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K컬처 견인차…세계미술계로 배출 통로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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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의 K컬처 견인차…세계미술계로 배출 통로 역할

<5>국내 미술계에 미친 영향
국내미술 사상 최초로 본격적 의미의 실험·도전의 장 전개
‘아시아 간판 비엔날레 여는 도시’ 국제적 위상 가능성 발현
韓미술 확장 기여 "국내미술 브랜드로 자신감 가져야" 밝혀

2014년 광주비엔날레 당시 2전시실에 출품된 이완 작가의 ‘불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을 둘러보고 있는 관람객들.
 창설 30주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는 원래 세계 5대 비엔날레에 든다고 소문이 많이 나 있지만 사실 세계 2대 비엔날레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온다. 이는 ‘휘트니비엔날레’와 함께 말이다.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전세계 미술인이라면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비엔날레의 하나였다. 그러나 미술 외적 환경이 발목을 잡은 경우에 속한다. 행정을 위시로 한 시스템이 발목을 잡았기에 양대 비엔날레로 올라서지 못했다면서 국내 권위있는 미술 한 전문가는 안타까워했다. 그는 2년 단위로 열리는 비엔날레는 기간이 2년인 만큼 임박해서 정하기보다는 차기 감독이 미리 정해져야 할 뿐 아니라 광주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주먹구구식으로 모든 일 처리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 역시 빨리 수정해야 한다는 점 역시 잊지 않았다. 이처럼 광주비엔날레는 1994년 12월 설립준비위원회와 조직위원회가 발족된 뒤 1995년 4월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가 설립됐다. 창설 30주년을 올해로 계산하는데는 준비위 발족 년도에 맞춘 것이다. 서른살이 된 만큼 국내미술에 미친 영향이 작지 않다는데는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광주비엔날레는 세계미술시장에서 후발 주자였지만 한국현대미술을 널리는 알리는 한편, 당시의 국내미술 전반을 견인하는데 중요한 산파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국내미술 사상 최초로 본격적 의미의 실험과 도전의 장을 펼친 공간이었다. 우선 한국미술이 K컬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역량있는 작가들의 세계미술로의 배출 통로 역할을 했다. 서도호 등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국내작가들이 세계작가로 탄탄하게 뿌리를 내리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발판이 된데다 광주라고 하는 지역의 미술계 또한 ‘우물 안 개구리’식의 미술이 아니라 글로벌화를 표방하면서 해외로의 진출을 한껏 고양시켰다.

 한국미술사에서 광주비엔날레는 1981년 부산청년비엔날레로 뿌리를 두고 2002년부터 비엔날레라는 명칭으로 공식화한 부산비엔날레나 1999년 시작된 청주공예비엔날레, 2004년 시작된 인천여성비엔날레, ‘2010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출발해 2012년 첫 대회를 연 창원조각비엔날레 등을 촉발시키는 근거가 됐다. 올해 짝수년도에 열리는 국내 비엔날레만해도 대략 8개 정도의 비엔날레에 이르는데 모두 거슬러올라가면 비엔날레 조상격인 광주비엔날레에 귀결된다.

 이를테면 광주비엔날레는 한국미술의 확장을 불러오고, 광주라는 도시가 세계적 문화도시로 발돋움을 하는데 기여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을 수 있는 국제적 문화예술행사를 갖게 되면서 위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광주는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나아가는데까지 근거가 된 것이 비엔날레였다. 서울이 키아프와 프리즈가 만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아트페어를 여는 도시가 된 것처럼 광주는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아시아 간판 비엔날레를 하는 도시가 된 셈이다.

 영화나 문학이 발빠르게 글로벌화를 이뤄낸 상황에서 K미술의 세계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창구가 광주비엔날레다. 세계 미술 영역 안에서 통하는 행사가 됐다는 이야기다. 동시대성을 호출하면서 시대 최고의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무대가 됐다. 한국미술이 세계와 나란히 설 수 있는 계기가 됐고, 비엔날레에서 세계 미술의 트렌드를 접한 관람객들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게 된 것 역시 비엔날레 덕분이다.

 광주비엔날레가 국내에서 독보적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배경에는 그 어느 비엔날레보다 브랜딩화돼 있다는 점이다. 한때 2008년 ‘연례보고:일년 동안의 전시’라는 타이틀로 열린 제7회 전시의 오쿠이 엔위저나 2010년 ‘만인보’(10,000 Lives)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제8회 전시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처럼 광주비엔날레 감독이 반드시 베니스비엔날레 감독을 맡게 되면서 세계미술올림픽을 이끄는 패턴이 한때 작동됐다. 2004년 예술총감독을 맡아 ‘먼지한톨 물한방울’이라는 타이틀로 제5회 전시를 이끌었던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같은 분도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세계적 인물이 됐다는데 공감한다.

 해외 작가들에게 "광주에서 제안받았어"라는 말이 위상을 급반전시킬 수 있는 모토로 작용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일부 미술인사는 광주비엔날레가 국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상징성이 작지 않는 만큼 진정한 의미의 K미술 선두로 명실상부하게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힘을 쏟아야 한다는 점을 귀띔했다.

 행정의 간섭 최소화를 필두로 광주만의 정체성 재확립,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 확보, 조명되지 않은 작가들 및 재탕 삼탕이 아닌 참신한 작품 발굴, 미술계로부터 충분한 설득을 얻을 수 있는 감독이나 미술계로부터 신임이 두터운 대표이사 선임 등에 역량을 모을 때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취재차 방문했던 비엔날레로 후발주자들인 부산비엔날레나 창원조각비엔날레, 그리고 일본 요코하마트리엔날레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비엔날레 등에서 전시에 투영할 점은 참조하되 각기 고유의 차별점이 있다면 반영해 발전의 기틀로 삼을 필요성이 있다고도 했다.

 국내 이름만 대도 알만한 화가 B씨는 "동네잔치처럼 전락하면 안된다. 5·18항쟁을 기반으로 한 민주, 인권, 평화라고 하는 본연의 광주정신이 실종된 측면이 있는 만큼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 서구 중심 사상에 함몰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어떤 때는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며 "광주정신에 부합되는 전시는 물론 그에 걸맞는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술전문지를 내고 있는 A씨는 "미술 단일분야에서 광주비엔날레는 한국미술의 브랜드다.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들은 해외에서 반응이 좋다. 광주비엔날레가 없었으면 해외에서 한국미술의 영향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휘트니비엔날레가 엄청나게 노력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광주비엔날레도 K컬처 선두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감독이나 대표이사를 잘 뽑아서 전시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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