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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최초로 통기타를 둘러메고 노래를 한 사람은 고 이장순씨와 친구인 국소남씨 두 명이었다. 1977년 MBC대학가요제에서 광주의 박문옥 박태홍 최준호 3인으로 구성된 소리모아가 ‘저녁 무렵’으로 동상을 수상한 이래 1980년대 중반까지 광주의 젊은이들은 꾸준히 수상자를 배출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자 김종률(현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은 1979년 영랑과 강진으로 은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VOC(전일방송) 주최 대학가요제에서는 ‘소나기’로 대상을 수상했다. 1981년 대학가요제에서는 광주 출신의 정오차가 ‘바윗돌’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1985년 광주의 젊은 음악인들이 만든 옴니버스 음반에 실린 김원중의 ‘바위섬’은 그 해 전국적인 인기를 끌어모았다. 광주 음악의 저력을 보여준 곡들이다.
사직골의 어느 카페에 가든 이런 노래들을 부르는 가수들을 만날 수 있었고, 들을 수 있었다. 사직골에서 통기타 음악의 흐름이 꾸준히 이어져 온 것이다.
필자도 대학 시절 동창들과 처음으로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충장로, 구시청 등에서 식사를 하고 2차로 찾았다. 역시나 구석에 기타가 있었고 일행 중 누군가 기타를 들고 함께 목청껏 노래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30년이 돼가는 지금도 그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고, 생활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직골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골목을 살려보자는 사직통기타거리 조성사업과 관련해 지난 주 ‘광주 포크음악 아카이빙을 위한 특별포럼’이 열렸다. 광주 포크음악 아카이빙을 위한 많은 연구와 자료 수집은 계속돼야 할 일이고, 아직은 정확한 자료에 의한 연구가 미진한 점이 숙제다.
십여년 전 아시아문화 중심도시조성사업과 관련, 사직동 일대를 사직국제문화교류타운으로 조성하자는 계획이 진행된 바 있다. 문화전당에서 300여m 거리의 가까운 위치와 옛 KBS 건물의 입지, 사직골에 밀집된 통기타거리 등의 특성을 연결해 포크 문화 특화지구, 음악특화거리로 만들자는 구상이 포함돼 있었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됐더라면 지금쯤 이 곳 어딘 가에 국제음악교류의 중심이 될 건물이 하나 들어서고, 야외 음악당도 멋지게 만들어져 있어야 했다. 정부 주도의 아시아인권평화음악제 혹은 아시아소리축제가 이곳에서 펼쳐져 전당의 다양한 첨단 문화콘텐츠와 함께 볼거리 들을거리 가득한 명소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광주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권을 거치면서 사업은 축소되고 문화중심도시와 관련한 여러 꿈같은 일들이 멀어져가고 사라졌다. 전국 유일의 통기타 라이브 음악 카페촌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활성화를 이루지 못하고 정체 혹은 내리막을 걷는 사직골의 현실도 이에 기인한 바가 작지 않다.
이날 포럼은 골목결제활성화 추진 사업에 남구청이 공모해 내년 4월까지 진행되는 주민주도형 사업이다. 정부나 광주시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와 주민협의체가 주도한다는 의미다. 상인회와 사직동 주민이 이미 뜻을 모았다. 옛 KBS자리에 들어선 광주음악산업진흥센터도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선배 음악인들의 맥을 잇게 하는 촉매로 3년째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 초기 계획이 부활돼 여기에 가세한다면 사직골 상권 활성화와 함께 특성을 살린 거리로 재정립되는 건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문화중심도시 조성 특별법과 초창기의 문화중심도시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 종합계획을 재검토해 문화도시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총체적으로 재검토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직골은 우리에게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작은 위안을 주는 공간으로 위축됐다. 그곳에서 80년대의 낭만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으나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사직통기타거리조성사업을 시작한 주민들의 작은 몸짓이 큰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다.
2026.03.12 (목) 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