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문화예술로 풍성한 한가위만 같아라

백승현 대동문화 전문위원

백승현 gn@gwangnam.co.kr
2026년 09월 03일(목) 16:40
백승현 대동문화 전문위원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이내 한 말 들어보오. 인간이 모두가 팔십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근심 걱정 다 제허면 단 사십도 못 산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조상현 명창의 단가 ‘사철가’ 한 대목이다.

우리 인생을 만약 80세라고 가정하면, 제대로 사는 날이 40년뿐이라니, 50%는 삶의 질 평가에서 제외해야 한다.

사람이 하루에 7~8시간은 자야 다음 날 힘을 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수면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면 남은 40년 중 1/3은 제대로 사는 날에서 빼야 한다.

통계청 2025년 조사의 한국인 ‘생명표’에 ‘병에 걸린 기간’은 83세 기대 수명 치로 평균 계산하면 17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평생 중 10여 년을 병고에 시달리는 셈이다. 병에 걸리면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철가’의 이론(?)에 대입하면, 우리는 80 평생 15년에서 18년을 근심 걱정만 하면서 지내는 셈이고, 근심 걱정하는 시간은 ‘못 산 인생’으로 사나마나 한 삶이라는 것이다. ‘걱정은 뼈를 녹인다’, ‘근심은 수명을 갉아 먹는다.’는 조상님들의 속담 조언도 우리 마음의 뼈를 때린다.

곧 추석이다. 큰집 장형은 앞으로의 날짜를 일러주면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선산 예초에 갈 예정이니 친척 형제들과 어디로 오라는 준엄한 직무 하달이다. 1년에 한번 비상 소집령이 내려온다. 그 많은 조상 묘를 하루에 다 처리할 수 없어 이틀을 잡았다. 무거운 예초기 매고 끙끙거릴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명절 이후와 이전으로 회사 일도 가닥이 나뉜다. 전에 해야 할 일은 서둘러 마무리하고, 명절 이후에 해야 할 일정도 잡아놓아야 한다. 추석 전에 밀린 돈을 결제하고 영수 독촉도 해야 직원들 성과급이라도 줄 수 있다.

집안 청소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가족들을 위해 차례 음식도 마련하고 용돈도 준비해야 한다. 요즘은 추석 용돈 봉투나 선물 세트가 두둑하지 않으면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 눈치를 본다. 매를 본 꿩의 눈초리가 된다.

눈을 밖으로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이 마주한 현실은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다.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 등을 버텨내고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또 추석 쇨 걱정이 앞선다.

배추, 시금치 등 채소와 과일 가격이 크게 올랐다. 차례상 마련하기가 녹록지 않아 주부들은 가재미눈이 됐다. 쌀을 비롯한 기본 식료품과 수산물 가격이 올라서 가계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일용직 근로자나 현장 노동자 등 기상 상황에 직접적으로 생계가 좌우되는 서민들은 폭염과 폭우로 인한 작업 중단으로 소득 불안정을 겪고 있다.

추석 명절이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연휴에, 풍성한 가을 축제이지만,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한숨이 되는 것이다.

정부가 물가 안정 대책을 마련하고 지방자치단체들도 민생안전 지원금을 지급해 고통스러운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만족도는 아직이다.

여기에 서민의 삶과는 딴전인 정치적 위기도 차례상 입방아에 오를 것이다. 극단적인 진영 논리와 소통 부재, 혐오와 조롱이 판치는 참담한 사회 문화, 사법의 정치화, 대의민주주의의 실종 등 나라 살림이 정돈되지 못해 정치적 풍향계는 민생을 향하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인생의 한정된 시간 속에서 모든 순간을 근심으로 채울 수는 없다. 고단한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메마른 정서를 적셔줄 쉼과 치유의 시간이 오히려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 곁에는 물질적 풍요를 대신하여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다채로운 풍요로운 가을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이 기다리고 있다. 여수세계섬박람회, 황룡강 가을꽃 축제 등과 광주비엔날레, 추억의 충장축제, 국립아시아전당 기획 공연 및 전시 등 문화예술 이벤트와 축제들의 풍성한 문화 상차림이 그것이다.

생계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문화’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는 것은 머쓱하고 무람한 일이다. 그렇지만 바로 이럴 때일수록 삶의 터전에서 지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메마른 마음을 어루만져 줄 정신적 치유와 문화적 위안뿐이다.

문화 향유는 국민이 일상 속에서 문화적 가치를 누리며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다운 존엄을 회복하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인간다운 삶의 생존권이다. 그래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의무이자 책임을 꼭 준수해야 한다.

경제적 결핍이 영혼마저 갉아먹도록 내버려 둘 때, 사회 전체의 공동체적 유대는 급격히 무너져 내린다. 반대로 도심 속 축제의 소리, 이웃과 함께 나누는 소박한 예술적 경험, 그리고 자연 속에서 얻는 휴식은 근심과 걱정을 털어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힘을 길러준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바라본다. 걸음이 느린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는 것이다.’ 며칠 전 클래식 음악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다. 느리지만 우리 내면의 속도에 발맞추어 몸과 마음이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자는 말이다.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 준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진정으로 돌보는 치유의 과정이며, 삶의 방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멈춤이다. 우리에게 멈춤은 문화를 향유하며 느끼는 감동과 충만함의 순간이다.

다가오는 명절, 물질적 셈법에만 갇혀 몸과 마음이 힘든 우리들이 풍성한 문화의 온기를 스스로 찾아가 보는 문화 누림을 실천해야 한다. 걱정 근심을 잠시 내려놓고 문화 예술의 손을 잡을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날들을 향해 다시 힘찬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걸음이 느린 우리의 영혼을 기다려 얼굴을 한번 쓰다듬어 주고 다시 내일을 향해 보조를 맞춰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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