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농민의 눈물을 국가는 외면하면 안 된다

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정성욱 gn@gwangnam.co.kr
2026년 06월 01일(월) 22:37
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최근 농업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농가들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시설채소인 시금치와 열무 얼갈이배추 같은 대표적인 서민 먹거리조차 가격이 폭락하면서 농민들은 수확을 하고도 웃음을 잃었다. 서울 가락시장에 출하된 시금치 한 단 가격이 500~600원 수준에 머무르고 열무 가격 역시 지난해보다 25% 이상 떨어졌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지금 농업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농민들은 “포장비와 운송비를 제하면 손에 남는 것이 없다”며 “팔수록 손해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어려움은 시설채소 농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지채소 농가 역시 깊은 시름 속에 놓여 있다. 배추와 무, 양파, 대파, 감자 등 노지에서 재배되는 주요 채소들은 해마다 반복되는 가격 폭락과 기후위험 속에서 농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해에는 폭우와 이상고온으로 생산량이 줄어 큰 어려움을 겪었고, 올해는 소비부진과 출하량 증가가 겹치며 가격이 급락했다.

특히 노지채소는 기후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폭염과 집중호우 태풍 한 번에도 한 해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렵게 키운 작물을 제값도 받지 못한 채 밭에서 갈아엎어야 하는 현실은 농민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이란 전쟁을 비롯한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와 환율이 급등하면서 농업 전반의 생산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비료와 농약, 농기계 부품, 시설 자재 가격은 물론이고 면세유와 운송비까지 크게 올랐다. 시설채소 농가는 난방비와 물류비 부담에 신음하고, 노지채소 농가는 농기계 운용비와 인건비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농산물 가격은 하락하는데 생산비는 치솟는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노지채소 농민들은 저장성과 출하시기 문제로 더욱 절박한 현실에 놓여 있다. 수확 시기를 놓치면 상품성이 떨어지고 출하가 한꺼번에 몰리면 가격은 바닥까지 추락한다. 어렵게 수확한 양파와 무를 폐기하거나 밭에서 갈아엎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농민들은 “씨앗값조차 건지지 못한다”며 깊은 허탈감을 호소한다.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늘어난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농민 개인의 어려움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농업이 무너지면 국민의 먹거리 안전도 함께 흔들리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기후위기가 반복되고 있는 지금 식량은 더 이상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사올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코로나19와 국제분쟁을 거치며 우리는 이미 공급망 붕괴의 위험을 경험했다. 국내 농업 기반마저 흔들린다면 대한민국의 식량주권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늘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버텨왔다. 농산물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물가 안정을 이유로 수입 확대와 가격 억제 정책이 즉각 시행되지만, 가격이 폭락할 때는 고스란히 농민들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풍년이 들어도 걱정이고 흉년이 들어도 걱정인 산업 그것이 바로 지금의 농업 현실이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국민의 식탁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오늘도 새벽 어둠 속에서 묵묵히 밭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농업을 단순한 경제 논리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농업은 국가안보이며 생존의 문제다. 농촌은 단순한 생산 공간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를 지탱하는 삶의 터전이자 뿌리이기 때문이다. 농민 한 사람의 땀방울이 결국 국민 모두의 하루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 임시방편식 대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시설채소와 노지채소를 포함한 주요 농산물에 대해 최소 생산비를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가격안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농민들이 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다.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폭락할 경우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농자재 유류비 지원 확대도 시급하다. 면세유 지원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영농자금 대출 금리 부담을 완화해 농민들이 최소한의 영농 기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업용 비료와 시설 자재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 대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농업 정책 전환도 절실하다. 재해 보상체계를 강화하고 농작물 재해보험의 실효성을 높여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부터 농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더불어 공공급식 확대와 국산 농산물 소비촉진 정책을 통해 안정적인 소비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농민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농촌의 불빛이 꺼지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함께 어두워진다. 지금 농민들이 흘리는 눈물은 단지 한 직업군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먹는 한 끼 식사는 누군가의 새벽과 땀 그리고 묵묵한 희생 위에 놓여 있다.

오늘도 밭에서 묵묵히 씨앗을 뿌리는 농민들이 있다. 가격 폭락 속에서도 치솟는 기름값 속에서도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국가가 그 손을 잡아줘야 한다. 농민이 살아야 농촌이 살고 농촌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을 지키는 일은 결국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면이 아니라 연대이며 무관심이 아니라 책임이다. 농민들이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 땀 흘린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농촌 그리고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누릴 수 있는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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