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가까워지는 ‘전남의 보·물·섬’]<12>여수 개도

다도해 호령 ‘덮개섬’, 백척간두 벼랑 끝에서 만나다
천제봉 아래 기암괴석·푸른 바다가 빚어낸 천혜 요새
천길 낭떠러지 ‘배성금 벼랑’·‘사람길’…다도해 절경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
2026년 06월 24일(수) 15:14
여수 개도 전경
여수 개도 마을 전경
모전몽동해변
청석포
청석포
개도 사람길
개도 막걸리
<>△주변 섬들 포근히 안은 풍요의 섬

보석처럼 내려앉은 여수 개도(蓋島)는 이름에서부터 그 존재감이 남다르다. 주위의 크고 작은 섬들을 마치 지붕처럼 포근히 덮고 조화롭게 거느린다는 뜻에서 ‘덮개 개(蓋)’ 자를 써서 개도라 불리게 됐다. 또 다른 이름의 유래도 흥미롭다. 섬 중앙에 우뚝 솟은 천제봉(해발 약 320m)과 봉화산 능선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개의 귀가 쫑긋하게 솟아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 ‘개의 섬’에서 ‘개도’가 됐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그 지형적 독특함이 기록돼 있을 만큼 개도는 예로부터 다도해 해상 교통과 군사적 요충지로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 왔다.

개도의 역사는 오랜 세월 다도해의 요충지로서 자리를 지켜왔으며, 고려 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성씨들이 가문을 이루어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섬 전체가 거대한 성벽처럼 바다를 막아서고 있는 형세 덕분에 거친 외풍 속에서도 섬 안의 백성들은 비교적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일궈낼 수 있었다. 화산마을, 신흥마을, 월항마을, 모전마을 등 척박한 돌밭과 풍요로운 바다를 터전 삼아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들은 저마다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천제봉 숨결·마녀목 눈물…이야기가 흐르는 영성의 공간

개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섬의 영산이라 불리는 천제봉에 올라야 한다. 해발 약 320m의 천제봉은 그리 높지 않은 산세처럼 보이지만 바다에서 곧바로 솟아오른 지형 탓에 정상에 서면 마치 하늘과 맞닿은 듯한 압도적인 개방감을 선사한다. 가막만과 여자만, 그리고 멀리 태평양으로 뻗어 나가는 남해의 푸른 바다가 거침없는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천제봉 정상에는 가뭄이 들거나 마을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온 주민이 모여 하늘에 정성껏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이곳은 단순히 높은 산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섬사람들이 자연 앞에 순응하고 가족의 안녕과 풍어를 빌던 간절한 영성의 공간이다.

천제봉 자락을 따라 걷다 보면 말과 소녀의 애틋한 우정과 슬픈 전설이 깃든 ‘마녀목’을 만날 수 있고, 마을 곳곳에는 비범한 능력을 가졌지만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숨죽여야 했던 ‘애기 장수 설화’가 구전으로 내려온다. 거친 바다 환경 속에서 피어나고 다듬어진 이러한 서사들은 개도를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인문학의 섬으로 만드는 소중한 자산이다.



△백척간두 아찔함과 위로…‘개도 사람길’과 배성금 벼랑의 절경

최근 전국의 트레커들과 백패커들 사이에서 개도는 반드시 걸어봐야 할 ‘백섬백길’의 핵심 명소로 손꼽힌다. 섬의 남쪽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총 길이 7.4㎞의 ‘개도 사람길’은 다도해의 가장 극적이고 때 묻지 않은 비경을 품고 있는 도보 여행길이다. 총 3개의 코스로 구성된 이 길은 화산항에서 시작해 호령마을, 청석포, 정목마을로 이어지며 걷는 이의 발걸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그중에서도 개도 사람길의 하이라이트이자 백미는 단연 제2코스에 위치한 ‘배성금 벼랑’이다. ‘배성금’은 과거 배를 매어두던 아늑한 해안 구비라는 뜻을 품고 있지만, 그 위로 펼쳐진 벼랑길은 수십 미터 높이의 기암괴석이 수직으로 깎아지를 듯 서 있는 천길 낭떠러지다. 벼랑 끝에 서서 발밑을 내려다보면, 짙푸른 오션블루 빛의 가막만 바다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거칠게 부서지는 장관을 목격하게 된다.

백척간두에 서 있는 듯한 아찔함과 함께 다도해의 거친 해풍이 온몸을 감쌀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강렬한 생의 감각과 묘한 위로를 건넨다. 수만 년의 세월 동안 거친 파도와 해풍이 깎고 다듬어 만든 해안 절벽과 낭끝 전망대의 기암괴석은, 대자연이 전남의 바다에 빚어놓은 가장 위대한 조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석포 너럭바위·모전 몽돌…바다가 연주하는 대자연의 교향곡

벼랑길의 긴장감을 지나 제3코스로 접어들면 개도가 숨겨놓은 또 하나의 천혜의 비경인 ‘청석포 해변’이 모습을 드러낸다. 청석포라는 아름다운 이름은 해안가에 깔린 바위와 돌들이 은은한 청색 빛을 띠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일반적인 모래해변과 달리 거대한 바위들이 층층이 쌓여 거대한 평상을 이룬 ‘너럭바위’ 지형이 특징이다. 과거 마을 주민들이 봄이면 한데 모여 화전놀이를 즐기며 풍류를 나누던 낭만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오늘날 청석포는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며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칠성급 백패킹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밤바다의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텐트 문을 열면 암벽 뒤로 떠오르는 달빛이 푸른 바위 표면을 적시는 몽환적인 야경을 만끽할 수 있다.

청석포에서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만날 수 있는 ‘모전 몽돌해수욕장’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하게 깎인 까만 몽돌들이 해안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파도가 밀려왔다 쓸려갈 때마다 서그럭거리는 몽돌의 청량한 울림소리가 귀를 사로잡는다. 그 소리는 마치 대자연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교향곡처럼 정겹고 청아해 해변에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쌓인 모든 번뇌와 스트레스가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수백 년 전통의 ‘개도 막걸리’와 바다가 선사하는 풍요로운 미식의 기쁨

섬 여행의 완성은 단연 그 섬의 바람과 물이 길러낸 미식을 맛보는 일이다. 개도는 전남의 수많은 섬 중에서도 유독 먹거리가 풍성하고 맛이 깊기로 이름이 높다. 그 중심에는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개도 막걸리’가 있다. 섬 중앙에 자리한 ‘개도주조장’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전통 방식으로 빚어내는 이 막걸리는, 천제산 자락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청정 한 암반수를 사용하는 것이 맛의 비결이다.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향과 부드럽고 깔끔한 목 넘김 덕분에, 예로부터 수많은 문인과 식도락가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곤 했던 전남의 대표 명주다.

개도 사람길 트레킹을 마친 후, 청석포 너럭바위나 동네 정장에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개도 막걸리 한 사발은 여행자들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신선놀음이자 따뜻한 위로가 된다.

여기에 개도의 청정 해역이 키워낸 싱싱한 참전복과 은빛 멸치, 낙지와 문어 등은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특히 거친 조류를 이겨내고 자라 육질이 유독 단단하고 향이 진한 개도 참전복과 미역은 입안 가득 다도해의 풍요로움을 그대로 전해준다. 밭에서는 섬 특유의 해풍을 맞고 자란 알싸한 마늘과 달콤한 고구마가 자라나 산과 바다, 육지의 진미가 한 섬에 공존하는 독특한 미식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여수세계섬박람회와 함께 비상하는 친환경 생태관광

이제 개도는 그동안 간직해 온 천혜의 생태 자원과 독창적인 섬 문화를 바탕으로 더 큰 미래를 향해 날갯짓을 시작하고 있다. 다가오는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에서 개도는 핵심적인 부행사장으로 지정돼 전 세계인들에게 전남 섬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증명할 중요한 무대로 주목받고 있다.

무분별한 난개발 대신 섬이 가진 본연의 자연경관을 온전히 보존하면서도 여행객들이 자연과 깊게 교감할 수 있는 ‘친환경 생태 관광 및 지속 가능한 섬 투어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개도 주민들은 늘어나는 관광객들로 인해 섬의 본모습이 훼손되지 않도록 스스로 ‘섬 가꾸기’와 환경 정화 활동에 앞장서며 성숙한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 안길의 정겨운 낮은 돌담을 정비하고, 철마다 아름다운 꽃씨를 뿌리며, 해안가로 밀려드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이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박영채 전남도 해양수산국장은 “개도는 빼어난 비경과 풍성한 먹거리, 섬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따뜻한 공동체 정신이 삼박자를 이루는 전남의 보물 같은 섬이다”며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를 계기로 개도가 가진 생태적 가치와 인문학적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한편, 섬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통해 주민이 행복하고 여행객이 위로받는 글로벌 친환경 생태 관광의 표준 모델로 키워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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