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대표하는 김치에 매료…세계화에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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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대표하는 김치에 매료…세계화에 앞장"

‘루시아푸드’ CEO된 요셉 흘라바츠

하이네켄 韓지사 설립 앞서 2001년 방문 인연 지사장 역임
광주 김치 명인 딸인 조선화씨와 2006년 결혼 뒤 광주거주
경험 살려 김치 사업 전념 와인·치즈 같은 브랜드화 주력


"프랑스의 와인이나 치즈와 견줄만한 전라도를 대표하는 ‘김치’를 만들어 세계에 판매하겠습니다."
전라도 김치를 사랑하고 연구하고, 한발 더 나아가 김치 회사까지 직접 경영하며 해외 판로를 개척하는 외국인이 있어 화제다.
슬로바키아 출신인 요셉 흘라바츠(55) ㈜루시아푸드 사장.
현재 광주 북구에서 김치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흘라바츠씨는 세계 굴지의 맥주 회사 간부를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김치 세계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괴짜로 통했다.

에디슨처럼 발명가가 되고 싶은 호기심 많은 아이로 자신을 회상한다. 집에 있는 가전제품 등은 호기심에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기 일쑤로 성한 것이 별로 없었다. 때문에 요셉의 어머니는 지금도 그가 무언가를 만지면서 이야기할 때 무의식적으로 슬그머니 물건을 뺏어 한쪽으로 치운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도 그는 평범하지 않았다.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교과서가 아니다. 문학, 경제, 사회 분야 등 교과서가 아닌 책은 모조리 읽었다.
정작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시간 자체가 아깝다고 생각하는 그는 학교 수업보다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좋아해 축구, 가라테, 연극 모임 등을 직접 결성했다. 특히 고교 시절에 창립, 배우로 활동한 연극부는 슬로바키아 아마추어 연극부 중 가장 유명해 지기도 했다.

아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믿고 지원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인 어머니의 영향이었을까. 학교수업은 그에게 관심 밖이었지만 성적은 항상 ‘톱 클래스’였다. 학창시절 한 명씩 볼 수 있는 ‘공부는 안 하는 것 같은데 1등’인 그런 아이였다. 자칫 친구들의 시샘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다방면의 지식과 특유의 쾌활함으로 인기까지 만점인 그런 아이였다.

방 한 켠에 있는 책장이 DVD와 책으로 가득 찰 정도로 영화와 책을 좋아했던 그는 한차례 재수한 끝에 ‘엘리트 종합 예술대학’에 들어가 영화 제작을 전공하고 졸업 후 작은 광고회사를 운영했다.

그러다 1998년 우연한 기회에 하이네켄 슬로바키아지사에 취직했다. 호기심이 삶의 구동력인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게 된다. 비슷한 알코올 도수로만 제작되던 맥주의 도수를 높여 2~3배 가량 높여 만드는 아이디어를 생산팀에 제시한 것이다.

당시 코카콜라 등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기념 제품을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이네켄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이를 겨냥해 요셉씨는 우리나라 알코올 도수 계산법으로 12~13도(평균 5도)의 맥주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이 맥주는 와인과 비슷할 정도로 짙은 갈색을 띄었다.
이렇게 ‘즐라티 바잔트 21’이라는 한정판 밀레니엄 패키지가 출시됐고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이후 그는 네덜란드에 있는 하이네켄 본사로 발령을 받아 본사에서 세계 각국의 지사로 파견 나가는 자리를 맡았다. 이렇게 세계 굴지의 맥주 회사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던 그가 한국과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01년이다.

하이네켄 한국 지사 설립에 앞서 ‘한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 조사’의 프로젝트를 맡아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가 처음 본 한국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벼농사를 짓는 그저 그런 국가로만 생각했지 이렇게 발전했을 줄은 몰랐다"면서 "인천 공항에 내려 한 호텔에 투숙하기 위해 가는 길에서 본 한국은 자신이 본 세계 각국 중 가장 역동적이었다"고 말했다. 1998년 IMF를 겪었다고 들은 나라가 이 정도로 세련된 발전을 이뤘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장 조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네덜란드로 돌아간 그는 2003년 설립된 하이네켄 코리아 지사장으로 다시 한국을 찾아 정착했다.
2006년 12월에는 부인 조선화씨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2007년 임기를 마치고 카자흐스탄 지사로 떠나기로 돼 있던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하이네켄에서 계속 근무한다면 이번 카자흐스탄 발령 이후로도 계속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게 된다. 부인과 함께 떠나느냐, 홀로 떠나느냐,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 정착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고민 끝에 결국 한국에 남기로 결정, 일을 그만두고 아내의 고향인 광주로 내려왔다. 이때부터 김치의 매력에 푹 빠졌다.

여기에는 ‘광주 김치 장인’ 장모 김은숙씨(67)의 영향이 컸다.

지난 2006년 ‘제13회 광주김치대축제 전국전통 김치담그기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씨는 광주에서 전통 한정식집과 김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김씨가 담근 김치는 전라도의 문화와 정체성까지 반영한다는 자신의 철학과 인공 조미료 대신 배 등 천연 조미료 등 소신과 정성을 담아 전통의 맛을 재현해 ‘명품 김치’라는 호평을 들었다.

백김치 국물을 주스처럼 마실 정도로 장모의 김치를 유독 좋아한 그는 김씨의 남다른 ‘김치 철학’에 매료돼 김치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
‘김치 초보’였던 그는 당시 실질적인 사장이었던 아내 조선화씨를 도와 김치의 신세계에 빠져든다.

특히 2008년 미국 워싱턴 한국 대사관에서 루시아 김치 전시·시연, 2012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 김치 보도 등을 보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은 김치’라고 확신을 하게 된다.

몇 년간 경영수업을 받은 그는 이제는 루시아푸드 사장의 자리에 앉아 경영의 1선에 뛰어들었다.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특히 호기심과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는 외국인도 쉽게 접근하면서 전라도의 전통을 발전·계승시킨 맛을 내기 위해 불철주야 힘을 쏟고 있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만든 김치의 첫 번째 평가자는 올해 8살, 11살 된 두 아들이다. 다른 또래 아이들과 다르게 김치만 있어도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다는 두 아들은 김치를 맛보고 전문가 못지않은 평가를 내놓는다고 한다.

아이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든든한 지원군인 셈이다.

그는 "저렴한 배추를 사서 조미료를 넣고 설탕을 첨가해 김치를 찍어내듯 만드는 일은 쉽지만 그것은 루시아김치의 철학이 아니다"면서 "우리 김치는 매번 식탁에 올라가는 반찬을 넘어서 한국문화의 정체성과 자부심까지 담아낸다"고 말했다.

‘전라도 김치’ 하면 그냥 김치가 아닌 맛과 멋, 영양을 고루 갖춘 ‘슈퍼헬시푸드’이며 그중에서도 루시아김치가 으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김치를 개발하고 보관하며 운송하는 방법을 연구하겠다는 의미다.

고들빼기, 파 김치, 갓 김치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50여 개 국가를 돌아다녀 봤지만 이렇게 훌륭하면서 맛있는 음식은 몇 되지 않는다"면서 "와인하면 프랑스, 치즈하면 이탈리아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김치 하면 전라도가 떠오를 수 있도록 ‘전라도 김치’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세계화 시키겠다"고 말했다.
윤자민 기자        윤자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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