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로봇, 소비를 고민할 때다

정현아 산업경제부장

정현아 기자 aura@gwangnam.co.kr
2026년 07월 16일(목) 18:44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낯선 영상 하나를 추천했다. 로봇 두 대가 링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장난감 로봇들의 이벤트쯤으로 생각했다. 투명한 방탄 케이지 안에서 서로 부딪히고 쓰러지는 로봇들, 그리고 그것을 원격으로 조종하며 싸움을 붙이는 인간들. 무심코 영상을 따라가다 보니 희한하게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묘한 긴장감이 솟았다.

로봇의 형태는 제각각이었다. 도끼형 무기, 회전 날, 충격 장치까지 장착된 기계들은 승리를 위해 설계된 전투형 플랫폼이었다. 관중들은 환호했고, 경기장은 하나의 쇼처럼 소비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치한 기계 싸움’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것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의 초기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이런 형태의 로봇 격투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하나의 콘텐츠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격투 리그가 관중을 모으며 이벤트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고, VR 기반 원격 조종 방식도 등장했다.

중국 역시 대학과 기업이 참여하는 휴머노이드 격투 리그를 통해 기술 경쟁과 실증 테스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로봇을 더 이상 연구실 속 대상이 아니라 대중이 소비하는 ‘경기 콘텐츠’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은 단순한 쇼를 넘어 기술 발전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균형 제어, 충격 대응, 강화학습 기반 전신 제어 기술이 실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된다. 산업용 로봇과 휴머노이드 기술이 동시에 발전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결국 로봇 격투는 오락성과 기술 실증 기능을 동시에 가진 새로운 산업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시선을 국내로 돌리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한국 역시 로봇을 미래 산업의 핵심 축으로 규정하고 다양한 연구와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초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에서 공개된 현대차그룹 산하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피지컬 AI 시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았다. 정교한 균형 감각과 자연스러운 동작은 로봇 기술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상징했다.

광주 역시 AI와 미래 산업을 도시 전략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AI 중심도시 조성, 미래 모빌리티, 데이터 기반 산업 육성 등 다양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시민 입장에서는 “나랑 무슨 상관?”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직 시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콘텐츠형 사업’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산업과 기술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도시의 문화와 관광, 일상 경험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제한적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로봇을 ‘만드는 도시’를 넘어, 로봇을 ‘보는 도시’, ‘즐기는 도시’로 확장하는 것이다.

최근 서울의 유력 기획사들이 로봇 패션쇼, 댄스 공연, 체험형 이벤트 등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런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실과 공장에 머물던 기술이 무대와 거리로 나오는 순간이다.

조금 더 과감하게 말하면, 광주가 로봇 격투 리그와 같은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거나 실험해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산업 기술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관광 콘텐츠다. 이미 미국과 중국이 각각의 방식으로 로봇 격투 이벤트를 산업화하고 있다면, 한국도 그 흐름에서 완전히 비켜 있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지역 단위에서 새로운 모델을 먼저 시도해볼 수도 있다.

광주는 이미 문화와 예술, 민주·인권·평화라는 도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미래 산업 콘텐츠를 결합하는 시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과거 조선대학교 체육관이 e스포츠 경기장으로 변하며 한국 e스포츠의 상징적 공간이 됐던 것처럼, 새로운 산업도 공간과 결합될 때 의미를 갖는다.

20년 전 게임은 단순한 오락으로 여겨졌지만, 지금 e스포츠는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 자리 잡았다. 로봇 역시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산업 현장에서 출발한 로봇 기술이 결국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이다.

AI와 로봇이 결합하는 피지컬 AI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남은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활용의 방식’이다.

우리는 이 기술을 어디에서,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 만약 그 무대를 광주가 먼저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도시의 산업 구조와 이미지를 동시에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과감하게 결단하고 한발 먼저 시작하면 맨 앞자리에 설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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