범행은 이를 비켜가는 방식으로 고도화되고 있어서다.
공공기관·학교·대기업을 사칭해 정상 거래를 가장하거나, 물품 대금·용역비 명목을 내세워 피해자가 스스로 이체하도록 유도하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피해자는 범죄를 인지하더라도 ‘정상 거래’라는 외형 때문에 즉각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금융기관 역시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범죄 앞에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일정 금액 이상의 이체나 반복 송금이 발생해도, 거래 명목이 명확하고 피해자가 직접 이체 버튼을 눌렀다면 시스템은 이를 정상 거래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피해 예방의 최종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책임의 분산이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전화·문자·메신저 등 통신망을 기반으로 시작되고, 금융 시스템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나 범죄가 발생했을 때 통신사와 금융기관, 수사기관 어느 곳도 결정적 책임 주체로 나서지 않는다. 각 기관은 “우리 권한 밖”이라는 이유로 한 발씩 물러서고, 피해 회복의 공백은 그대로 남는다.
금융권의 경우 현행법과 약관은 ‘피해자 보호’보다는 ‘절차적 정당성’에 무게가 실려 있다.
피해자가 기망에 의해 송금했더라도, 형식상 자발적 이체로 분류되면 금융기관의 책임은 극히 제한된다.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더라도 명확한 과실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배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보이스피싱을 당한 피해자가 계좌 동결을 요구했음에도 은행 당국은 이를 거절했다.
이는 현행 시스템은 보이스피싱 등 명백한 사기 범죄로 판단될 경우에만 신속 지급정지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은행 관계자로부터 ‘피해자가 아무리 빠르게 신고했더라도 이미 이체가 완료된 이상 금융기관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제한적’이라는 설명을 들었다”면서 “현행 제도에서는 되돌릴 수 없다는 설명에 크게 낙심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범죄 피해금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되찾을 수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정리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구조는 금융 시스템이 범죄를 막기보다는 거래의 중립성만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통신 분야 역시 구조적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발신번호 조작, 해외 인터넷 전화, 대포폰 유통은 수년째 반복되는 문제지만 근본적인 차단에는 이르지 못했다.
번호 차단이나 스팸 필터링은 사후 조치에 가깝고, 범죄 조직은 새로운 번호와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AI 음성 합성 기술을 활용한 사칭 범죄 역시 제도적 대응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수사 체계의 한계도 분명하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전담 조직을 운영하고 있지만, 범죄 조직의 상당수가 캄보디아 등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어 실질적인 조직 검거로 이어지기 어렵다.
국내에서 검거되는 인원은 자금 전달책이나 계좌 모집책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들이 기대하는 조직 상층부까지 수사가 닿는 사례는 드물다. 이로 인해 범죄는 반복되고 피해자들의 박탈감은 누적된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겪은 전남 지역민도 “정부가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고 해서 기대를 했지만, 실제로 체감되는 변화는 거의 없다”며 “뉴스에서는 단속 성과가 나온다고 하지만 내 사건은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자들이 해외에 있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었다”고 덧붙였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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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피해자 중심’ 관점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대응 체계는 범죄 예방과 수사 편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피해 회복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병곤 남부대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대응 제도의 기본 전제가 아직도 ‘피해자는 조심했어야 한다’에 머물러 있다”며 “그러나 지금의 범죄는 개인의 주의만으로 막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금융 분야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금융 시스템은 단순한 중립적 통로가 아니라 범죄가 완성되는 핵심 지점”이라며 “고액 비대면 이체나 공공기관 사칭이 결합된 거래에 대해서는 금융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정 금액 이상의 이체에 숙려 기간을 두는 방안도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통신 분야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정 교수는 “발신번호 조작이나 음성 합성 기술이 반복적으로 범죄에 사용되고 있다면, 이를 관리하는 플랫폼과 사업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기술 발전 속도를 규제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피해가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사 체계와 관련해서는 국제 공조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정 교수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이미 초국가적 범죄”라며 “국내 수사 역량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외교·사법 공조를 포함한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지원 제도 역시 개선이 요구된다. 현재 피해자들은 신고 이후 통장 정지, 수사 협조, 민사소송, 심리적 회복까지 대부분의 부담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이에 대해 그는 “피해자를 단순한 참고인이 아니라 보호 대상이자 회복의 주체로 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며 “원스톱 지원 체계 도입을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정 교수는 “일부 국가는 금융사와 국가가 일정 비율로 피해를 분담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범죄 예방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기지 않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이런 논의를 시작하지 않는다면 피해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광주·전남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개인의 부주의로 치부하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제도와 시스템의 실패로 발생한 범죄에 대해 사회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답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결국 보이스피싱 문제는 단순한 범죄 대응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반의 신뢰와 직결된다. 공공기관과 금융, 통신 체계를 믿고 일상을 영위하는 시민들이 그 신뢰의 틈에서 피해를 입고 있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끝으로 정 교수는 “지금과 같은 구조가 유지된다면 보이스피싱 범죄는 이름과 형태만 바꾼 채 계속될 것”이라면서 “대응책과 제도를 고치는 동안 대가를 치르는 것은 늘 시민이다”고 지적했다,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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