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인도의 어둠 응시하며 ‘대안의 세계’ 꿈꾸다

― 아룬다티 로이의 장편 ‘지복의 성자’
문학평론가 고명철 교수(광운대)

고명철 gn@gwangnam.co.kr
2026년 09월 03일(목) 16:42
고명철 교수
인도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Aundhati Roy, 1961~)의 장편 ‘지복의 성자’(민승남 옮김, 문학동네, 2020)는 그의 첫 장편소설 ‘작은 것들의 신’(1997) 이후 이십 년 만에 출간한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작은 것들의 신’이 맨부커상을 수상(1997)한 이후 로이는 소설은 아니지만 보고문 형식인 르뽀와 에세이 글쓰기를 통해 인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국민국가의 온갖 근대화 프로젝트가 수반하는 정치경제적 및 사회문화적 문제들에 대해 매우 날카로우면서도 심층적 비판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로이의 ‘지복의 성자’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 소설 발간 후 이십 여 년의 간극을 두고 그가 무엇에 대해 어떤 고민과 비판적 성찰을 소설 외의 글쓰기에서 래디컬하게 실천해왔는지 곱씹을 필요가 있다.

로이가 우선 주목한 관심사는 인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수력 발전을 위한 댐 건설 및 산업 공단 구축 등 무분별한 토건사업이 낳은 공동체 붕괴, 맹목적 (첨단)신흥도시 개발 및 도시 난개발 정비로 인한 생태파괴, 인도 곳곳에서 자행되는 카스트 계급의 반윤리적 행태, 다수 종교인 힌두교의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차별주의, 인도 사회에 침잠돼 있는 부정부패, 인도의 두 접경 지대(카슈미르와 동북부 접경지대)에서 일어나는 극우 내셔널리즘과 반인권적 폭력 등이다. 로이에게 이것들은 개별 국민국가 인도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떠안고 있는 것이며, 특히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패권 국가로서 발전과 성장에 몰입하고 있는 인도의 어두운 근대의 적나라한 얼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 이 문제들은 인도 사회의 오랜 시간 속에서 난마처럼 뒤엉켜 있듯, 글로벌 사우스의 현안이 보태지면서 ‘인도-근대(Indian Modern)’가 낳은 문제들에 대한 로이 글쓰기의 분투의 대상이다. 그래서 ‘지복의 성자’는 그동안 우리에게 낯익은 서구 근대의 장편소설의 서사와 어울리지 않는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는 서구 근대 장편소설을 염두에 둔 플롯의 유기적 짜임새이든지, 플롯의 해체이든지, 플롯 자체에 구애됨 없이, ‘인도-근대’의 어둠을 응시하여 그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로이가 창안한 서사적 재현의 글쓰기에 진력함으로써 근대세계를 위반·모반·전복하는 정치사회적 미의식을 실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로이가 ‘지복의 성자’에서 그만의 서사적 재현을 창안한 데에는, ‘인도-근대’의 어둠이 개별 국민국가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를 대상으로 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 산출되고 있는 세계악(世界惡)이 포개져 있어, 이것은 어떤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종래 장편소설 플롯의 힘을 통한 세계에 대한 응전이 이렇다할 서사적 파급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인도 사회에서 최하층 카스트의 삶을 살고 있는, 생물학적 젠더적 성별 측면에서 ‘여장 남자(히즈라)’로 살고 있는 작중 인물들의 시선에 포착된 인도 사회의 어둠을 보고문, 르뽀, 다큐멘터리, 증언 등으로 재현하는 데 총력을 쏟는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 인도의 또 다른 미래를 꿈꾼다. 작중 인물 ‘안줌’은 히즈라로서 대지의 버림받은 존재들(길거리 동물, 최하층 빈민 카스트, 히즈라 등)과 장례식장을 겸한 묘지 잔나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바로 여기서 비루하지 않은 행복한 세계를 꿈꾸며 살고 있다. 어느날 ‘안줌’은 자식으로 받아들인 여자애와 밤거리 산책을 하다가 그곳 근처 웅덩이에 오줌을 누이고는, 비루하거나 욕되지 않게 뭇 존재들의 삶과 죽음이 얼마나 성스러운 것인지, 악무한의 ‘인도?근대’에 종속하지 않는 경이로운 세계를 살 꿈에 행복하다. 그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그들이야말로 비천한 존재를 넘는 ‘지복의 성자들’이다. 그렇다면, 작가 로이는 여자애가 오줌을 눈 웅덩이에 비친 “밤하늘과 별들과 천 년 묵은 도시”(573쪽)에서 살고 있는 ‘지복의 성자들’과 함께 어떤 세계를 꿈꿀까. 그것은 글로벌 노오스(Global North) 중심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꿈꿀 수 없듯,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대안의 세계’를 향한 상상력으로 꿈꾸는 그런 세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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