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파우제, PAUSE

이당금 예술이빽그라운드 대표

이당금 gn@gwangnam.co.kr
2026년 08월 27일(목) 17:50
이당금 예술이빽그라운드 대표
숲의 정령 아포렌카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여유를 만끽하죠. 눈을 감아봐요, 숲속 그루터기에 등을 대고 완전히 누워 한쪽 무릎을 세우고, 두 팔을 벌리고, 작은 동물 친구를 배 위에 올려놓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요.

발을 까딱거리며 흥얼거리는 노래소리는 숲의 아이들을 불러내죠. 장난끼 가득한 웃음소리가 먼저 달려와 거침없이 떨어진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트리하우스 만들어 새들과 숨바꼭질을 하네요. 물오리 사이로는 수달이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어요. 어느새 달려온 아이들은 그 흐름의 틈을 비집고 물 수제비를 날립니다. 물위에 파장이 일어납니다. 잔잔하게.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오히려 지난 시간이 보이더군요.

그런 순간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언제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을까.

수술 이후 나는 거침없이, 쉴 새 없이 달려왔어요. 숨쉴틈도 없이 몇개의 공연을 계획하고 실연했어요. 그 와중에 ‘동구칠성 예술골목 여행가이드’ 리뉴얼과 영문 책자까지 미친 듯이 마무리했죠. 마치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합니다. 얼마나 일했는지, 무엇을 만들었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예술가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요. 작품을 만들고, 공연을 올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합니다.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누구보다 스스로를 증명하며 사는 사람이 예술가인지도 모르겠어요.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의 불행은 홀로 방 안에 조용히 머물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이유가 어쩌면 자기 자신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죠.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무언가를 계속했다면, 이제는 온전한 나로 머물 공간이 절실해졌습니다

‘그녀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혼자 있게 내버려 두었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는 누구의 아내나 엄마, 혹은 사회적 역할을 짊어진 사람이 아닌 ‘온전한 나’로서만 존재하고자 하는 주인공 수전에게 낡고 텅 빈 ‘19호실’이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내게도 그런 19호실이 절실했다는 것을요.

나 역시 멈추면 불안이 금방이라도 내 심장을 옥죌 것 같았어요. 좀 더 살고 싶고 빨리 죽고 싶지 않았죠. 누군들 죽음이라는 경계 앞에서 초연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더 일하고, 더 움직이고, 더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잖아요. 그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13시간을 날아와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나를 알려면 나와 관련된 감정이나 이해관계, 오래된 습관과 익숙함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그제야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평가는 쉽게 자기만족이 되고, 자칫 맹목적인 자기합리화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제는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왔으니, 나만의 숨 쉴 공간에서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예술가에게 쉼은 창작을 중단하는 시간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다시 낯설게 바라보는 시간이 아닐까요.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에서 벗어나 걷고, 보고, 듣는 것.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집을 짓는 모습과 물오리 사이를 헤엄치는 수달 앞에서 오래 머무는 것, 새로운 예술은 이런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시간에서부터 시작하니까요.

예술가의 자유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만은 아닐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목적 없이 바라볼 자유, 아직 작품이 되지 않은 것을 그대로 놓아둘 자유.

음악과 연극에서 파우제(Pause)는 단순한 멈춤이 아니죠. 침묵도 음악이고, 배우가 말을 멈춘 순간에도 무대의 시간은 흐릅니다. 다음 음과 다음 대사가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시간입니다.

삶도 그렇겠죠.

지난 8개월 동안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는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살아 있음을 믿어보려고요. 천천히, 시나브로.

이번 여행은 ‘PAUSE, 파우제’입니다. 어쩌면 쉰다는 것은 삶에서 잠시 빠져나오는 일이 아니라,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는 일일겁니다.

나의 이 고요한 파우제가, 지금 숨 가쁘게 달리고 있을 당신에게도 가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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