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인문 행복도시 광주를 꿈꾸며
검색 입력폼
문화산책

[문화산책]인문 행복도시 광주를 꿈꾸며

백승현 대동문화재단 사무처장

어제는 퇴근을 해서 구청의 대강당에서 어느 미술평론가의 강의를 들었다. 옛 그림에는 그림이 그려진 내력이 시나 글로 적혀 있는데, 그 글과 그림을 청중들과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는 인문학 강의였다. 강사가 강의 마지막에 보여준 그림은 18세기 능호관 이인상이라는 문인화가의 작품 ‘설송도(雪松圖)’였다. 제목처럼 곧은 소나무와 굽은 소나무 두 그루가 눈을 뒤집어쓰고 서 있는 그림이었다. 미술평론가는 이 설송도와 연관된 이야기가 연암 박지원의 ‘연암집’에 나온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이인상은 학자이자 문인화가로 이양천이라는 학자와 마음을 나누던 사이다. 이양천이 어느 날 비단 한 벌을 보내 측백나무를 그려 달라고 청한다. 이인상은 ‘설부(雪賦)’라는 시를 써서 보낸다. 이양천은 시를 받아 읽어보고 기뻤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은 측백나무 그림이었기 때문에 다시 이를 재촉한다. 그런데 이인상은 “이미 그려 보냈다”고 답한다. 이양천이 놀라 “시만 보내주지 않았는가?” 묻는다. 이인상은 이렇게 대답한다. “측백나무가 그 속에 들었다네. 무릇 바람과 서리가 매섭게 몰아치면 변치 않을 것이 어찌 있겠는가. 그대가 측백나무를 보고 싶거든 눈 속에서 찾아보게나” 글 속에 측백나무 그림을 이미 그려 보냈으니 그 그림을 볼 수 있으면 어서 봐보라는 은근한 채근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양천은 어느 때 죄를 얻어 흑산도에 유배를 살러 간다. 어느 날 밤 큰 바람이 섬을 뒤흔들어 사람들이 죽을까봐 두려워 울부짖는데, 혼자 “남쪽 바다 산호가 꺾어진들 어찌 하리오. 오늘 밤 옥루가 추울까 그것이 걱정이로다.” 태연하게 시를 짓는다. 옥루는 임금이 사는 곳이니, 임금에게서 버림받은 선비가 죽을 지도 모르는 경각에 임금의 안부를 오히려 물어보는 반전이 있는 장면이다.

능호관은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 “지난날 그대가 측백나무를 그려 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대 역시 지금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할 수 있겠소.” 말한다. ‘나는 예전에 당신에게 글 속에 측백나무 그림을 그려 보내주었는데, 이제 그대가 그대 마음으로 측백나무 그림을 그려서 내게 보여주었소.’ 이런 뜻이다.

선비의 마음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며 풍류 넘치는 삶을 살았던 선비들의 절묘한 인문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깊이 울린다. 미술평론가는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라는 옛 선비들의 예술 미학이 바로 ‘설송도’라는 그림에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깊은 뜻까지를 그림 속에서 읽어내려면 심안(心眼)을 길러야 한다고 말끝을 맺었다.

광주 인문학 로드를 만들자. 심안이란 마음의 눈이다. 옛 그림 속의 이면을 꿰뚫어보려면 우리는 인문학에 먼저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 역사와 문학과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인간과 인간의 근원 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는 심안을 기르는 것이 인문학이다.

2016년 8월 발효된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인문학 진흥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인문교육을 실시해 국민의 인문 소양을 넓히자는 규정을 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자본이라는 거대 권력의 이빨이 인간 삶을 도처에서 물어뜯어 거덜이 난 ‘세속’의 삶을 살고 있다. 이런 때 행복, 정의, 공정, 공동체 가치가 보호되고 그 속에서 공동체의 주인인 국민들이 참다운 삶을 살아가는 미래를 인문학 진흥으로 설계해보자는 것이다.

이 법은 국가기관과 지자체가 매년 구체적으로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인문학 연구 향유 활동 지원 및 환경 조성, 전문 인력 양성, 인문 콘텐츠 개발 지원 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미 수원이나 칠곡군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인문학 정책을 시민들과 함께 펼치면서 더불어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우리 광주도 이 인문학 진흥법이 광주 시민 삶의 생태계를 풍요롭게 할 수 있을지 성찰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인문학이 시민 삶 속으로 스며들도록 해서 역사문화 도시 광주 정체성을 찾아나가도록 정책을 마련하고 실천해나가는 로드맵을 짜야 한다는 말이다. 시민이 행복한 ‘광주 인문학 로드’를 만들자는 말이다. 심안의 눈을 뜨면 그 길이 보일 것이다.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