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과 함께하는 느림의 미학: 올여름, 내 삶에 '쉼표'를 찍다”

윤익 광주시립미술관장

윤익 gn@gwangnam.co.kr
2026년 06월 18일(목) 18:01
어느덧, 6월 중하순이다. 녹음이 푸르러지며 바야흐로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어디로 떠날지, 무엇을 더 많이 보고 경험할지 분주하게 계획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일상의 속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휴가마저도 또 다른 속도전이자 ‘해내야 하는 과제’처럼 치러내고 있지는 않은지 문득 돌아보게 된다. 진정한 휴식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녔는가’가 아니라, ‘내 내면이 무엇을 느끼고 채웠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온전히 나만의 호흡을 되찾는 ‘잠시 멈춤’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이다. 올여름 시민 여러분께 멀리 떠나는 번잡함 대신, 가장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문화공간으로 우리의 도심에 자리하는 미술관에서 예술이라는 렌즈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는 ‘느린 휴가’를 제안하고자 한다.

사실 우리가 미술관을 찾아 전시를 관람하는 행위는 단순한 시각적 관람을 넘어, 삶을 풍요롭게 채우는 가장 적극적인 문화적 경험이다. 사방이 고요한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일상의 소음과 차단된 채 오롯이 작품과 나만의 대화에 몰입하게 된다. 미디어 매체의 화면을 통한 압축된 정보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미술관의 거대한 화폭과 입체적인 공간이 주는 시각적 자극은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우는 신선한 충격이다. 작가의 손길이 닿은 붓 터치의 질감을 눈으로 좇고, 작품이 뿜어내는 아우라를 온몸으로 느끼는 과정에서 우리의 미적 안목은 넓어지고 생각의 깊이는 한층 깊어진다. 평소 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이러한 문화적 몰입은 메말랐던 감수성을 촉촉하게 적시고, 새로운 창의적 영감을 불어넣는 귀중한 보람을 선사한다.

지금 광주시립미술관 본관에서는 민중미술 1세대 예술가인 강요배 작가의 60년 예술 세계를 총망라하는 대규모 기획전 ‘강요배: 시간을 품다’가 열리고 있다. 제주 4·3의 아픔부터 오월 광주의 기억, 그리고 거친 바람을 견뎌낸 자연의 풍경까지 작가가 평생에 걸쳐 화폭에 쌓아 올린 거대한 역사와 가슴 아픈 현실의 층위들이 전시장 가득 펼쳐져 있다. 강요배 작가의 그림 앞에서는 풍경조차도 단순한 자연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시간’으로 존재한다. 무겁게 뒤엉킨 파동,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거친 붓질, 그리고 어둠을 뚫고 터져 나오는 빛을 마주하고 있으면, 눈앞의 캔버스는 이내 보이지 않는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기억을 증언하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철목(鐵木)’과 ‘광음(光音)’, 그리고 5·18 희생자들의 안식처이자 묵묵한 기억의 시선을 담은 ‘망월’같은 신작들은, 우리가 지나온 상처의 시간들이 어떻게 새로운 생명력과 숭고한 빛으로 순환하고 회복되는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훌륭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해 타인의 삶과 역사에 공감하는 인문학적 여정이기도 하다. 미술관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우리는 나만의 한정된 세계관에서 벗어나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숭고함을 담은 작품을 마주하며 느끼는 깊은 유대감과 연대의 감각은, 우리의 내면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미술관 관람만의 커다란 장점이다. 이러한 문화적 경험을 안겨주는 전시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느림’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도 내려놓고, 그저 마음에 와닿는 거대한 회화 작품 하나 앞에 차분하게 멈춰 서 보는 것이다. 붓 터치 하나하나에 깃든 작가의 고뇌를 응시하고, 침묵 속에서 나만의 해석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마음의 치유이자 인문학적 수행이 된다. 거친 바람과 상처를 견뎌내고 찬란하게 빛나는 작품들을 바라보며, “나 또한 수많은 시간을 견뎌내며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위로와 다독임을 얻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간은 곧 나의 과거와 현재를 따뜻하게 껴안는 시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진정한 휴식과 충전을 위해 이번 휴가철에는 속도의 페달에서 잠시 발을 잠시 떼는 여유를 가져보자. 미술관을 방문하여 혼자만의 호젓한 사색의 시간을 가져도 좋고, 사랑하는 가족들 혹은 마음 편한 지인들과 함께 전시를 보며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소통의 시간도 유익할 것이다. 하나의 작품을 두고 서로 다른 감동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폭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싱그러운 여름날, 미술관의 시원하고 고요한 공기 속을 거닐며 내 삶의 소중한 ‘쉼표’를 찍어보시길 제안한다. 푸른 중외공원 아시아예술정원의 품 안에서, 그리고 강요배 작가가 품어낸 깊은 시간의 숲길 사이에서, 시민 여러분 모두가 예술과 함께 진정한 내면의 풍요와 문화적 보람을 만끽하는 행복한 여름맞이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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