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제를 활용하여 개원한 영암군 고향사랑소아청소년과가 ‘지역 아이 주치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 |
|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제를 활용하여 개원한 영암군 고향사랑소아청소년과가 ‘지역 아이 주치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 |
| 광주 동구의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사업을 통해 모금한 약 3억9000만원의 기부금으로 개소한 피스멍멍은 지역과 시민이 함께 마련한 지역 최초 도심형 유기견 입양센터다. |
![]() |
| 광주 동구의 고향사랑기부제로 문을 연 ‘피스멍멍’은 단순한 보호소가 아니라 사람과 동물을 연결하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
![]() |
| 광주 동구가 고향사랑기부제의 지정기부제도를 활용해 전국 최초 발달장애 청소년 야구단인 ‘E.T 야구단’의 지원에 나섰다. 이 기금은 유니폼과 장비, 야구캠프, 재능발굴 프로그램, 장애인 전용 실내야구장 건립 등 다양한 사업에 쓰였다. |
![]() |
| 광주 동구 고향사랑기부제로 운영 중인 ‘E.T 야구단’은 지난 5월 창단 이후 처음으로 발달장애인 전국대회에 출전했다. |
![]() |
|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후원받은 광주 동구 발달장애인 야구팀 ‘E.T(East Tigers)야구단’이 창단 후 첫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 |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 3년 차를 맞았다. 지난 한 해 동안 전국 243개 지자체에 모인 고향사랑기부금은 879억3000만원. 1년 전보다 35% 늘어난 규모다. 올해 상반기에만 348억8000만원이 모이며, 제도는 ‘실험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안착 궤도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전남은 지난 한 해 187억여원을 모아 2년 연속 모금액 전국 1위를 차지했고, 광주 동구는 기초지자체 가운데 가장 많은 24억9000여만원을 모으며 도시지역에서도 새로운 모델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하지만 기부금 만으로는 이 제도의 면면을 다 볼 수는 없다. 누군가의 기부가 도심 속 유기견의 삶을 바꾸고, 발달장애 청소년의 주말을 다시 운동장으로 이끌며, 20년 넘게 비어 있던 농촌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에 불을 다시 켠 이야기가 그 이면에 있다. 광주와 전남지역 사례를 중심으로 고향사랑기부제가 현장에서 어떤 변화로 연결되고 있는지 살피고, 향후 나아 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광주 동구 유기견 입양센터 ‘피스멍멍’이 문을 연 것은 올해 7월이다. 이전까지 동구의 유기동물 정책은 구조와 임시 보호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보호소는 있었지만, 치료와 입양까지 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체계는 부족했다. 동구가 방향을 틀어본 시점은 작년 초였다. 지난해 4월 피스윈즈코리아와 동구청은 유기견 입양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고, 이후 위기브를 통해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유기견 안락사 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 항목에 ‘유기동물 구조·치료·입양 지원’을 새로 올리고, “도심형 순환 입양센터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4000여명의 지정기부를 통해 모인 4억원 상당의 기부금은 센터의 뼈대를 세우는 데 집중됐다. 유기견을 구조해 바로 치료할 수 있는 진료실, 일정 기간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보호실, 시민이 방문해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 한 동선 안에 배치됐다. 중성화 수술과 예방접종, 내장칩 등록 같은 기본 관리도 이곳에서 함께 이뤄지게 했다. ‘피스멍멍’은 구조-치료-입양이 끊기지 않는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공간이 됐다.
센터가 문을 연 뒤 이곳을 거쳐 간 유기견은 100여마리가 넘는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입양으로 이어졌다. 이전까지 30% 안팎에 머물던 입양 비율과 비교하면 적지 않은 변화다. 무엇보다 센터가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으면서 시민과의 거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방문해 산책 봉사를 하는 가족, 인근 직장에 다니다 퇴근길에 들러 간식을 챙겨주는 직장인,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온 방문객까지, 유기동물 문제는 어느새 ‘뉴스 속 이슈’가 아니라 동구 주민이 직접 마주하는 일상이 됐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동구의 공격적인 ‘지정기부’ 전략이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광주 동구는 2024년 한 해 동안 2만3400건, 24억9000여만원의 고향사랑기부금을 모았다. 고향사랑기부제 시행 첫해인 2023년 9억2000만원에서 1년 새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로,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1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특산품이 풍부한 농촌도 아니고, ‘고향’ 인식이 약한 광역시 자치구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동구는 유기동물 보호, 독립영화관 광주극장 유지, 발달장애 청소년 야구단 지원을 세 축으로 한 ‘지정기부 3대 프로젝트’를 내세워, 기부자가 자신의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설계했다.
발달장애 청소년 야구단 E.T.야구단은 그 가운데 가장 극적으로 달라진 사례다. 2016년 창단한 이 팀은 한동안 지역 기업 후원으로 성장했지만, 몇 년 전 후원이 끊기면서 사실상 해체 위기를 겪었다. 유니폼은 해어지고 장비는 제 역할을 못하게 됐고, 훈련도 간신히 이어가는 수준으로 줄었다. “언제 팀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말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였다.
2023년 하반기, 동구가 고향사랑기부제에 지정기부제를 본격 도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동구는 ‘발달장애 청소년 야구단 운영 지원’을 대표 지정기부 사업으로 제시했고, 구체적인 기부사업을 찾던 기부자들이 여기에 응답했다. 6억원 상당의 기부금은 가장 시급한 부분부터 바꿔 놓았다. 아이들에게 새 유니폼이 지급되고, 낡은 글러브와 배트가 하나둘 교체됐으며, 코치를 한 명 더 영입해 수준별 훈련이 가능해졌다.
환경이 달라지자 아이들의 주말도 달라졌다. 복지관에는 “토요일마다 먼저 일어나 유니폼을 챙긴다”는 이야기가 부모를 통해 전해졌다. 월 4회가 한계였던 훈련은 12회로 늘었고, 방학을 이용한 동·하계 집중훈련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실내 연습장의 한계 때문에 대기 인원이 생길 정도로 참여 수요가 늘어났고, 2025년에는 발달장애인 티볼 전국대회에서 창단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야구단은 다시 지역의 자랑이 됐고, 동구가 “지정기부는 장기 프로그램에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해 온 방향성도 현장에서 설득력을 얻었다.
농촌 지역인 전남 영암군은 고향사랑기부제를 의료 공백 해소에 연결했다. 영암에서 마지막 소아과 의원이 문을 닫은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이후 20년 넘는 기간 동안 군 단위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었다. 0~18세 소아·청소년 6000여명의 진료는 목포·광주로의 장거리 이동에 의존해야 했다.
“아이 열이 나면 차부터 걱정해야 한다”는 부모들의 하소연이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쌓여 갔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에서 민간 병원이 다시 들어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영암군이 해법을 찾은 건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서였다. 영암군은 지난한 해 동안 12억여원의 고향사랑기부금을 모았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영암맘 안심 프로젝트’라는 지정기부 이름으로 필수 의료·보육 인프라 확충에 배분했다.
군은 이 재원을 기반으로 소아청소년과 개설을 결정하고, 보건소와 삼호보건지소에 나눠 진료가 가능하도록 공간을 손봤다. 장비 구입과 초기에 필요한 인건비도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단순히 “의사를 모셔오자”가 아니라, “와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자”는 방식이었다.
조건이 갖춰지자 영입 작업도 힘을 얻었다. 보건소 담당자들은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커뮤니티에 영암의 상황을 알리고, 직접 만나 설득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고향사랑기부금으로 개설비와 인건비를 마련해 최소 몇 년간은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설명은 의료진 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 그렇게 초빙된 전문의가 합류하면서, 2024년 8월 ‘고향사랑 소아청소년과’는 20년이 넘는 공백을 끝내고 문을 열었다.
진료실이 다시 켜진 뒤 변화는 수치로 확인된다. 개원 1년 만인 8월 기준 누적 진료 인원은 2268명. 이는 영암군 전체 소아·청소년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한 번 이상 이곳을 찾았다는 뜻이다.
단순 감기부터 장기적인 경과 관찰이 필요한 질환까지, 그동안 ‘한 번 진료 받으려면 하루를 비워야 했던’ 진료가 생활권 안으로 들어왔다. 진료실 한쪽 벽에 붙어 있다는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한 어머니의 편지는, 고향사랑기부금이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가장 간명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다.
전남에 고향사랑기부제가 안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되고 있다. 전남도에 따르면 2024년 전남의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액은 187억여원으로, 2년 연속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인구감소지역이 많은 전남에서 이 정도 규모의 기부가 모였다는 사실은, 제도가 단순한 세제 혜택을 넘어 “고향을 위해 쓸 수 있는 통로”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국 단위로 보더라도 흐름은 비슷하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4년 한 해 고향사랑기부제 총 모금액은 879억3000만원으로 2023년(650억여원)보다 35% 이상 늘었다. 2025년 상반기 모금액은 348억8000만원으로, 제도 시행 첫해와 비교해 1.7배 수준이다.
2024년 6월 도입된 지정기부제가 “내가 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고 싶다”는 기부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참여를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숙제도 있다. 인기 있는 사업과 지역에 기부가 몰리며 지자체 간, 사업 간 편차가 커지는 문제는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유기동물 보호, 장애인 스포츠, 필수의료 같은 사업은 해마다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특정 연도 기부 실적에만 의존할 경우 운영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일부 지역에서 벌어지는 ‘답례품 과열 경쟁’은 제도 본래 취지와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향사랑기부제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두 가지를 주문한다. 하나는 기부와 지자체 재정의 적절한 결합이다. 기부금은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마중물’ 역할에 가깝고, 지속적인 운영은 결국 지자체 예산과 민간 협력이 함께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과의 투명한 공유다. 어느 사업에 얼마나 쓰였는지, 그 결과 지역의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구체적인 숫자와 사례로 보여줄 때, 기부는 일회성이 아니라 관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광주 동구 유기견 입양센터와 E.T.야구단, 영암의 고향사랑 소아청소년과는 서로 다른 영역에 놓여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품고 있다. 모두 “고향사랑기부금이 아니었다면 시작조차 어렵던 일”이었다는 점, 그리고 “한 번 시작되고 나자 지역의 일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는 점이다.
광주·전남 각 지자체들은 앞으로 지정기부제를 더욱 활용해 지역에 보탬이 되는 현안 해결에 앞장 설 예정이다.
강경문 전남도 고향사랑과장은 “저출생, 인구 유출 등 지방 위기가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는 핵심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향후 지역 수요 맞춤형 기금 사업 실현, 답례품 개발, 홍보 전략 수립 등 중장기 전략을 세워 제도를 활성화 하겠다”고 말했다.
이현규 기자 gnnews1@gwangnam.co.kr
윤용성 기자 yo1404@gwangnam.co.kr 이현규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5.11.17 (월) 2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