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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
오랜 시간 문화 현장을 지켜보며 마침내 확신에 이르렀다. 그 해답은 바로 ‘풍류(風流)’에 있으며, 풍류야말로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사상의 뿌리였다는 것이다. 흥과 끼, 멋과 맛, 그리고 신명은 한국인의 풍류이자 삶을 움직이는 생명의 힘이다.
풍류의 한자는 바람 풍(風), 흐를 류(流)다.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나 풍류는 단순히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풍치 있고 멋스럽게 놀 줄 아는 사람의 삶에는 나름의 품격과 철학이 있어야 비로소 풍류라 할 것이다.
옛말에 한량(閑良), 또는 풍류객(風流客)이라는 말이 있다. 일정한 직업에 매이지 않고 돈도 잘 쓰고, 사람들과 어울려 잘 노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문화예술판에는 다양한 끼와 걸쭉한 입담을 가진 한량과 풍류객이 많다. 필자 역시 이 문화예술판에서 ‘하루 놀고 하루 쉬는 사람’으로 살아오며 30여 년 넘게 잔뼈가 굵었다.
풍류는 먹고, 놀고, 즐기는 흥을 소중히 여긴다. 이러한 풍류가 한 나라나 특정 지역의 삶 속에서 오랜 세월 이어질 때 전통문화가 되고, 지역의 문화가 된다. 풍치 있고 멋스럽게 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는 물’이 좋아야 한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어우러지고, 먹거리와 즐길거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때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선비는 문사철(文史哲)을 공부하고 시서화(詩書畵)를 교양으로 익힌 인문학도였다. 학문과 예술을 함께 닦으며 학예일치(學藝一致)의 조화로운 경지를 지향한 지성인이었다. 무거운 책무 속에 살아가던 선비들도 때로는 일탈과 해학을 통해 삶의 유연함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바로 선비들의 해학이자 풍류였다.
선비의 풍류에도 질서와 도덕이 있었다. 청빈(淸貧), 낙천(樂天), 우애(友愛), 이 세 가지가 바탕이 되어 몸에 배어야 품격 있는 풍류가 생긴다. 노는 정도가 지나치거나 사치스러워지면 풍류는 천박한 유흥으로 변하고 만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儉而不陋, 華而不侈)”는 삶의 태도를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한국의 춤과 노래, 그림과 조각, 건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예술에는 해학과 멋, 그리고 삶을 넉넉하게 바라보는 여유와 낙천성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에너지를 ‘신바람’이라 부르고 싶다. 그것이 바로 풍류 정신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것이 ‘남도의 풍류 정신’이다. 남도 사람들의 문화예술 속에는 한국적인 신바람의 에너지와 풍류가 유난히 짙게 배어 있다. 남도를 의향(義鄕), 예향(藝鄕), 미향(味鄕)이라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도만의 독특한 풍토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풍부한 감성을 키워왔고, 다양한 예능과 끼를 삶 속에서 꽃피웠다. 곳곳에 자리한 누정문화 또한 남도 사람들의 풍류적 정서를 잘 보여준다. 구성진 가락과 아니리를 섞어가며 소리를 토해내는 남도의 판소리, 감칠맛 나는 남도민요 역시 남도의 자연환경과 삶의 조건, 풍류 정신 속에서 탄생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앞서 기고한 칼럼을 통해 K-문화의 중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가 남도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남도’는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이다. 광주와 전남으로 대표되는 남도에는 고단한 삶의 기억, 그 삶을 견뎌낸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 그리고 한(恨)과 흥(興)이 어우러진 정서가 깊이 집약되어 있다.
풍류는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이며,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K-문화의 뿌리이기도 하다. 남도 땅이 K-문화산업의 중요한 허브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우리 문화의 깊이를 담아낼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 남도에 산재한 한국 고유의 문화를 연구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재생산할 수 있는 ‘한국풍류진흥원(가칭)’과 같은 전문기관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을 때다.
풍류란 결국 잘 노는 기술만이 아니다. 멋과 맛을 알고, 사람과 어울릴 줄 알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삶의 여유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다시 되새겨야 할 풍류이며, 품격 있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상열 gn@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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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9 (화) 19: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