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사마귀와 왜가리가 보여준 침묵과 견딤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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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사마귀와 왜가리가 보여준 침묵과 견딤의 생명력

강경호 시와사람 발행인 겸 주간

일이 잘 풀리면 잊고 있다가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살아가는 일이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온갖 잡념 속에 빠져든다. 자식들도 키워내어야 하고, 노후도 걱정된다. 우리 주변에는 안개 속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특히 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그들에게 실업을 강요한 것 같기 때문이다. 이렇듯 삶의 현장은 누군가를 쓰러뜨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늘날 지구상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모두 생존경쟁의 승리자들이다. 그런 까닭에 여전히 오늘도 그 치열한 경쟁은 계속되고 누군가를 쓰러뜨려야 한다. 모든 생명체들은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

어느 날 우리집 정원에서 사마귀를 본 적이 있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정원에서 사마귀를 볼 수 있다니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여름쑥부쟁이 그늘에 앉아있는 사마귀는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갈퀴처럼 생긴 앞발은 마치 권투선수의 글러브 같았는데 먹이가 나타나면 한방으로 때려 눕히겠다는 포즈였다. 몸을 숨기고 전방을 주시하며 먹이를 발견하려는 모습이 식사를 앞둔 자의 경건한 의식처럼 보였다. 그러나 먹이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 법이어서 사마귀는 거미처럼 어떤 미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생존법으로 살아가는 사마귀의 생명활동이 참으로 답답하고 암담하게 느껴졌다.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먹이를, 마치 빈 밥그릇 앞에서 수저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귀는 끈질긴 인내로 제 삶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렇듯 생존을 위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사마귀와 바람 한 점 없는 쑥부쟁이 그늘에 드리워진 적막이 무서우리만치 엄숙했다. 감히 누가 사마귀가 드리운 적막을 깰 수 있을까 싶었다. 사마귀의 행동은 수만 년 동안 축적된 진화의 결과인 까닭에 꼼짝하지 않고 먹이를 기다리는 하찮은 미물이지만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 겨울 눈 내리는 날, 광주천변에 운동하러 나갔다가 차디찬 물 속에서 발을 담그고 서 있는 왜가리를 본 적이 있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종종걸음으로 달리기를 하거나 운동기구에 매달려 추위를 떨치려 하는데, 연약한 왜가리는 가느다란 다리를 차디찬 물 속에 발을 담근 채 눈을 맞으며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오히려 온 몸에 한기가 들 정도였다.

이렇듯 일 년 중 가장 추운 날 광주천 살얼음진 물속에서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발을 담그고 있으니 엄청 발이 시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따스한 방안에서 디룩디룩 비만해져 살고 있으니 왜가리가 가엾다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눈보라치는 광주천에 발을 담고 먹이를 노리는 왜가리 역시 살아남기 위한 오랜 방법의 진화에서 나온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과 뭇짐승 사이에 놓인 거리가 꽤 멀게 느껴졌다.

이렇듯 지난한 환경 속에서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생명체들의 평범한 일상이라고 하더라도, 신성한 종교의식처럼 생각되었다. 물 속에 잠긴 발 끝에서 온 몸으로 전해지는 한기를 뜨거운 전기로 변환시키는 힘을 가진 까닭에 오히려 온몸이 후끈후끈 열기가 가득 찰 것이라는 생각은 엉뚱한 상상력이겠지만, 이 끈질긴 침묵과 인내가 왜가리의 생명력이라고 여겨졌다.

나는 여름 쑥부쟁이 그늘에서 한정없이 먹이를 기다리며 풀숲에 적막을 드리운 사마귀와 눈내리는 겨울 광주천 물에 발을 담근 채 먹이를 기다리는 왜가리의 견딤과 침묵을 보며, 오늘 우리 사회의 생존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생각한다. 늙고 병든 노인과 조부모 밑에서 자라는 소년소녀가장들을 어떻게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마귀와 왜가리가 보여준 끈질긴 침묵과 견딤을 통해 우리 청년들이 보다 건강하고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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