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십대들, 영웅 아닌 평범한 이들로 기억되길"

‘제17회 광주여성영화제’ 최연소 이소희 감독
1980년과 오늘의 광장 연결 청소년 연대 조명
‘소년이 온다’서 시작된 관심…11월 13일 선봬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2026년 10월 20일(화) 18:25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거리로 나섰던 광주의 청소년들을 영화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그 속에서 반짝이는 걸 보았지’ 스틸 컷. 작품은 배재고 사건으로 시작해 1980년 광주의 십대들과 2024년 겨울 비상계엄 선포 이후 광장에 나선 청소년들을 연결한다.
다큐멘터리 ‘그 속에서 반짝이는 걸 보았지’ 스틸 컷.
제17회 광주여성영화제 최연소 참가 이소희 감독.
“1980년 5월 광주의 청소년들은 영웅이 되려고 거리에 나선 게 아니에요. 그저 옆에 있는 사람이 다치는 걸 볼 수 없었고, 친구를 외면할 수 없었을 뿐이죠. 저는 이들을 영웅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었어요.”

제17회 광주여성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그 속에서 반짝이는 걸 보았지’를 선보일 이소희 감독(18)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거리로 나섰던 광주의 청소년들을 영화로 기록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현재 경기도 지역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 감독은 올해 광주여성영화제에 참가하는 감독 중 최연소다. 오는 11월 13일 오후 2시 CGV 광주금남로에서 열리는 ‘메이드 인 광주’ 섹션을 통해 ‘애정이’(장예린 감독), ‘움직이는 교실’(양주연 감독)과 함께 작품을 선보인다. 다큐멘터리 ‘그 속에서 반짝이는 걸 보았지’는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구호를 외쳐 논란이 된 배재고 사건에서 출발해 1980년 광주의 십대들과 2024년 겨울 비상계엄 선포 이후 광장에 나선 청소년들을 연결해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용기와 연대의 의미를 되짚는다.

이 감독이 1980년 광주지역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였다. 작품 속 동호가 실제 인물인 문재학 열사를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어린 나이에 전남도청에 남았던 그의 마지막 순간을 오래 생각했다고 한다.

지난 2024년 겨울, 비상계엄 선포 당시의 경험은 영화를 만드는 직접적인 발판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향할 때, 정작 자신은 그 자리에 나가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마음에 남아서다.

이 감독은 “1980년의 아이들은 총구 앞에서도 거리에 섰는데, 저는 화면 너머로 응원봉을 든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했다”며 “광장에 나가지 못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 해답이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작품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은 경창수 선생과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였다. 5·18 관련 연구자를 만나 당시 청소년들이 처했던 상황도 살폈다. 그 과정에서 추모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추모는 조용하고 엄숙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마다 슬퍼하고 기억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2024년 겨울 광장의 응원봉과 노래를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이 감독은 “중요한 것은 추모의 형식보다 기억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1980년의 십대와 2024년 겨울 광장에 나선 십대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서로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 제목 ‘그 속에서 반짝이는 걸 보았지’에는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서로를 지키고 보듬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담았다. 그는 “주먹밥을 나누고 서로를 지키며 연대했던 순간들이 제게는 반짝임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를 십대들이 많이 보고, 자기 안에 존재하는 작은 빛을 발견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의 역사를 다룬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데에는 설렘과 조심스러움이 교차한다. 이 감독은 “그 시간을 살아낸 분들과 기억을 이어온 분들 앞에 서는 일이기에 많이 떨린다”며 “광주에서 만난 분들이 건네주신 이야기와 사진으로 완성한 영화인 만큼, 혼자가 아니라 광주와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묵직한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 감독이지만, 영화와의 첫 만남은 외로웠던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맞벌이 부모님과 잦은 전학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이 감독에게 영화는 친구이자 위로였다. 영화 제작은 배우 활동에서 출발했다. 독학으로 연기를 공부하며 극단과 단편영화, 광고 등에 참여하다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 친구들과 첫 영화 ‘기억’(2024)을 제작했다. 유튜브로 장비 사용법을 익히며 완성한 작품이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에 초청돼 수상하면서 감독의 꿈을 키웠다.

이후 가정폭력의 아픔을 다룬 극영화 ‘소리먹는 괴물 이야기’,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동백꽃’, 세월호의 기억을 담은 ‘유영, 숨을 쉬다’ 등을 연출했다.

작품의 출발점은 언제나 가까운 사람들의 삶이었다.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에서 뉴미디어 팀장으로 활동하고, 노들장애인야학 영화반에서 지원교사로 참여하며 영화와 사회적 실천을 연결하고 있다.

최근에는 난민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임팩트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영화가 상영 이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감독은 “어린 감독이 아니라 그냥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 제 영화가 나이 때문이 아니라 작품 자체로 읽혔으면 한다”며 “카메라를 내려놓은 뒤에도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감독, 영화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감독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제17회 광주여성영화제’는 오는 11월 11일부터 15일까지 광주극장과 CGV 광주금남로 등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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