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이 겪어온 시간의 요약…생명의 응축 가득 정애경 제5시집 '꽃들의 작명소' 시와사람서 출간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
| 2026년 06월 26일(금) 1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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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들의 작명소’(시와사람 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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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애경 시인 |
이전 시집에서 생명성은 주로 피어남, 몸, 사랑, 숨결, 회복의 이미지로 나타났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생명을 꽃피는 순간만이 아니라 베이고, 마르며, 부서지는 동시에 견디는 과정에서도 포착하고 있다. 이는 상처 입은 생명, 상실 이후 역시 지속되는 생명, 돌봄의 피로를 견디는 생명, 역사적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도덕적 감각을 놓지 않으려는 생명의 응축으로 보인다.
시인의 서정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 듯하다. 이번 시집에는 꽃과 봄, 나비, 바람, 나무, 햇살 같은 자연의 어휘가 풍부하게 등장하는데, 이것들은 삶을 부드럽게 덮어주거나 시련으로 등장하는 전형적인 자연의 단면을 대표하는 등 추상적인 속성으로 다뤄지지 않고, 삶의 상처와 버팀을 읽어내게 하는 감각의 문자 체계로써 다뤄진다는 풀이이다.
시의 감각성은 여전히 인상 깊지만, 이전의 원초적 생명력이나 에로티시즘의 활력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꽃은 아름다움의 이름이자 동시에 견딤의 증명이다. 봄이 왔기 때문에 피는 것이 아니라, 겨울의 거친 바람과 메마른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피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이 노래하는 모든 자연물은 풍경을 이루는 사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오며 겪은 시간의 다른 이름들로 해석된다.
시인이 자연을 추상적 속성이나 배경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본다. 시 ‘풍경화’는 이런 흐름을 견지할 수 있다.
시인은 ‘봄, 행간마다 꽃으로 흘려 쓴 자국/나비 살풋 앉았다/까슬한 바람 깃을 낚아챈다/두 다리 잃은 해묵은 의자 나비가 날개로 수평을 맞춘다/무게가 뒤틀리면 금세 주저앉아 킁킁 바람을 살핀다/민들레 씨앗에서 바람의 무게를 잰다/나비 등에 업혀 멀어지는 봄의 시간/꽃들의 약속은 엄격했고/햇살 뜨거운 입김 잰걸음 곧 몰려들 즈음/간절기 넘기는 행간에/제법 물오른 초록 잎갈피를 꽂아둔다/나비, 날개를 접고 봄날은 익어간다’라고 노래한다.
시인에게 봄은 계절의 이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시인은 “봄, 행간마다 꽃으로 흘려 쓴 자국” 같은 표현을 통해 봄의 풍경을 하나의 문장 기호처럼 제시한다는 설명이다. 나비, 민들레 씨앗, 꽃잎 같은 미세한 존재들은 세계의 균형을 감지하고, 무너진 시간을 건너게 하는 감각적 매개, 세계를 이해하는 문자 체계가 된다.
이 시집의 제목은 밝고 화사한 인상과 달리 가볍지 않다. 작명소는 이름을 붙이는 곳이지만, 시인은 사물을 새 이름으로 꾸미지 않는다. 그는 오래 바라본 뒤에야 보이는 사물의 이면을 이름으로 불러낸다. 봄에는 혹한을, 꽃에는 핏자국을, 돌에는 유골의 무게를, 가시에는 가족의 말을, 눈에는 역사의 기습을 붙인다. 그렇게 붙은 이름들은 예쁜 별칭이 아니라 삶이 겪어온 시간의 요약이다.
그러므로 ‘꽃들의 작명소’는 꽃을 노래하는 시집이면서, 꽃의 이름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삶의 안쪽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집이다. 시인은 삶을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삶이 남긴 통증을 하나씩 불러보고, 그 이름을 통해 다시 견딜 힘을 얻으려 한다.
이번 시집은 ‘풍경화’를 비롯해 ‘사랑했던 날’, ‘바람의 칼날’, ‘엄마의 시간’ 등 제4부로 구성됐으며, 분주한 일상 틈틈이 창작한 시 100편이 수록됐다.
정애경 시인은 전남 순천 출생으로 2022년 ‘시와사람’ 신인상을 수상, 등단했으며 시집 ‘향기 나는 입술’, ‘도둑고양이가 물고 간 신발 두 짝’, ‘발칙한 봄’,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 등을 펴냈다. 시 나무 동인과 시와사람시학회 시목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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