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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국창 송만갑 일가, 박유전 이날치 정재근 정응민으로 이어지는 서편제(혹은 보성소리), 무속음악의 보고로 불리는 진도에, 가야금 산조가 영암 태생의 김창조에 의해 탄생되고 그의 제자들이 맥을 잇고 있음을 여러 국악인들이 증언하지요. 학포에서 시작된 호남 선비들의 그림세계 또한 고산, 소치를 이어 근현대에는 의재와 남농의 양대 허씨의 문인화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적 인상주의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서양화의 오지호, 호남 추상미술의 선구자였던 양수아와 최종섭 등 예술 각 영역에서 별이 된 선배들이 예향을 이끌고, 오늘의 문화도시의 뿌리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1990년대, 현장에서 만난 예술인들은 고개를 갸웃하곤 합니다. 광주가 왜 예향으로 불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극 배우들은 어두운 지하 연습실에서 땀을 흘리면서도 팔리지 않는 표 때문에 나오는 한숨을 숨기고 신명을 연기해야 했습니다. 광주에서 아주 유명한 기타리스트 한 분은 10년여 동안 유럽 유학까지 다녀온 실력자이지만 음반은 고사하고 공연 관람객을 모으는 데 애를 먹습니다. 국악계 역시 유료 공연을 성공시키기가 참 힘들던 기억이고, 그림 그리는 화가가 집에서 동사 당하고 가난에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사정이 조금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무용이나 서양음악 분야 또한 공연 활동으로 크게 성공한 예술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지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어느 분야 건 예술의 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술인들의 그런 피나는 현장 활동이 이어져왔기에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라는 간판을 내걸 수 있단 점에서 모든 예술인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예향이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광주에서 예술이 잘 안 팔린다는 게 현실입니다. 저는 예술소비자들이 지갑을 쉽게 열지 않으니 예술인들이 팍팍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몇몇 예술애호가들이 있다지만 평범한 시민 예술 소비자, 말하자면 예술을 즐기는 시민이 너무 부족하지요.
이래서는 문화도시 만들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문화중심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예술소비의 가치를 인정하고 제값을 지불할 줄 아는 시민이 넘쳐나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도 문화 소비자 교육을 아이들은 물론 모든 시민에게까지 퍼뜨려야겠습니다. 다양한 표현을 통해 삶을 풍성하게 해 주는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힘을 가르치자. 그러면 이들이 나중에 예술 감상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잠재적 소비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됩니다.
주말마다 문화전당 앞 광장과 금남로에서 열리는 광주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팽이를 줄에 매달아 높이 올렸다 받아 내거나 화려한 기술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어떤 젊은이의 공연이 끝나고 그 앞에 놓인 모자에 지폐가 수북이 쌓이는 걸 봤습니다. 서너살 꼬마 아이, 초등학생을 데리고 오신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 일종의 감동후불 관람료를 주저없이 지불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용봉동 중외공원 야외 풀밭에서는 어린이들이 직접 나무를 자르고 못질을 해서 자기들만의 성(城)을 쌓고 공성전을 하는 등 신나는 놀이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3일 간 뜨거운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그 현장은 광주문화재단의 목수캠프라는 문화예술교육 공간이 아니라 추억을 채우는 즐거운 놀이터였겠고,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낸 경험은 아이들의 삶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전혀 다른 모습의 두 현장이지만 받는 감동은 비슷합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를 향한 꿈의 씨앗을 본 느낌. 이런 게 살아있는 문화예술교육 아닐까요.
2026.03.12 (목) 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