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기록을 위한 돌봄인가, 돌봄을 위한 기록인가 최진영 ㈜윙스 대표
최진영 gn@gwangnam.co.kr |
| 2026년 08월 11일(화) 1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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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영 ㈜윙스 대표 |
아동의 상태와 변화, 상담 내용, 서비스 제공 과정과 보호자 전달사항을 남겨야 한다. 기록은 서비스의 연속성을 지키고 전문가의 판단을 뒷받침하며, 이용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장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현장에서는 이런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돌봄을 더 잘하기 위해 기록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록을 완성하기 위해 돌보고 있는 것일까.
아동발달 현장의 전문가들은 아이를 만나기 전 일정을 확인하고, 회기가 끝나면 상담 내용과 관찰 결과를 정리한다. 보호자에게 전달할 내용을 작성하고 장·단기 계획서와 평가보고서를 만든다. 센터에서는 수납과 미납, 바우처, 회기 횟수와 각종 증빙서류를 다시 확인한다. 하나하나 필요한 업무지만, 이 일이 겹치면 정작 사람을 만나고 이해하는 데 써야 할 시간이 줄어든다. 아이의 작은 변화를 세심하게 살피는 일보다 빈칸을 채우는 일이 먼저가 되는 역설도 생긴다.
기록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옮겨 적고, 이미 존재하는 정보를 다시 확인하며, 행정의 실수를 막기 위해 사람이 끊임없이 긴장해야 하는 구조다. 좋은 기록은 돌봄의 질을 높이지만, 과도하고 반복적인 기록은 돌봄의 집중력을 빼앗는다. 기록이 사람을 돕는 도구를 넘어 사람을 통제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인공지능은 이러한 반복을 크게 줄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정 변경에 따라 관련 정보를 정리하고, 누락된 기록을 알려주며, 축적된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서의 초안을 만드는 일은 이제 기술이 상당 부분 도울 수 있다. 그렇다면 AI가 발전할수록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역할은 줄어들게 될까.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반복적인 업무를 맡을수록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의 가치가 더욱 분명해진다.
AI는 아이가 오늘 평소보다 말수가 줄어든 이유를 진심으로 걱정하지 않는다. 보호자의 짧은 대답 뒤에 숨어 있는 불안과 미안함을 온전히 헤아리지도 못한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변화가 처음 나타난 순간 함께 기뻐하고, 쉽게 나아지지 않는 시간 곁을 지키는 것도 결국 사람의 몫이다.
데이터는 변화를 포착할 수 있지만, 그 변화가 한 아이와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판단하고 책임지는 일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진심이 더 중요해진다. 지식과 문장을 만들어내는 비용이 낮아질수록 누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보다 누가 상대의 상황을 끝까지 이해하려 하는가가 차이를 만든다. 비슷한 보고서와 안내문을 누구나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시대에는 정확한 문장보다 그 문장에 담긴 관찰과 책임이 더 중요하다. 기술이 평균적인 답을 빠르게 제시할수록 사람은 한 명의 삶에 맞는 질문을 더 깊게 던져야 한다.
하지만 진심을 개인의 희생과 헌신으로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밤늦게까지 기록을 마친 전문가에게 더 세심하게 아이를 바라보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진심을 지킬 수 있으려면 그에 맞는 시간과 환경이 필요하다. 반복 업무를 줄이고 정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만드는 것은 단순한 효율화가 아니다. 전문가가 소진되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과 관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의 기반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기술기업 역시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에 앞서 무엇을 줄여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기능의 수와 자동화율만으로 혁신을 설명해서는 부족하다. 기술을 도입한 뒤 전문가가 아이를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지, 보호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들을 수 있게 되었는지, 퇴근 후에도 이어지던 업무가 줄어들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현장에 남겨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기술의 진짜 성과여야 한다.
기록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기록의 목적은 관리 자체가 아니라 더 나은 돌봄이어야 한다. AI가 기록을 돕고 반복을 덜어낼수록, 우리는 절약된 시간을 다시 사람에게 돌려줘야 한다. 기술이 사람의 자리를 빼앗지 않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그것이 돌봄 현장에서 AI가 맡아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앞으로 좋은 돌봄을 결정하는 것은 가장 많은 데이터를 가진 기관이나 가장 많은 기능을 갖춘 기술만은 아닐 것이다.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한 사람을 숫자와 기록으로만 보지 않는 태도,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까지 들으려는 노력, 그리고 끝까지 곁을 지키려는 책임이 돌봄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AI가 더 똑똑해지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사람다워져야 한다. 결국 돌봄을 완성하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사람의 진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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