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런데 2000년 동안 이어온 전통이 오늘날 참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근대산업사회로의 이행이 그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몇 십 년전까지만 해도 국민의 70% 이상이 농업을 삶의 방편으로 삼아왔지만 이제 농사를 짓는 인구는 20%도 안 된다. 그것도 연로한 어르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농경을 근간으로 쇠던 추석명절은 농경사회를 경험했던 세대들에게만 민족고유의 명절로 인식될 뿐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는 과연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필자는 1960년대 농경사회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터라 수천 년 이어져 내려온 추석명절에 즐기던 세시풍속들이 기억 속에서 아련하다. 우리말로 ‘한가위’로 불리는 추석날은 일년 중 달이 가장 크고 밝아 누님들과 아낙네들은 동네에서 가장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선과 색이 고운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강강술래를 하며 뛰어놀았다. 주지하다시피 1년 24절기는 달의 운행주기를 농경에 알맞게 나눈 것으로 선조들은 그것에 맞춰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며 농사를 일궜다. 이처럼 선조들은 달을 가까이 하고 좋아했다. 그런 까닭에 옛 선비들의 시가(詩歌)에는 태양보다 달이 더 많은 시적 소재와 주제가 됐다.
일년 농사를 수확하고 가장 청명하고 달이 밝은 밤을 그대로 보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정월대보름날밤 쥐불놀이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태양은 낮을 만들고 달은 밤을 만든다. 하늘 높이 떠서 지상의 인간세계를 주관하기 때문이다.
흔히 여성성으로 상징되는 달은 우리 민족에게는 어쩌면 구원의 시간이고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부장제도에서 여성은 오늘날로 치면 사람이 아닌 하나의 도구로 바라본 측면이 있다. 여성은 혼례를 치루면 아이를 낳고, 양육하고, 집안일을 도맡았다. 뿐만 아니라 모진 시집살이 속에서도 밤에는 길쌈 노동을 피해갈 수 없었다. 길쌈이 없어도 직접 옷을 만들어 입던 시절이라 밤늦게까지 바느질하는 일은 빼놓을 수 없었다. 밤늦게까지 길쌈이나 바느질을 할 때면 함께 지새는 것은 교교한 달빛 뿐이었다. 수많은 여인네들에게 그 시절 달이 없었다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겠는가. 달빛아래에서 시어머니를 원망하고 운명을 한탄하면 오직 달만이 침묵으로 얘기를 들어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달은 한여름 따가운 뙤약볕을 내려쬐는 태양처럼 폭력적이지 않다. 암흑의 밤이 지나고 손톱만했던 달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조금씩 몸을 불려나가다가 마침내 보름날이 되면 제 몸을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원만한 모습으로 단장한다. 달은 보름날이 지나면 마치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이치를 보여주는 사계(四季)처럼 인간의 일생을 닮아 서서히 소멸의 길을 향해 간다. 그런 달을 닮아 얼굴이 탐스러운 규수에게 큰며느리감이라고 했다. 일종의 찬사였다.
이제 세상도 변하고 인심도 변했다. 추석명절이 돌아와도 할머니가 돼버린 우리의 누님들은 강강술래를 하지 못한다.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추석날의 정서는 전설이 돼가고 있다. 그럼에도 명절이 다가오면 낳고 자란 고향을 찾아 초원을 이동하는 누우 떼처럼,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민족의 대이동을 하는 것은 우리의 핏속에 여전히 하늘과 땅과 조상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드리는 유전인자가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변했어도 우리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또다른 길쌈과 바느질 노동이 있다. 그래서 즐거운 명절이 돌아와도 ‘명절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이번 명절에는 여성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 하나를 더 보태어 그들이 둥근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를 짓도록 이땅의 남성들은 명절노동의 역꾼이 됐으면 한다.
광남일보@gwangnam.co.k
광남일보@gwangnam.co.k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6.03.26 (목) 1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