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습기마저 담았다…민초들 시간 ‘호출’

■광주시립미술관 민중미술가 강요배 초대
4·3과 5·18항쟁 정신 한 전시서 구현 40여점 선봬
‘시간을 품다’ 주제로 9월 27일까지 발자취 조망
4·3기록화 연작…신작 3점·광주 투영 5점 눈길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6년 05월 14일(목) 17:46
철목(鐵木)
‘광음’(光音)
‘대동’
‘황파Ⅱ’
‘인간을 도우시다’
“제가 민주·평화·인권 전시에 초대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제주도 시골에서 사는 노인인데 여기 큰 도시에 이렇게 좋은 전시장에서 전시를 열게 해줘서 아주 고맙다는 입장이죠. (광주시민들에게 한 마디) 그러니까 글쎄요. 우리가 매일 참혹한 거 생각하면서 살 수도 없지 않습니까. 마음을 잘 다독이고 하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지나치게 막 하면 마음이 상하거든요. 무언가 이겨나간다는 희망이 있지 않으면서도 그것만 너무 골똘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싶죠.”

첫번째 개인전이 열린 1976년 이후 올해 50년을 맞은 그는 광주에서 그동안 여러차례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잡았다. 제주에서는 민중화가로 간판 같은 존재다. 그리고 제주 바람과 습기마저 그림에 담는 화가로 불린다.

이런 그에 대한 입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그를 꾸준하게 미술계에서는 찾고 있다. 그 또한 광주하면 민주인권평화가 상기된다는 반응이다. 민주인권 평화도시인 광주에서 도시 콘셉트에 맞게 전시를 열게 돼서 영광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반응이다. 주인공은 1989년 제주의 감춰진 역사에 눈을 뜨면서 교직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서울 근교의 한 농가에 파묻혀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으며 1992년 ‘제주민중항쟁사건전’을 연 후 고향인 제주도에 정착해 민족미술인협회 회장과 제주 4·3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활동을 펼쳐온 강요배 화가가 그다.

자본주의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을 주로 그려온 탓에 민중지향적 화폭에는 근원적 슬픔이나 그리움, 외로움이 묻어나는 동시에 삶 본연의 서정성이 표출되는 듯하다. 지난 13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질문에 비교적 단답형으로 답변했다. 무언가 늘어지는 것보다는 짧은 울림의 단어들을 선호하는 인상이 들었다. 외모에서는 화가가 아니었으면 무엇을 했을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여리 여리하면서도 풍기는 이면에 감춰진 카리스마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광주에서는 네차례 정도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가졌지만 이처럼 결산 같은 전시는 처음이라고 한다.

그의 전시는 민주인권평화라는 명패 아래 지난 8일 개막, 오는 9월 27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1·2전시실에서 ‘시간을 품다’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초입에 설치된 ‘망월’에서부터 압도된다. 그동안 광주시립미술관이 추구해온 5·18민중항쟁의 정신을 담은 작품으로 전시 취지에 부합된다는 설명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은 2013년 ‘오월-1980년대 민중미술’ 개최를 계기로, 광주의 민주·인권·평화 정신을 조명하는 연례전시를 지속해왔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의 전시로 이해하면 된다. 그는 제주 4·3항쟁의 역사를 시각 언어로 드러내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민중미술의 언어를 인간 보편의 차원으로 확장하는데 힘을 써 왔다.

특히 이번 전시는 제주 귀향 이후의 풍경 연작, 그리고 최근작에 이르는 작업활동에 들어간 60여년의 예술 발자취는 물론, 작가 개인과 시대의 기억이 집약된 시간의 층위 속에서 민주·인권·평화의 가치가 어떻게 회화적 언어로 축적되고 변주되고 있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제주에서 태어난 작가에게 침묵과 억압 속에 짓눌려 있던 제주의 풍토는 자신의 오감을 공감각적으로 일깨우는 단초를 제공해줬다.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거친 뒤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며, 군사독재 치하의 현실을 날카로운 필선으로 예리하게 포착했다.

그의 회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시간이다. 물감을 덧칠하고 밀어내며 겹겹이 층위를 쌓는 시간의 표현 방식은 단순한 표면 질감을 넘어 작가의 몸이 시간을 거듭 통과한 흔적들이 화면에 투영된다. 그가 즐겨 그린 제주의 바다와 바람, 돌과 하늘은 단순히 풍경의 소재로만 머물지 않고, 모든 기억과 역사적 감각을 현재의 시간 앞에 다시 불러내 보는 촉매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볼거리다.

작품 ‘폭포 속으로’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강요배 작가
‘수풍교향’
<>출품작은 40여점과 아카이브로, 대구시립미술관 소장작인 ‘수풍교향’을 비롯해 ‘인간을 도우시다’, ‘폭포 속으로’ 등은 대작들로 압도적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다. 작품 ‘폭포 속으로’는 시립미술관 벽 높이가 6m 70㎝인데 6m 60㎝로 아슬아슬하게 설치가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출품작 중 제주4·3기록화 연작을 영상작품으로 재제작한 ‘동백꽃 지다’, 이번 광주 전시를 맞아 5·18항쟁을 투영한 신작 ‘망월’(望月)과 ‘철목’(鐵木), ‘광음’(光音)은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소개된다. 5·18 관련작품은 ‘태극도’와 포스터 형식으로 만든 ‘1980. 5.27. 01:00, 한반도’가 더 있다.

큐레이팅을 맡은 홍윤리 학예사는 “강 선생님이 워낙 대작들을 작업하기에 벽이 넓은 광주시립미술관과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현재 선생님의 생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최근작이 많은 이유이다. 그래서 현대에서 과거로 가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요배 화가는 현재 한림읍에 머물며 작업을 펼치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는 광남일보 홈페이지(gwangnam.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gwangnam.co.kr/article.php?aid=1778748374537506000
프린트 시간 : 2026년 05월 15일 19: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