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가까워지는 ‘전남의 보·물·섬’]<13>여수 안도

바다 품은 기러기 ‘상생·치유의 예술섬’으로 날아오르다
음력 삼짇날 고대 항로 기착지서 피어난 ‘두멍안’의 전설 간직
이야포 미군 폭격의 아픔 딛고 평화공원 승화… 역사·생태 조화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
2026년 06월 26일(금) 16:50
두멍안 남쪽에 자리한 이야포
안도 패총 1호 무덤
안도리마을 일상에 웃음을 더하는 골목 벽화
이른 아침 서로의 하루를 건네는 안도 해녀들
바다의 손길을 이어가는 안도 양정숙 해녀
파도와 몽돌 소리가 겹겹이 울려 퍼지는 이야포해변
이야포평화공원 산책로에 자리한 이야포평화탑
<>△다도해 푸른 물결 위 ‘치유의 쉼터’

남해안 뱃길을 달려 다도해의 푸른 물결을 가르다 보면 거대한 금오열도의 품 안에서 유독 포근하고 잔잔한 바다를 품은 섬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여수시 남면에 위치한 안도(安島)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한 마리의 기러기가 날개를 펼치고 바다 위에 내려앉은 형상을 한 이 섬은 그 이름처럼 거친 바다에 지친 이들에게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숨결을 내어주는 치유의 공간이다.



△고대 국제 항로의 숨결과 천연 포구 ‘두멍안’에 깃든 전설

안도는 한반도 해량 교류의 시원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에도 일본과 중국을 잇는 고대 국제 항로의 해상 교통 요지로 기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고승 엔닌이 847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신라 수군의 도움을 받아 귀국하던 중 안도에 정박했던 생생한 기록이 그의 저서 ‘입당구법순례행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엔닌은 기록에서 안도를 “산과 섬이 겹겹이 둘러싸여 태연해 보이는 신라의 남쪽 땅”으로 묘사하며, 군대가 주둔하고 궁궐의 말을 기르던 요충지였음을 기록했다

본래 안도는 동고지가 있는 동쪽 섬과 서고지가 있는 서쪽 섬으로 분리된 두 개의 섬이었다. 그러나 남쪽 바다에서 밀려온 흙과 모래, 자갈이 두 섬 사이의 좁은 물목에 쌓이면서 자연적인 ‘육계사주’가 형성됐고, 이로 인해 섬 안쪽에 호수처럼 잔잔한 천연 포구인 ‘두멍안(둠벙안)’이 탄생했다. 이 독특한 지형 덕분에 안도는 예로부터 거센 태풍이 불어올 때마다 다도해를 오가던 수많은 어선과 무역선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어 비바람을 피하던 최고의 피항지 역할을 해왔다. 1915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 기러기 안(雁)자를 써서 ‘기러기 섬’이라 불렸던 이 섬은 언제나 바다 위에서 안전한 울타리가 돼 주었던 역사적 성격을 따라 오늘날 ‘편안할 안(安)’자를 쓰는 안도(安島)로 그 이름을 이어오고 있다.



△비극을 평화와 치유로 승화…이야포 해변의 역사적 여정

안도 주민들의 정갈한 일상이 흐르는 마을 남쪽에는 파도와 몽돌이 부딪치며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이야포 해변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이곳은 멸치를 잡고 삶아 말리던 멸막이 번성하고, 어민들이 그물을 놓고 올리면서 부르던 어업요 ‘이야이야’ 가락이 바다에 가득 울려 퍼지던 풍요로운 황금어장이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몽돌해변은 우리 민족의 가장 깊은 비극과 상처를 품은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1950년 8월 3일 정부의 명령에 따라 피난민 350여명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화물선이 잠시 정박해 있던 이야포 앞바다에 미군 폭격기가 나타나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배에는 태극기가 꽂혀 있었고 대응 능력이 전혀 없는 피난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총탄과 폭격 속에 다수의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다. 인근 ‘두룩여’에서 조기잡이를 하던 민간인 선박들 역시 같은 화를 당했다. 이 참혹한 사건은 전쟁의 혼란과 이념의 장벽 속에 60여년간 누구도 꺼내지 못한 채 잊혀진 기억으로 묻혀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과 유족들의 끈질긴 증언,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 끝에 마침내 국가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공식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인정받았다. 지난 2025년 5월에는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고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개토제가 안도리 일대에서 엄숙히 거행돼 역사바로세우기의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현재 이야포 해변에는 미군 폭격사건 민간인 희생자 추모탑과 평화공원이 조성돼 상처를 평화의 가치로 승화시키고 있다. 부드러운 몽돌 소리를 들으며 이야포 평화공원을 걷는 것은, 단순히 풍경을 소비하는 관광을 넘어 섬이 품은 역사적 깊이와 아픔을 공유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숭고한 여정이다.



△맨몸으로 청정 바다의 역사 지켜온 안도 해녀들

안도 주민들의 삶을 전통적으로 지탱해 온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나잠어업’이다. 산소통이나 현대적인 기계 장비 없이 오직 물안경과 오리발에만 의지한 채 수심 깊은 바닷속에서 전복을 캐고 소라와 미역을 채취하는 이 전통 방식은 안도 공동체의 살아있는 역사다.

과거 수십 명에 달했던 안도의 해녀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대부분 은퇴하고, 현재는 양정숙 해녀를 포함해 몇몇 해녀가 끈끈한 유대를 바탕으로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해녀는 혼자서는 물질을 할 수 없다. 서로의 호흡과 생명을 확인해 줄 ‘물벗’이 있어야만 거친 조류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에 안도의 해녀들은 오늘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손을 맞잡으며 차가운 바다의 리듬 속으로 몸을 던진다.

안도 주민들은 이 전통을 단절시키지 않기 위해 미래 세대에게 물질 기술을 전수하고 어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해녀·해남 학교’ 설립을 추진하며 새로운 미래를 차분히 준비해 나가고 있다.



△섬박람회와 만난 안도의 미래…상생 관광 프로젝트와 K-디저트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를 앞두고 안도는 섬 고유의 가치를 살린 지속가능한 관광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핵심은 ‘섬 기업 상생 관광 프로젝트’로, 금오도·안도 비렁길 1~5코스(18.5㎞) 트레킹과 캠핑, LNT 환경 실천, 방풍나물 수확 체험, 비치코밍 등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은 2박 3일 체류형 섬 아웃도어 상품이다. 안도기러기캠핑장·방풍도가·지역 식당·주민 가이드 등 지역 주민이 단순 시설 제공자가 아닌 콘텐츠 공동 운영자로 참여하며, 참가비의 약 65%가 지역으로 직접 환류되는 상생 구조를 갖췄다. 폐교 부지를 활용한 안도기러기 캠핑장 내 ‘안도 역사전시관’은 마을의 문화·역사를 주민의 목소리로 전하며, ‘섬 주민과 함께 나누는 오감만족 행복담기’ 프로그램을 통해 금오도·안도·개도·낭도 등 4개 섬을 찾아가는 문화예술공연과 주민 공동식사, 관광지 버스킹, 여수 섬 전경 및 섬복지활동 사진 전시회까지 더해져 섬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풍성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선사할 예정이다.

또 안도는 현재 행정안전부의 ‘섬 특성화 사업 2단계’를 추진하며 마을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소득 기반을 다지고 있다. 그 핵심은 안도 청정 해역의 대표 특산물인 우뭇가사리와 톳 등 해조류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K-디저트(K-Dessert) 개발 계획’이다. 전통적인 채취와 가공에 머물렀던 해조류를 고부가가치 웰니스 푸드로 전환하여 섬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안도만의 독창적인 맛을 선물하고, 젊은 세대가 섬에 정착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주민들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평화 공존 ‘섬스팟 투어’ 명소

안도대교를 지나 섬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안도가 숨겨둔 보석 같은 명소들이 탐방객을 반긴다. 가장 먼저 걸어야 할 길은 다도해 최고의 명품 길로 꼽히는 ‘금오도 비렁길 3코스’와 이와 연계된 ‘안도 기러기길’이다. 아찔한 해안 벼랑을 따라 개설된 탐방로를 걷다 보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청정 바다와 기암괴석이 자아내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압도된다. 길 끝에서 만나는 ‘이야포 평화공원’은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검은 몽돌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정겨운 소리가 마음의 속도를 한없이 늦춰주는 치유의 해변이다.

섬의 서남단에 위치한 ‘안도 서고지’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국가어항이다. 서고지 선착장 앞바다에는 푸른 물결 위에 가두리 양식장들이 정렬해 있고, 철새들이 내려앉아 쉬어가는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최근 연안 어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조성된 ‘낚시다리(인도교)’와 해양레저 휴양 시설들은 강태공들뿐만 아니라 섬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탁 트인 바다 산책로를 제공하며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 섬 동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고지 명품마을’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주민들의 순박한 일상과 아름다운 아침 해를 맞이할 수 있는 안도 여행의 종착지다.



△주민 공동체 온기…자연 존중하는 섬의 위대한 유산

안도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오면서 “바다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잠시 빌려 쓰는 곳”이라는 숭고한 철학을 몸소 실천해 왔다. 거친 바다의 리듬 속에서도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내일은 오늘보다 편안하길” 가만히 기도하는 주민들의 소박하고 정길한 마음이야말로 안도를 더욱 빛나게 하는 가장 큰 자산이다.

다가오는 박람회 시즌, 다도해의 푸른 노을이 포구를 붉게 감싸는 저녁 무렵 안도의 기러기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오래된 자연의 위로와 내일을 향해 조용히 미소 짓는 섬사람들의 위대한 삶의 결이 맑게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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