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는 만큼 가까워지는 ‘전남의 보·물·섬’] <15>여수 초도 바다 위 별처럼 흩어진 풀섬…공동체 삶을 품다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 |
| 2026년 08월 26일(수) 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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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산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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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마을 당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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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도 대도항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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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성마을 돌미역 채취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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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이 만들어낸 의성마을 돌미역 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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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성마을 은혜갚은 팽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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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도 대동마을 웃당 |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뱃길을 따라 먼바다로 나아가면 크고 작은 섬들이 수평선 위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삼산면의 중심 섬 중 하나인 초도가 있다. 화려한 관광시설보다는 높은 산과 몽돌해변, 해조류가 풍성한 갯바위, 오랜 세월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주민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섬이다.
초도는 하나의 섬만을 뜻하지 않는다. 유인섬인 초도를 중심으로 22개의 무인섬이 어우러진 총 2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다. 섬 면적은 약 900㏊로, 대동·의성·진막 등 세 마을이 자리한다. 1965년 전남도가 발간한 ‘호남약도’에도 초도와 주변 작은 섬들, 상산봉과 주요 마을, 인근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와 해조류가 상세하게 표시돼 있다. 오래전부터 초도가 먼바다 어업과 주민 생활의 중요한 터전이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섬의 관문인 대동항은 국가어항이다. 어선의 활동과 대피, 수산물 유통뿐 아니라 섬 주민들의 생활을 이어주는 기반시설의 역할을 한다. 여행객에게는 초도를 처음 만나는 곳이지만 주민에게 대동항은 육지와 섬, 일터와 집을 연결하는 삶의 출발점이다.
△다도해 품은 상산봉
초도를 대표하는 풍경은 섬 중앙에 우뚝 솟은 해발 339m의 상산봉에서 시작된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시야가 활짝 열리고, 날씨가 맑은 날에는 거문도와 백도는 물론 멀리 제주도까지 바라볼 수 있다.
대동리 초도여객선터미널에서 바람재와 상산봉 정상을 지나 정강재와 해안일주도로를 거쳐 다시 터미널로 돌아오는 탐방코스는 약 8㎞다. 산행과 섬길 걷기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초도 트레킹의 매력이다.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상산 일대의 자연굴과 길을 ‘피난길’, ‘비단길’, ‘비단굴’, ‘뽈주구먹’ 같은 이름으로 불러왔다.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라 섬사람들의 언어와 생활의 기억이 묻어 있는 길이다.
산을 내려오면 또 다른 초도의 얼굴을 만난다. 대동마을과 진막마을 사이의 대풍해수욕장은 길이 약 500m에 이르는 검은 몽돌해변이다. 해변 한쪽에는 소나무숲이 자리하고, 사람 인(人)자 형태의 독특한 바위는 주민들에게 ‘사랑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진막마을 앞 안목섬에서는 사리 때 바다가 갈라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물이 빠지면 섬과 섬 사이로 길이 드러나고 주변 갯바위에서는 뿔소라와 해삼, 문어, 게, 가사리 등 다양한 해양생물을 만날 수 있다. 초도의 여행은 산 정상에서 다도해를 내려다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갯바위와 몽돌해변, 무인섬으로 이어진다.
△돌미역과 해녀가 지켜온 초도의 생업
초도 주민에게 바다는 오래전부터 삶을 일구는 또 하나의 밭이었다. 특히 섬 동쪽 의성마을 해안은 돌미역과 다양한 해조류가 자라는 ‘돌미역밭’으로 불린다. 매년 2~3월이면 주민들이 물때를 맞춰 갯바위로 나가 돌미역을 채취한다.
눈여겨볼 것은 채취 방식이다. 주민들은 돌미역을 뿌리째 뽑지 않고 밑동을 남긴 채 줄기를 잘라낸다. 올해의 수확만을 바라보지 않고 다음 해에도 다시 자랄 수 있도록 바다의 자원을 함께 관리해 온 것이다. 돌미역 외에도 돌김과 가사리, 꾸죽이라 불리는 뿔소라, 해삼, 거북손, 보말, 문어 등이 계절을 달리하며 주민들의 밥상과 생계를 채운다.
진막마을을 비롯한 각 마을에는 나잠어업의 전통도 이어진다. 해녀들은 마을마다 정해진 공동어장에서 전복과 해삼, 뿔소라, 돌미역 등을 채취하고, 공동 작업으로 얻은 수산물은 어촌계를 중심으로 함께 판매한다. 바다에서 얻는 자원을 혼자 독점하기보다 규칙을 정해 나누는 방식이다. ‘바다밭’을 함께 가꾸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원리가 오늘까지 이어져 온 셈이다.
△당제 지내고 계포 꾸리던 공동체의 섬
초도의 진짜 이야기는 자연경관보다 마을 안으로 한 발 더 들어갔을 때 선명해진다. 대동마을에서는 오랜 세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제가 이어져 왔다. 정월 초하루 웃당에서, 이튿날 아랫당에서 제를 지낸 뒤 헌식제와 매구가 이어졌다. 주민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풍물을 치고 음식을 나누던 과정은 신앙이면서 동시에 모두가 어우러지는 마을 축제였다.
주민들이 보존해 온 옛 문서에는 더 특별한 공동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오늘날 어촌계와 비슷한 ‘계포’가 대표적이다. 주민들은 계포장과 계포원을 두고 여러 반으로 나눠 인근 무인도의 해초를 채취하거나 지선어장에서 고기잡이를 했다. 여기에서 얻은 수익 일부는 다시 마을 운영에 사용했다. 1951년 작성된 회의록과 회계자료에는 주민들이 마을 일을 논의하고 비용을 분담했던 기록도 남아 있다.
‘수지끝’, ‘낭끝’, ‘당머리끝’, ‘군바구’, ‘신들메’와 같은 순우리말 지명과 사람의 성격이나 말버릇에서 비롯된 별호도 초도만의 독특한 생활문화다. 섬의 역사는 거대한 유적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부르는 지명과 말, 회의록 한 장, 바다를 함께 이용하는 약속 속에서도 이어진다.
△섬 어른에게 차려낸 ‘온정밥상’
초도 공동체의 힘은 오늘의 삶에서도 확인된다. 2023년 2월 겨울 한파가 닥쳤을 당시 대동마을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였지만 섬에는 식재료를 살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고, 거친 날씨로 배까지 끊기면서 식사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
당시 마을 이장이었던 김진수씨가 외부에 사정을 알리자 전국 각지에서 식재료가 보내졌고, 부녀회와 주민들도 힘을 보탰다. 함께 비빔밥을 만들어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면서 시작된 나눔은 ‘온정밥상’이라는 새로운 공동체 문화로 이어졌다. 시대가 달라져도 어려움 앞에서 서로의 밥상을 챙기는 마음만큼은 옛 계포와 당제의 공동체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성마을 특성화사업 추진
오래된 공동체를 지켜온 초도 의성마을에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의성마을은 현재 섬 지역 특성화사업 2단계를 추진하며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마을사업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외부에서 정해진 사업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마을의 자원과 여건을 살펴보고, 함께 운영할 사업과 소득모델을 구체화해 나가는 과정이다.
현재 주민들은 마을의 새로운 거점이 될 ‘행복한 의성상회’를 중심으로 사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상회 운영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고 추가 공간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한편, 관련 법·제도와 규제사항을 확인하고 전체 공간 배치계획도 마련하고 있다. 주민협의체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조직체계를 정비하고 사업 실무를 맡을 사무장 선임 등 지속적인 사업 추진을 위한 역할 분담도 논의하고 있다.
마을의 자원을 상품으로 연결하기 위한 준비도 구체화되고 있다. 주민들은 섬의 날 행사에 참여해 꾸러미 상품을 선보이는 한편, 일회성 판매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판매로 이어질 수 있는 구독형 판매체계도 검토하고 있다. 수산물 가공과 농산물 포장 등의 법적 가능성을 살피고, 꾸러미 상품의 구성과 판매계획을 실제 운영 가능한 수준까지 구체화하는 것이 앞으로의 주요 과제다.
초도의 미래는 단순히 관광객을 많이 불러들이는 데 있지 않다. 섬에서 생산된 자원이 주민의 소득으로 이어지고, 그 수익과 경험이 다시 마을에 쌓이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의성마을 특성화사업이 주민들이 함께 결정하고 운영하는 지속 가능한 마을사업으로 자리 잡는다면, 초도가 오랫동안 지켜온 자연과 공동체의 가치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또 하나의 기반이 될 것이다.
△별이 뜨는 풀섬…미래 위한 불 밝힌다
초도는 아직 잘 다듬어진 관광지는 아니다. 배편과 날씨의 제약이 있고 여행객이 쉬거나 먹고 머물 수 있는 기반도 더 갖춰져야 한다. 현지에서도 탐방로 관리와 휴게공간, 식사와 숙박 여건 개선, 섬의 이야기를 전할 전문 인력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불편함 덕분에 초도에는 아직 섬다운 풍경이 많이 남아 있다. 상산봉에 올라 바다에 흩어진 작은 섬을 바라보고, 의성마을 갯가에서 돌미역을 거두는 주민을 만나고, 대동마을 골목에서 오래된 지명과 당제 이야기를 듣는 여행. 초도에서의 하루는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소비하는 여행과는 다른 시간을 선물한다.
2026여수세계섬박람회를 계기로 세계의 시선이 여수의 섬으로 향하고 있다. 그때 초도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거대한 시설이나 인공적인 볼거리가 아니다. 바다를 밭처럼 아끼고, 수확을 나누고, 어른의 밥상을 함께 챙기며 살아온 섬사람들의 방식이다.
상산봉 아래 대동·의성·진막 세 마을과 주변의 작은 무인섬들이 별처럼 떠 있는 초도. 오래된 삶의 방식을 지키면서도 주민 스스로 다음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미래의 섬의 모습에 대해 초도는 바다와 마을,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해답을 보여주고 있다.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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