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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아파트 주민들이 집에 그늘이 드리운다고 메타세콰이어 허리를 싹둑 잘라버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까치집이 부서지고 새끼들이 추락해 죽었다. 그러나 잘린 메타세콰이어 상처에 또 다시 까치가 찾아와 집을 짓고 몇 해가 지나자 또다시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겨우 옛 모습을 회복해 가고 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인간중심의 사고와 폭력성에 대해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 아무 말 없이 상처를 치유하는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았다.
퇴근해 아파트를 들어서려는데 경비아저씨가 아파트 단지에 있는 메타세콰이어를 비롯해 커다란 나무들을 베어낼 것인지, 아닌지를 의사표현하라고 한다. 세대별 호수와 ‘찬성’ ‘반대’를 묻는 설문지에는 이미 ‘찬성’과 ‘반대’란에 동그라미가 표시돼 있다. 자세히 바라보니 나무를 베는데 대부분 ‘찬성’에 동그라미를 표시하고 ‘반대’ 표시는 가뭄에 콩나듯이 눈에 띈다. 나는 ‘절대반대’라고 썼다.
몹시 화가 나서 집에 들어왔는데 이번 투표의 배경을 설명한 안내장이 배달돼 있다. 건립 초기에는 광주에서 가장 훌륭한 아파트였는데 이제는 가치가 절하돼, 나무들을 베어내고 화원을 조성하면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뭇잎이 떨어져 경비아저씨들의 수고가 더해진다는 것이다. 뻔한 답을 내어놓고 ‘큰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자’를 유도하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에 처음 이사 와서 나는 커다란 나무들을 보며 고향마을 앞 당산나무를 떠올렸다. 매년 정월이 되면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당산제를 지냈다. 이른바 신목(神木)으로 섬기며 마을 수호신으로 여겼다. 우리 조상들은 큰 나무나 바위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을 빌었다. 신목이나 바위 앞에서는 몸가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처럼 큰 나무를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자는 뜻이 아니다. 생명성에 관심과 배려를 가지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다고, 작은 이익과 편리함을 위해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부터 있던 수십 년 된 나무들을 쉽게, 그리고 함부로 베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인간중심적 사고 때문이다. 인간중심적 사고는 탐욕이다. 그리고 이기적이다. 이럴 때마다 가슴에 바위가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따지고 보면 유익한 것이거늘 혐오시설이라고 인식하는 자체가 문제이다.
인간중심적인 사고는 상대적으로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여기거나 이익을 위해 무조건 개발을 불러온다. 아파트나 공장을 짓기 위해 함부로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자연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동식물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문명을 통한 이기를 얻으려는 인간의 폭력은 오늘날 기후변화를 초래해 자연생태환경의 교란을 불러오고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특히 우리가 현재 뼈저리게 느끼는 미세먼지 현상은 직접적으로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것이 오늘의 세태이다.
나는 나무를 보면 설레이고 가슴이 뛴다. 생김새도 다르고 정직하며 언제나 푸르름이 생명성을 일깨운다.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거나, 그렇지 않는다 해도 푸른 줄기에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나무는 새들의 안식처를 제공하거니와 온갖 생명체들이 나무에 기대어 살아간다. 마을 앞 당산나무는 여름날 그늘의 안식을 마련해주고 수호신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수십 년 된 나무들을 쉽게, 함부로 인간들이 생존의 문제를 결정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무가 필요한 곳으로 옮기는 것도 방법이다.
인간의 이기와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 자연은 상처입은 것에 대해 반드시 보복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인간과 자연이 상생할 때 인류의 미래는 더욱 살기좋은 세상이 된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2026.03.05 (목) 0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