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근원적인 ‘흙’…"제게 고향이자 어머니이죠"

진도 출신 재불화가 채성필 ‘…익명의 땅’전
6월 14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서 17점 선봬
30년째 흙 작업…"이상적인 아름다움" 고심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6년 05월 04일(월) 18:00
재불화가 채성필씨의 전시가 ‘흙 그림-익명의 땅’이라는 타이틀로 오는 6월 14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5, 6 전시실에서 열린다.
‘대지의 몽상’
그는 ‘흙의 화가’로 불린다. 그가 처음 밟았던 흙은 남도 땅이었다. 진도 출생으로 서울로 올라가기 전 중학교 3학년 이전에는 그렇다. 그러다가 서울대 동양화과를 거쳐 2003년 프랑스로 건너가 대학원 석박사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며 재불화가로 활동 중이다. 돌고 돌아 그가 광주에서 전시를 여는 이면에는 이 지역 출신으로 뚜렷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데다 진도 출생이라고 하는 뿌리가 마침 광주시립미술관이 물색하던 화가 후보군에 들어와서다. 그는 한국을 떠나 있기에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더했는지 모를 일이다.

광주시립미술관(관장 윤익)이 올해 현대미술기획전으로 마련해 지난 4월 28일 개막, 오는 6월 14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5, 6 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는 ‘흙 그림-익명의 땅’전이 그것으로, 전시 주인공은 재불화가 채성필씨다. 크기가 가로 12m, 세로가 4m 80㎝에 달하는 초대작 ‘대지의 몽상’ 등 출품작은 근작들로 회화 17점이지만 가져온 작품은 49점이라고 한다.

‘익명의 땅’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유럽 화단에서 대자연의 생명력과 동양적 철학을 화폭에 담아온 그의 회화세계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자리로 부족함이 없다. 특히 이번 광주시립미술관 전시는 그의 30년 예술 인생 전반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작가는 그동안 한국 전통 회화의 철학적 바탕 위에 서구적 조형 어법을 결합해 독보적 화업을 구축해왔다. 그는 전 세계의 흙을 채집해 정제한 뒤 천연 안료와 섞어 캔버스 위에 쏟고 흘리는 방식을 통해 역동적인 대지의 숨결을 시각화한다는 설명이다. 요즘 그는 여의치 않아 진도 흙이 아닌 해남 흙을 가져다 재료로 사용했다는 전언이다.

이를테면 미술관 관계자의 그에 대한 설명처럼 서구 중심의 현대미술 구조 속 동양적 사유와 한국적 정서를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작가로, “가장 지역적인 것이 어떻게 보편적인 언어로 확장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천적 해답을 제시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전시를 접하면 그가 다른 작가들과 다른 결을 유지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오히려 예정된 작품보다 대작 3점을 빼내 여유공간을 확보했다. 이는 다른 작가들의 경우 어떻게 해서든 작품을 더 걸려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울러 작품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파티션도 놓지 않았고, 작품명제도 부착하지 않았다. 관람객들이 자유로운 작품 감상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가 이번 전시에 임하는 소회는 다른 전시에 비해 다소 각별하다.

“1986년에 진도에서 서울로 유학을 나왔고, 그후 서울에서 대학을 마친 뒤 프랑스까지 유학을 가게 된 것인데 사실은 진도 촌놈이 프랑스에 살다 보니까 문턱(뿌리)부터 생각을 해요. 어떻게 해서 프랑스까지 와서 28년째 살고 있나, 작가로 살고 있나 말이죠. 그런데 그런 와중에 이번 광주 전시는 저한테 좀 특별한 감회가 있더라고요. 어렸을 적에 떠났던 내 고향을 찾아온 느낌이 있어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고요. 저한테 흙이라고 하는 단어는 가장 쉽게는 고향이자 또 어머니이기도 하거든요.”

이처럼 그는 고향을 찾은 마음을 흙이라고 하는 재료를 통해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것들이 무엇일지와 또 물성으로서의 (어떤)흙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전시에서 주제로 담아봤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 전통미술의 ‘자연 순응적 태도’를 현대미술의 가장 세련된 형식인 ‘물질 추상’으로 번안해 내고 있으며, 프랑스라는 서구 예술의 중심지에서 한국화의 정신적 근간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편적인 조형미를 획득하고 있다.

‘익명의 땅’
그는 한국적 미의식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세계 미술의 문맥 속에서 당당히 위치시킨다. 관객들은 그의 ‘익명의 땅’을 통해 과거의 전통과 미래의 추상이 조우하는 경이로운 지평을 목격하게 될 전망이다.

타이틀인 ‘익명의 땅’은 작가의 철학이 집약된 선언적 개념으로, ‘익명’은 이름이 없음을 넘어 인간의 체계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본연의 상태,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한다는 풀이다.

‘익명의 땅’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어떤) 삶과 더불어서 또는 삶 이전으로부터 우리에게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그는 ‘흙’을 꼽는다.

“저한테는 흙이라는 단어로 시작이 됐고, 그것을 연구 중에 있고요. 그러니까 모든 작가들은 아마도 자기한테 주어진 화면이라고 하는 공간 안에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을 아마도 담으려고 노력을 할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저도 현대미술을 시작하면서 제게 주어진 화면 안에 (과연) 내가 표현하고 싶은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하는 그런 고민들을 했었죠. 그 이상적이고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것은 바로 모든 것들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는 흙이 아닐까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흙을 가지고 작업을 한 지가 벌써 30년이 넘은 것 같아요.”

파리에서는 파리의 흙을 쓰고, 뉴욕 전시에서는 뉴욕의 흙을 썼지만 이 이면에는 마치 어머니를 대하는 듯한 근본으로서의 이야기 또는 모성으로서의 이야기, 어떤 모든 순환의 고리가 되는 공간으로서의 이야기가 함축돼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는 땅은 사실적인 땅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땅을 지칭한다. 그래서 ‘익명의 땅’으로 호명한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 역시 그리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고향이고 또 흙과 같은 존재로 여긴다.

흙을 재료로 쓰고 있는 회화작품의 진수를 접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다. 분주한 일상 속 여유를 내 전시장을 방문해 작품을 관람해보는 것도 유익한 문화나들이가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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