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오금석 ㈜야생앤더비 대표

꿀벌로 일군 50년, 한국 양봉의 길을 바꾸다
현장 기반 자동사양기 등 50건 넘는 특허 개발
양봉산업 구조 개선 이끌며 30여개국 수출 성과
체험·교육공간 확장 통해 꿀벌 가치 홍보 주력

엄재용 기자 djawodyd0316@gwangnam.co.kr
2026년 05월 13일(수) 18:54


“반짝이는 광채는 없지만 꿀벌은 인간에게 어떠한 보석보다 귀중한 존재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꿀벌의 중요성을 알리는 게 목표입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양봉 기술의 발전을 이끌며 우수한 품질의 봉산물 생산에 앞장서 온 사람이 있다. 단순한 생산자를 넘어 현장의 불편을 기술로 바꾸고, 영세했던 산업 구조를 개선하는 데 기여한 오금석 ㈜야생앤더비 대표(76)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양봉 인생은 무안농업고등학교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실습장에 들어온 벌통 세 통이 계기가 됐다. 당시 경험은 단순한 실습이 아닌 진로를 결정짓는 전환점이었다. 그는 졸업 후 곧바로 양봉에 뛰어들었고, 1969년 성인이 되자마자 본격적인 양봉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양봉 환경은 열악했다. 기자재는 부족했고, 작업 방식은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했으며 소득 또한 불안정했다. 이러한 현실은 오히려 그에게 문제의식을 심어줬다. 그는 단순히 꿀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 방식을 개선하는 데 눈을 돌렸다.

1983년 광주 하남공단에 양봉 기자재 생산 공장을 설립한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그러나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수차례 위기를 겪으며 9년 가까운 시간을 버텨야 했다. 실패도 경험했지만 그 과정에서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전환점은 1990년대 후반에 찾아왔다. 그는 양봉 농가의 노동력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자재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연구 조직이나 대규모 투자가 아닌,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과 개인적인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꿀벌을 단순히 돈벌이로 보는 게 아니라 벌들의 생태와 성질 등의 깊은 이해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 결과 자동으로 사료를 공급하는 자동사양기, 캡슐형 로얄제리 채취기, 말벌 같은 유해 곤충을 포획하는 장비 등 다양한 기자재가 탄생했다. 현재 그가 보유한 기술은 국제 특허와 국내 특허, 실용신안 등을 포함해 50건이 넘는다.

이 기술들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일본, 몽골 등 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등 30여개국에 수출되며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자동사양기 보급은 양봉 산업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당시에 주전자를 들고 다니면서 벌들한테 사료를 줘야 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키울 수 있는 양도 한정돼 영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존에는 사람이 일일이 먹이를 공급해야 했지만, 자동화 장비의 도입으로 작업 효율이 크게 개선됐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작업 편의 개선을 넘어 양봉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노동력 부담이 줄어들면서 사육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고, 일정한 품질 유지도 가능해졌다. 결과적으로 양봉이 보다 안정적인 소득 산업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당 기술은 전남도청이 광주에 있을 당시 지방자치단체 보조사업으로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되며 양봉 농가에 보급되기도 했다. 개인의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1999년 농림부 장관상, 2005년 대통령 산업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어 2007년에는 대한민국 양봉분야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활동은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았다. 전국을 돌며 꿀벌의 생리와 생태를 활용한 양봉 방법이나 표준벌통 등 각종 기자재 사용법 등을 교육하면서 후학양성에도 힘썼다.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양봉대회인 아피몬디아(APIMONDIA)와 아시아양봉학회(AAA) 등 국제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 양봉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2015년 세계양봉대회의 국내 유치 과정은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힌다.

최근 그는 양봉을 넘어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사옥 근처에 커다란 규모의 카페를 만들어 가장 좋은 재료로 빵과 음료를 선보이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꿀벌과 친해질 수 있도록 정원을 함께 꾸몄다. 실외 정원뿐 아니라 실내에도 작은 생태 공간을 마련해 안전하게 꿀벌을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꿀벌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리고, 다양한 봉산물을 통해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당일에도 그는 직접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꿀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러한 노력은 광주 민간정원 제2호 지정으로 이어졌고, 카페 더비(THE BEE)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명소로 자리 잡았다. 꿀벌과 식물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꿀을 활용한 제품을 선보이는 등 양봉을 산업이 아닌 문화로 확장하는 것이다.

주말마다 전국에서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이곳은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닌 생태교육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좋은 일도 있지만 그는 최근 양봉 환경 변화에 대한 우려도 숨기지 않는다. 5~6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농약과 환경 변화 등을 이유로 꿀벌 개체 수가 감소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농업 전반과 연결된 생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금도 비닐하우스에 꿀벌을 풀어 수분을 하도록 만들고 있어요. 전 세계 식량 공급의 약 90%를 점유하는 주요 작물 100종 중 71종이 꿀벌의 수분 작용에 의존한다고 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 발표했는데, 그만큼 인간에게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오 대표는 한국 양봉 산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양적 경쟁보다 질적 경쟁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넓은 토지를 기반으로 한 대량 생산이 어려운 만큼, 고품질 봉산물과 기술 중심의 산업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50년 넘는 시간 동안 한길을 걸어온 그의 행보는 한국 양봉 산업의 성장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생산에서 기술, 그리고 문화로 확장된 그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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