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교실 담장을 넘어, 세상이라는 거대한 학교로 김영현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선임
김영현 gn@gwangnam.co.kr |
| 2026년 09월 09일(수) 1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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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현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선임 |
필자가 운영하는 자유학기제 연계 진로탐색 프로그램 ‘자기탐구생활’을 통해 화장품 기업을 다녀온 한 중학생의 짧은 소감이다. 현장에 머문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이었다. 하지만 중학생들에게 남은 것은 화장품에 대한 지식이 아니었다. 교과서 속에서만 존재하던 세상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였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간다. 궁금한 것은 인공지능(AI)에게 물으면 되고, 직업 정보는 검색 몇 번이면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정작 청소년들은 세상을 잘 모른다. 정보를 몰라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날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AI 시대일수록 교육의 희소성은 정보가 아니라 ‘만남’이다. 그래서 이제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을 넘어, 학생들이 세상을 만나게 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교실을 벗어난 배움은 단순한 체험학습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현장에서 교과서 밖의 현실을 배운다. 검색창에서는 직업의 종류를 알 수 있지만, 현장에서는 한 사람이 어떤 책임감으로 하루를 살아가는지를 배운다. 직업의 이름보다 일을 대하는 태도가 먼저 보이고, 성공보다 실패를 견디는 시간이 더 길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이것은 화면으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교육이다.
더 큰 변화는 청소년들 안에서 일어난다. 자신이 궁금한 주제를 정하고, 만나고 싶은 전문가를 직접 찾아 서툰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질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눈빛은 달라진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배우기 위해 움직이는 경험은, ‘지식을 전달받는 학생’을 ‘배움을 만들어가는 탐구자’로 성장시킨다. 진로교육의 본질은 직업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탐색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있다.
특히 중학생 시기는 더욱 그렇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나는 누구인가’,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처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현실의 학교는 여전히 시험과 성적, 입시에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한다. 물론 학업은 중요하다. 그러나 시험 문제를 푸는 능력만으로는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없다. 세상을 만나지 못한 청소년은 꿈도 교과서 안에서만 찾게 된다.
종종 부모들은 묻는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굳이 현장에 나가야 하나요?” 그 질문에는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질문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진로를 고민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진로를 탐색할 시간은 허락하고 있는가.
자녀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는 문제집 한 권을 더 푸는 데서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직업인의 한마디, 자신의 질문에 진심으로 답해준 한 사람과의 만남, 낯선 현장에서 느꼈던 작은 설렘이 오히려 오래 남아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 주변에는 청소년들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주는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답변을 준비한 복지관 실무자, 바쁜 일정을 조정해 청소년들을 맞아준 법조인, 자신의 일터를 흔쾌히 내어준 소상공인까지. 교육은 학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청소년들을 믿고 세상과 연결해 주는 어른들이 있을 때 지역사회 전체가 하나의 학교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롭게 출범한 통합특별시는 청소년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광주의 기업과 문화예술 현장, 전남의 농산어촌과 생태, 연구기관과 산업형장까지 지역 전체가 하나의 배움터가 될 때, 통합은 비로소 청소년들의 삶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교실과 지역사회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정책, 청소년이 마음껏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정책이야말로 통합시대에 나아갈 방향이다.
교육은 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정보를 더 많이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더 깊이 만나게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지식은 AI가 대신할 수 있지만, 사람을 만나 삶을 배우는 일만큼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교실을 넓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교 건물을 크게 짓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교실로 만드는 일이다. 청소년들은 사람을 만난 만큼 성장하고, 세상을 경험한 만큼 꿈을 꾼다. 미래는 교실 안에서만 준비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세상이라는 가장 큰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할 때, 우리의 교육도 비로소 다음 시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영현 gn@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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