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가까워지는 ‘전남의 보·물·섬’]<10> 여수 손죽도

진달래 향에 봄소식 싣고 화전에 봄의 풍류 담았다
삼짇날 화전놀이 전통…주민 주도형 문화 복원
임진왜란 충신 이대원 장군 숨결…역사·절경 조화
다도해 파노라마 일품…‘살고 싶은 섬’으로 자리매김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
2026년 03월 27일(금) 00:51
주민들은 스스로 ‘섬 가꾸기’에 앞장서며 마을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정원으로 탈바꿈시킨 ‘가가호호 정원’
주민들은 스스로 ‘섬 가꾸기’에 앞장서며 마을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정원으로 탈바꿈시킨 ‘가가호호 정원’
주민들은 스스로 ‘섬 가꾸기’에 앞장서며 마을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정원으로 탈바꿈시킨 ‘가가호호 정원’
삼각산과 깃대봉이 다도해 파노라마와 조화를 이룬 손죽도 전경
손죽도 전경
손죽해변
임진왜란 당시 충신으로 이름을 알린 이대원 장군 동상
<><>남해안 바닷길을 1시간여 달려 도달할 수 있는 여수 손죽도. 벼랑 끝 척박한 바위틈에서 피어난 꽃이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쉽게 지지 않듯, 손죽도의 역사와 문화도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내며 더욱 단단해졌다. 전쟁의 기억을 ‘손해를 본 슬픔’에서 ‘함께 걷는 꽃길’로 바꾸어가는 사람들. 4월 다도해의 푸른 물결 위로 번지는 진달래 향기를 따라 손죽도의 화전놀이 풍류는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그곳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자연의 위로와 삶의 강인함이 함께 피어있다.



△4월 화전 굽는 냄새 따라 제비가 돌아온다

4월의 손죽도는 육지의 봄보다 한 발 먼저 깨어난다. 남해안 다도해의 온화한 기후 덕분에 1월에도 평균 기온이 영상권을 유지하는 이곳은 봄이 되면 섬 전체가 거대한 화원으로 변모한다. 특히 음력 삼짇날(3월 3일) 무렵에는 전통 풍습인 ‘화전놀이’가 재현되며 섬의 생명력을 알린다.

과거 손죽도 부녀자들은 진달래가 만발할 때면 마을 뒷산 ‘지지미 고개’에 모여 찹쌀가루 반죽 위에 진달래 꽃잎을 올려 화전을 부쳐 먹으며 한 해의 액운을 쫓았다. 지지미 고개라는 이름 자체가 화전을 ‘지져 먹었다’는 데서 유래했을 만큼 이 풍습은 섬의 정체성과 깊이 맞닿아 있다. 여자들이 화전을 부치는 동안 남자들은 풍물을 울리며 흥을 돋우고, 밤이 새도록 마을 마당에서 뒤풀이를 즐겼다. 이 풍습은 단순한 잔치를 넘어 고립된 섬 환경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의례였다. ‘강남 갔던 제비가 날아오고 나비가 들면 화전을 구웠다’는 주민들의 기억은 4월 손죽도를 홍보할 가장 서정적인 소재이자,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가 주목하는 ‘지속 가능한 섬 문화’의 정수다



△‘충절의 역사’ 큰 인물을 잃은 아픔을 ‘즐거운 대나무’로 승화

손죽도는 이름에 얽힌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본래 임진왜란 당시 녹도만호 이대원 장군이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뒤, 이순신 장군이 ‘큰 인물을 잃어 나라가 크게 손해를 보았다’라고 해 손대도(損大島)라 불렀다는 설이 유력하게 전해진다. 꽃다운 스물두 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군의 충절은 지금도 마을 내 ‘충렬사’에 생생히 살아 있다. 주민들은 매년 장군의 기일에 맞춰 정성껏 제를 지내며 그 숭고한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이후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당시 전사한 장군의 충절을 기리는 마음과 섬에 자생하는 대나무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현재의 ‘손죽도(巽竹島)’로 개칭됐다. 슬픈 역사의 끝을 잡고 있지만, 오늘날의 주민들은 이 섬을 ‘즐겁고 평화로운 대나무 섬’으로 가꾸어가고 있다. 마을 북동쪽 나루터에서 바라보는 봉화산 전경과 정갈하게 쌓은 돌담길은 그 시절의 아픔을 묵묵히 품은 채 여행객들을 맞이하며 역사적 사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삼각산과 깃대봉…다도해 한눈에 담는 하늘길

손죽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섬의 척추와도 같은 삼각산(153m)과 깃대봉 등산로다. 산의 높이 자체가 그리 높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큰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지만 정상에서 마주하는 풍광만큼은 국립공원급 절경을 자랑한다.

선착장에서 마을을 지나 완만한 경사를 오르면 삼각산 정상에 닿는다. 이곳에 서면 손죽열도의 중심 섬답게 소거문도, 평도, 광도 등 인근의 유인도와 무인도들이 다도해 특유의 수묵화처럼 겹겹이 펼쳐진다. 특히 4월이면 산기슭에 핀 야생화와 푸른 바다가 대비를 이뤄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섬의 또 다른 명소인 깃대봉은 다도해의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소다. 해가 저물 무렵 깃대봉에서 바라보는 남해안의 낙조는 온 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이며 여행객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한다.

이러한 탐방로들은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을 통해 정밀하게 정비됐으며, 곳곳에 마련된 쉼터와 전망대는 휴식과 치유를 동시에 선사하는 ‘힐링 로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열대 식물의 보고·미식가 ‘낚시 성지’

손죽도는 연중 온난한 해양성 기후를 보여 겨울에도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덕분에 일부 아열대성 식물이 관찰될 정도로 이국적인 식생을 자랑한다. 울창한 온대림이 사이사이에 아열대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지붕 없는 식물원’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미각의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4월은 삼각산 기슭에서 억센 가시를 뚫고 돋아난 ‘두릅’이 제철을 맞이하는 시기다. 독특한 향이 일품인 손죽도 두릅과 청정 해역에서 갓 잡아 올린 가사리(홍조식물)는 4월 손죽도 여행객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또 손죽열도는 북서쪽 무학도부터 남쪽 역만도까지 이어지는 광범위한 낚시 포인트 덕분에 강태공들에게 ‘낚시 성지’로 통한다. 해저에 넓게 분포한 맥반석층 덕분에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복과 소라는 육질이 단단하고 영양분이 풍부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주민의 삶과 온기가 머무는 섬마을 풍경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손죽도는 여전히 주민들의 삶이 치열하게 이어지는 ‘생활의 터전’이다. 100여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 안길은 여느 관광지와 달리 정갈함과 따뜻함이 공존한다. 주민들은 문어, 삼치, 방어 등을 잡는 연안 어업과 더불어 척박한 땅을 일궈 마늘과 고구마를 재배하며 섬을 지켜오고 있다.

최근 주민들은 스스로 ‘섬 가꾸기’에 앞장서며 마을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낮은 돌담을 정비하고 집집마다 예쁜 꽃을 심어 ‘꽃섬’ 하화도와는 또 다른 소박하고 정겨운 아름다움을 뽐낸다. “우리가 사는 터전이 예뻐야 오는 사람도 행복하다”는 주민들의 소박한 철학은 손죽도를 더욱 빛나게 하는 힘이며, 대규모 상업 시설이 없는 덕분에 즐길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은 손죽도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다도해 파도를 넘어

손죽도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이나 고흥 나로도항을 이용해야 한다.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정기 여객선은 하루 2회 운항하며, 기상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약 1시간 10분 안팎이면 섬에 닿는다. 배 위에서 마주하는 다도해의 풍광은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의 시작이다. 고흥 나로도항을 이용할 경우 약 40분 전후로 입도가 가능해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섬 내에서는 도보 여행이 충분히 가능할 만큼 탐방로가 잘 닦여 있으며, 마을 민박이나 펜션을 예약해 머무른다면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이 담긴 ‘섬 밥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 ‘손죽도가 그리는 미래’

손죽도는 올해 개최되는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를 통해 세계적인 생태 관광지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박람회는 전 세계의 섬들이 가진 가치를 공유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장이다. 손죽도는 인근의 거문도, 백도와 연계돼 여수 서남부권 섬 관광의 핵심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박영채 전남도 해양수산국장은 “손죽도는 과거의 충절 역사와 현재의 생태, 그리고 주민 공동체의 문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보물섬이다”며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를 통해 손죽도의 진면목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져 전남을 대표하는 ‘K-섬’의 모델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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