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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호 시와사람 발행인 겸 주간 |
그러나 농촌지역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문화적 혜택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간혹 문화원에 실버세대를 위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역은 다행이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인구밀도가 높아 언제든지 접근하기가 쉽지만 농촌지역의 경우 각 면소에서 읍내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4년째 함평문화원에서 운영하는 어르신문화학교에 나가 어르신들에게 ‘고향스토리텔러’를 지도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3시간을 어르신들과 함께 논다는 마음으로 광주에서 함평까지 가는 일이 즐겁다. 고향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자신의 삶을 기억해 말로 풀어내고 글로 기록하도록 한다. 물론 어르신들 대부분이 글 쓰는데 훈련이 안 되어 있어 세련된 문장을 쓰기 힘들다. 필자가 거들어 함께 고향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해 간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은 어르신들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멋진 문장을 뽐낼 일도 아니다. 자신의 고장에서 전해오는 역사나 설화를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붙여 이야기해 보거나 일제 강점기의 민족 수난, 참담한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배고팠던 보릿고개와 우리나라 근대화를 위해 바친 땀방울의 이야기, 개인적인 슬픔과 기쁨의 이야기 등을 생각하며 자신의 고장과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어르신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참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거나 ‘나의 일생은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삶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움추렸던 어깨를 펴게 될 것을 기대한다.
한국전쟁 전 3.8선 이북에서 살았던 어느 어르신의 기록을 통해 전쟁준비를 하고,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신 어르신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해방공간에 갓 결혼한 새댁의 남편이 좌익으로 몰려 목포형무소에 수감됐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면회를 가지 못하다가 가족들 모르게 면회갔지만 며칠 전 목포 앞바다에 수장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젊은 시절의 어느 할머니의 가슴아픈 사연은 모든 사람들을 가슴아프게 한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부모님이 해방이 돼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우리나라로 돌아와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낸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 역시 듣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누대로 물려받은 가난을 청산하겠다고 70년대 열심히 일해 온 새마을지도자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파란만장한 가시밭길을 지나온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모습은 젊은이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의 상징으로 비춰진다. 어린 학생들처럼 숙제를 잘 해 오지 않는 은발의 학생들도 있지만 요즘은 다음 달 시화전을 위해 열심히 시를 써서 젊은 선생에게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제출하는 소녀 같은 할머니도 계신다.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7월이지만 우리 어르신들은 함평엑스포공원 소나무밭에서 오색으로 펄럭이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적힌 시화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행복해 한다. 가을이 다가도록 책상에 앉아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기도 하고, 가끔 꾸벅꾸벅 졸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학교에 간 듯 열심히 공부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10월이면 모든 프로그램이 마무리된다. 어르신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쓴 글들은 수백 편이 된다. 그것들을 기록한 책을 읽는 어르신들은 삶의 활기를 찾는다. 명절 때 집에 오는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할아버지가, 또는 할머니가 글을 썼다고 이름 석 자가 박힌 글을 펼쳐보이곤 한다고 한다. 평생 자신의 이름 석 자 내세울 일이 없었던 어르신들이라 힘들기도 했던 교육과정이었지만 내년에도 다시 문화원에서 모이자 한다.
어느 지방문화원의 소박한 프로그램이지만 인간 존재의 본질을 살피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26.03.17 (화) 20: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