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가을 햇살 아래서
검색 입력폼
문화산책

[문화산책] 가을 햇살 아래서

한희원
서양화가

11월의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계절이 가을로 물들어 가면 햇살은 눈에 띄게 몸을 사린다. 화가들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햇살에 민감하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찾아오는 섬세한 빛의 변화에는 더 그렇다. 느긋한 마음으로 차를 마시며 낡은 담벼락에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을 바라보고 있으면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과 묘한 슬픔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가을 햇살은 한여름의 뜨거움이 없기 때문에 나른한 따뜻함을 누릴 수 있어 즐겁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처럼 빛이 저물어 간다.

가을이 짙어 가는 요즘 실체도 없이 찾아오는 감정들이 찾아와 나를 힘들게 한다. 어느 날은 괜히 우울하고, 어느 날은 괜히 헛웃음이 나온다. 이유 없이 찾아오는 감정의 변화에 당황하고 허우적거린다. 우리들이 지상에서 사라져도 빛은 사라지지 않지만 인간은 자신이 떠나가면 빛도, 자기를 사랑했던 모든 것들 또한 떠나가리라는 착각에 빠진다. 인간은 무한 속에서 유한한 존재이고 유한 속에서 무한함을 꿈꾼다.

저문 햇살을 보며 행복은 어디에서 오며 지금 내 곁에 행복이 머물고 있는지를 확인해 본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내 행복의 존재 여부를 묻는 물음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일을 하고 살기 위해 매시간을 메워가고 있는 것 같다. 영혼의 안식을 주는 행복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알지 못하고 가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가을 길에 보랏빛 쑥부쟁이가 피어있다.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 한 방울이 나도 모르게 흐를 때가 있다. 가을에 피는 꽃에서 애잔함을 느낀다.

마음을 들뜨게 하던 축제들이 하나 둘 막을 내리고 들녘의 황금빛 벼들도 다 거두어 이제는 빈들만 남았다. 온 몸이 잘려나간 벼들은 저녁 햇살을 받으며 군인들이 사열을 받을 때처럼 발목만 남은 채 직립해 있다. 황량한 풍경일수록 인상 깊다. 모든 것이 떠나간 뒤에 홀로 남은 비움은 화려함 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그래서 일까? 예술에서 비극적 아름다움이 희극보다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게 한다. 예술가들은 후세에 남길 명작을 위해 작품을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스스로 위로하며, 자기에게 다가오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 작업에 몰두한다. 작업에 몰두하지 못하는 작가는 비극이다.

화가 이중섭의 마지막 그림이 ‘돌아오지 않는 강’ 연작이다. 1956년 작으로 종이에 연필과 유화를 섞어서 그린 작품이다.

그 시절 이중섭은 주어진 삶의 시간을 송두리 채 거부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마지막 시간에는 홀로 버려진 상태로 가느다란 촛불의 심지처럼 생을 태우고 있었다.

이중섭은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사랑했던 아내의 편지마저 개봉하지 않은 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에게 그림은 그의 전부였다.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 강’ 연작은 비극적이지만 아름답다.

11월이 오면 대지는 만추로 물들고 나무들은 자신의 몸에 걸친 잎들을 지상에 낙하한다.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선 몸을 가볍게 해야 하는 것을 나무는 본능적으로 안다. 예술가들도 노년에 가면 선과 색이 단순화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끊임없는 비움을 통해 실현된다. 나무가 잎들을 버리지 않으면 몸채가 견디지 못하고 나중에는 쓰러질 것이다.

만추, 마지막 산화의 몸짓이 이렇게 화려하다. 나무는 미련이 없이 버리고 봄이 되면 새로운 생명을 꿈꾼다.

어느덧 햇살이 산을 넘어가고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우수수 흔들린다. 가을이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햇살이 긴 그림자의 우수를 남긴다. 외롭지만 나는 붓을 들고 또 나를 연소시킨다. 내일 또 태양은 떠오르겠지.
광남일보@gwangnam.co.kr         광남일보@gwangnam.co.kr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