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AI시대에 세계를 인식하는 인간의 사유와 감각

강경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회장

강경호 gn@gwangnam.co.kr
2026년 09월 17일(목) 18:20
강경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회장
며칠 전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이라는 전시회를 보았다. 퐁피두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로, 큐비즘(cubism) 운동에 참여한 피카소를 비롯하여 브라크, 글레이즈, 레제, 알릭스, 들로네, 후안 그리스, 곤차로바, 뒤샹, 라타피 등 30여 년에 걸쳐 미술 혁신 운동에 참여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미술비평을 하는 나에게는 큐비스트들의 작품을 직접 대할 수 있어 마음이 설렜다. 이들은 근대 미술운동이었던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를 뛰어넘어 미술가는 물론 인류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으며, 오늘날에도 미술의 영역을 넘어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

큐비즘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시선으로 사물과 세계를 인식하는 데 있다.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뒤 기하학적 형태로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한 화면에 담아내는 혁신적인 화법이다. 서구 미술을 사실주의적 전통에서 해방시킨 회화 혁명이라 부를 정도로, 큐비즘은 이후 미술은 물론 인간의 사유와 인식 태도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인간이 추구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예술의 창작 기저에는 이처럼 다양하고 독특한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원천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미술, 문학, 음악을 비롯한 문화예술의 모든 영역에서 창작의 원리가 되고 있으며, 인간이 사유하는 여러 영역에서도 변화를 요구하는 기제로 기능하고 있다. 이렇듯 큐비즘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혁신’은 사회, 정치, 경제에서도 창의적인 발상의 기원이 되고 있다.

마르셀 뒤샹이 큐비즘의 영향을 받아 ‘샘’이라는 작품을 내놓은 일은 유명한 일화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남성용 변기를 오브제로 삼아 그것에 ‘샘’이라는 작품 제목을 붙인 것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이 작품은 큐비즘을 벗어나 개념미술의 시작을 알린 것이었지만, 큐비즘의 ‘혁신성’이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전혀 낯선 지점으로 옮겨놓는 사건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특히 미술과 친연성이 높은 문학은 그 영향을 크게 받아 시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사유를 펼치게 하였다. 이른바 ‘낯설게 하기’라는 말은 큐비즘이 지향했던 ‘혁신’과 동의어라 할 정도로 창작 원리의 근간을 이룬다. 화석화되어 버린 관념을,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치듯 깨뜨리며 기존의 진부한 해석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유용한 방법이다.

이전까지 미술은 ‘과학’과 쉽게 만날 수 없는 거리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백남준에 의해 미술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은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 이성을 바탕으로 한 과학의 발달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기저로 한 예술, 특히 미술이 서로 만나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비디오 아트’가 바로 그것이다. 비디오 아트는 텔레비전 모니터를 영상을 생산하는 기제로 활용하여 회화로 전환함으로써 인류 예술사에서 이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비디오 아트는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간 그 자체의 삶을 실물처럼 보여주면서 특별하지 않은 일상, 곧 이전에는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여겼던 평범한 인간의 모습도 예술이 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최근 이이남의 미디어아트를 비롯하여 과학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인터넷 아트, 심지어 문학에서 한창 발흥하고 있는 디카시 등도 큐비스트로부터 출발한 ‘혁신성’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아닐 수 없다.

요즘 갈수록 AI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AI가 지닌 폐해로 인해 우리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인간이 이루어낸 혁신이 AI로 인해 인간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문예지 응모작 가운데 AI가 생성한 것으로 보이는 비평과 시 작품을 받아본 적이 있다. AI가 생성한 작품을 판별해내기는 쉽지 않지만, 면밀하게 살펴보면 몹시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하고, AI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AI만이 지닌 문체와 서술 방식, 그리고 특유의 습관을 잘 알 때 AI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

예술은 창작의 혁신 원리로 인해 발전한다. 그러므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부단히 개척하는 것이 작가의 자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를 통해 작품을 생성함으로써 작가정신을 훼손하는 일은 우선 독자를 속이는 일이며, 결과적으로 자신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작가의 감정과 사유가 그 사람만이 지닌 독특한 정신성이자 예술적 유전자라고 한다면, 그러한 유전자를 지닐 수 없는 기계의 힘을 빌려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 아닌 작가’가 도둑처럼 훔쳐 내민 작품에는 진정한 가치가 없다.

최근 우리 문단에서는 AI시대의 문학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내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문학이 인간에 의해 사유되고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발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삶의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며 세계를 온몸으로 감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리와 인간다움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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