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하기보다 다쳐버리자(예술가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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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조심하기보다 다쳐버리자(예술가의 성찰)

박성언 음악감독

박성언 음악감독
[문화산책]뮤지션의 음악성이나 기량이 정신과 육체에 많은 부분을 의지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인간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 고로 우리가 생각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는 신체와 정신의 무수한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뮤지션도 마찬가지로 라이브 연주를 하거나 난의도가 있는 예술작업을 수행할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음악을 하면서 경험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새롭다고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것은 어쩌면 기존의 것들의 또 다른 조합일 수 도 있다. 나는 성격적으로 조심스럽게 조용히 지나치거나 관망하기보다는 좀 더 과감하게 뛰어들어 보고 싶은 욕구가 강한 편이다. AI에게 질문해 보니 도파민 중독이라고 말한다. 뜨끔하지만 도박중독이 아닌 게 어디냐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위로한다. 어쨌든 나는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상당히 강한 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관심이 없는 것은 철저히 무감하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럭저럭 취미생활로 음악을 하고 즐기며 지내는 생활에서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겠으나 음악을 통해 예술가로서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와 미감을 표현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에는 꽤나 많은 경험과 다치면서 생기는 상처와 그것이 치유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듯이 이러한 아픔과 고통의 경험은 자신의 내면을 강하게 승화시키고 성찰이라는 선물을 통해 예술로 표현되어 나온다. 신은 인간을 사랑해서 선물을 주지만 그 선물은 고통의 상자에 포장되어 배달된다. 아픈 포장지를 힘들게 뜯어내지 못하면 상자 속의 성찰의 선물은 내 것이 되지 못한다.

요즘은 음악을 한다는 것이 하나의 사업이 되어서 감각이나 기량에 상관없이 서류나 포트폴리오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는 듯하다. 개개인이 하나의 사업체가 되어 행사를 많이 하고 사업계획서를 잘 써서 예산 지원을 많이 받는 것이 목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활이 되어야만 윤택한 삶이 유지되는 현대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어려운 시절에도 예술 혼을 불태우며 살아갔던 우리의 선조들의 얼을 생각하면 나부터도 부끄러워지는 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대학생활을 하던 20대 때에 어떤 교수님께서 돈을 너무 많이 벌면 돈을 써야 해서 음악 하기 힘들고 돈을 너무 적게 벌면 돈을 더 벌어야 해서 음악 하기 힘들다고 했던 말씀이 생각난다. 그래서 간혹 들려오는 예술인 기본 생계비용 지원 정책 같은 소문은 참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진솔하고 노력하는 예술가에게 이런 지원금은 최소한의 예술지원자본으로 작용하고 그것을 통해 작품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우리 삶의 여러 부분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바꿔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 줌으로써 타인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고 특정한 경우에는 삶의 태도도 바뀔 수 있다. 죽을 날을 향해가고 있는 한번뿐인 우리의 삶에서..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서.. 예술은 개개인의 삶의 가치에 특별한 향기를 부여한다. 나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거나 사람들과 공유할 때 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덧 2025년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또한 모두 손살 같이 지나갔다. 열심히 살아나가는 많은 음악인들과 예술가들을 응원한다. 그들이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고통의 상자 속에 담긴 성찰의 선물처럼 올에 겪은 힘들었던 일도 내년에는 기쁨에 선물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좌절하지 말고 힘차게 다쳐버리고 아파버리자. 상처가 아물어 가며 더 강해지는 자신을 사랑하자.

게으른 이불을 걷어차며 깜깜한 새벽의 무등산을 오른다. 혼자일 것만 같은 깜깜한 산속을 오르다보면 그 새벽에도 산을 내려오는 분을 만나게 된다.

앞서가는 사람은 어디에든 있다. 2026년에는 더 다치고 아파버려야겠다. 그리고 꼭 나아버려야지!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정채경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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