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아! 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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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문화산책]아! 니스

한희원 서양화가

오늘/시 한 편의 공허함을 본다//아련한 비수로 파고드는/시의 칼날이//시로써 무엇을 할 수 있는지/풀잎은 비와 햇살을 맞으며/홀로 서 있다 스스로 대지 위로 몸을 누인데//인간은/인간으로 비수가 된다//한 편의 시가/한 장의 그림이/공허로 파고들 때//잠시/마음을 멈추고/빗소리를 듣는다//존재의 상처들이 떠도는 시간/비는 끝없이 낙하한다(한희원 詩 ‘존재의 상처’)

아침 빗소리에 눈을 뜬다. 반쯤 열린 창문 밖에 장마를 알리는 회색빛 구름이 직립해 있는 건물 뒤로 버티고 서 있다. 어떤 날은 아침에 소곤이 밀려오는 햇살도 좋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비 내리는 날에 창가를 두드리는 소리는 연민의 두근거림으로 다가와서 좋다. 햇살과 비는 스스로 대지를 찾아오고 누구의 간섭 없이 존재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완전한 자유와 절대적으로 혼자만의 고독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신에게 의지하고 때로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존재한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모든 사람이 다함께 누리는 평화의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요즘처럼 정보가 발달된 시대에는 옛날 같으면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 갖가지 크고 작은 지구촌의 사건들이 시시때때로 전해지니 한시도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기 힘들어 졌다. 그렇다고 눈과 귀를 막고 막막한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홀로 세상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다. 느슨하게 찾아오는 횟빛 하늘과 조금 있으면 들려올 빗소리의 아련함을 기다리며 TV를 켜니 들려오는 소식이 너무 충격적이다.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인 니스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다.

국내에서는 사드배치 문제로 인해 지혜를 짜내려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는데 니스의 소식은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에 대하여 절망과 회의감을 느끼게 한다.

먼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순식간에 지구 곳곳에 알겨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상처를 받게 된다. 더군다나 생생한 현장의 소식을 전해주기까지 하니 마치 참혹한 현장에 있는 것 같아 충격이 배가 되는 듯하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는데 이번 일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이건만 우리에게도 외면할 수 없는 크나큰 아픔을 준다.

종교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데 종교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등을 빚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이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와 같은 화가인 예술가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본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은 고통 속에서도 그 시대의 아픔과 참혹함을 기록해야 하고 그러한 기록은 훗날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어떠한 아픔 속에서도 평화를 염원하는 기록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니스나 터키, 국내의 사드배치 같은 갈등이 겹겹이 쌓이고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어서 내일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일지라도 예술가는 인류의 평화와 사랑을 위해 기록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철학자는 예언자로서 인류의 행복을 위해 내면의 소리를 토해내어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인문이 인간을 연구하고 과거를 해석하는 일로 그치기보다는 과거에 일어났던 현상들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대비하는 지혜를 마련할 토대가 되어야 한다.

피카소는 그의 작품 ‘게르니카’를 통해 참혹했던 그 시대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게르니카’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날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고 경험하며 반성한다. 예술가는 시대에 대한 거울이며 그들이 남긴 작품은 미래를 노래하는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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