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백남준 로봇, 오늘날 인공지능과 마주 서다

ACC ‘ACT 페스티벌 2026’ 23일 개막…‘아이, 휴먼’ 주제
1964년 ‘K-456’과 피지컬 AI 신작 선봬…인간·기술 성찰
국내외 29팀 참여 XR·오디오비주얼 공연·전시 등 '다채'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2026년 10월 07일(수) 16:23
백남준 작 ‘K-456’
발리 푸굴랭 작 ‘트레이스: 애도의 프로세서, 광주에서’
‘인간을 해치지 말라.’

아이작 아시모프는 소설 ‘아이, 로봇’에서 로봇에게 이같은 원칙을 부여했다. 이 원칙은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오래된 질문으로 남아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리는 ‘ACT 페스티벌 2026’은 이 질문을 다시 인간에게 돌린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함께 세계를 만들어가는 동시대, 우리는 기술 앞에서 어떤 원칙과 태도로 나아가야 할까.

‘ACT 페스티벌 2026’ 올해 주제는 ‘아이, 휴먼: 테크네세(世)에 응답하기’다.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선택, 행동 방식은 물론 관계의 모양까지 바꾸는 시대를 ‘테크네세’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기술과 어떤 사이인가’를 묻는다.

페스티벌은 ‘기술은 앞만 보고 달리고, 우리도 함께 달려왔다. 이제 잠시 멈춰 서서 묻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윤리를 기계 안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기술 앞에 선 인간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칠지 정해야 한다는 질문을 전시와 공연, 다이얼로그, 미디어월 프로그램으로 확장한다.

이번 페스티벌에는 국내외 29팀이 참여한다.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3·4관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는 백남준이 1964년 만든 첫 로봇 ‘로봇 K-456’을 만날 수 있다. 백남준아트센터가 소장한 이 작품은 무선 조종으로 거리를 걸으며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틀고 콩을 ‘배설’하던 로봇이다. 작품은 지난 1982년 미국 휘트니미술관 회고전 당시 뉴욕 거리에서 자동차에 치이는 퍼포먼스 ‘21세기 최초의 참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뉴욕 일렉트로닉 아츠 인터믹스가 제공한 백남준의 영상 두 편을 통해 ‘K-456’이 뉴욕 소호 거리를 활보하던 모습과 교통사고 장면을 볼 수 있다.

노진아 작 ‘네르바 아티피시아’
정혜련 작 ‘슈냐타로부터’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60여 년의 시간을 건너온 백남준의 로봇을 오늘날 피지컬 AI 작품들과 나란히 세운다. 말을 걸면 AI로 대답하는 노진아의 로봇 설치 작품 ‘네르바 아티피시아’, 관람객의 호흡으로 작동하는 정혜련의 ‘슈냐타로부터’, 소프트 로보틱스로 이루어진 권혜원의 ‘산호학자 R의 진화 알고리즘’이 ACC 커미션 신작으로 처음 공개된다.

전시는 기술이 매끄럽게 작동할 때보다 어긋나고 멈추는 순간에 주목한다. 인지적 글리치와 물리적 글리치, 즉 기계가 만든 영상인지 사람이 만든 영상인지 알 수 없어 흔들리는 순간과 기술의 몸이 멈추거나 삐걱거리는 순간을 통해 관람객은 기술의 시대에 인간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확장현실(XR) 작품도 눈길을 끈다. 크레이그 킨테로와 피비 그린버그의 ‘블러’(BLUR)는 2025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이머시브 부문에서 공개된 작품이다. 회차당 10명의 관객이 헤드셋을 쓰고 실제 배우의 라이브 퍼포먼스와 VR·AR·AI가 결합된 세계를 체험한다. 아들을 잃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따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걷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캐나다 감독 발리 푸굴랭의 ‘트레이스: 애도의 프로세서, 광주에서’는 4명이 함께 체험하는 VR 다큐멘터리의 광주 버전이다. 감독은 약 2주간 광주에 머물며 5·18민주화운동 오월어머니들을 만나고, 무등산과 광주의 역사를 조사해 작품을 새롭게 만들었다. 관객은 체험에 앞서 자신의 상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진 한 장과 짧은 경험담을 공유한 뒤 꿈결 같은 숲을 함께 걷는다. 서로의 슬픔 곁에 머무는 경험을 통해 치유와 연대의 감각을 전한다.

권혜원 작 ‘산호학자 R의 진화 알고리즘’
크레이그 킨테로 작 ‘블러’
밤의 극장에서는 빛과 소리가 하나가 되는 오디오비주얼 공연이 펼쳐진다. 오는 23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빅도어시어터에서 자이 탕, 타마나라멘, 고휘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퍼포먼스가 펼쳐지며, 24일에는 작가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다이얼로그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김상욱 전당장은 “60여 년 전 뉴욕 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백남준의 로봇부터 오월 어머니들의 목소리를 품은 가상의 숲까지 이번 페스티벌은 앞만 보고 달려온 기술의 시대에 잠시 멈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자리”라며 “피지컬 AI를 기반으로 한 한국 작가들의 창제작 신작과 세계가 주목하는 작품들을 광주에서 먼저 만나는 특별한 경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ACT 페스티벌 2026’은 오는 23일부터 11월 8일까지 ACC 일원에서 열린다. XR 작품 ‘블러’와 ‘트레이스’, 콘서트와 대담 프로그램은 ACC 누리집에서 사전 예약할 수 있다. 관람료는 모두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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