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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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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사 경내로 오를 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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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의 간절한 소원이 담긴 돌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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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미니 법당에 온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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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지대며 의지하며 사는 듯한 닮은꼴 소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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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야생화초, 원형 석분이 조화를 이뤄 묘한 느낌을 안겨주고 있다. |
전북 고창에는 방장산 아래 서울 시니어스 고창타워(고창 웰파크시티)가 있다. 실버세대들의 집단 거주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이미 매매가 끝나 더이상 시설이 확충되지 않기에 그 가치는 더 상승한 가운데 전국 실버들의 초집중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유튜브에 보면 어찌나 멋드러지게 소개를 하던지 한 눈에 가보고 싶은 욕망이 인다. 아직 실버를 대비하기에는 이른 나이지만 그 일대 선운사를 비롯해 구시포와 동호해수욕장 등을 간만에 함께 둘러볼 겸 해서 고창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작 고창타워보다는 방장산(해발 743m, 전북 고창과 전남 장성 경계에 소재) 자락에 자리잡은 미소사에 꽂혔다. 미소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로 우선 명칭 때문에 한번 더 집중하게 되고, 사찰의 잘 정비된 구조와 풍경 때문에 더 관심을 둘만한 곳이다. 산길을 타고 오르다가 방문했던 날, 하루 이틀 전에 제법 많은 눈이 내린 모양이었다. 사찰 입구까지 차로는 대충 눈이 녹았지만 산자락이나 사찰 안에는 눈이 그대로 였다.
하지만 너무 가파르다보니 사고 위험도 걱정이 되고 해서 중턱에 차를 놔 두고 걸어 오르기로 했다. 영하의 날씨답게 너무 추워 오르는 내내 추위에 몸을 감싸야 했다. 귀와 손마디가 시려왔다. 대개 사찰 여정은 복불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만 유명하지 실속은 하나도 없는 사찰이 있는가하면, 규모만 크지 부조화스런 사찰도 있다.
그런데 미소사는 건축물이라 해봐야 네다섯동에 불과하다. 그러나 꽃피는 봄철이나 석탄일 전후에는 방문 차량들과 사부대중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이미 미소사를 알고 있는 불자들은 꽤 오랜 시절부터 오갔는 모양이다. 더욱이 고창 웰파크시티 석정온천휴스파(석정온천)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곳인데, 온천에만 오고 돌아가서 미소사는 더욱 눈에 띄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 아무래도 광주를 중심으로 움직이다보니 정보도 없었고, 관심도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날 방문 역시 고창 웰파크시티를 차로 한 바퀴 둘러보자는 마음으로 방문했던 것이다.
작은 규모의 사찰이지만 방문했던 날, 날씨 탓인지 많은 인파 대신 바람만 사납게 불었다. 산사이니까 풍경이 멋지지 않을 수 없다고 입방아 찧을 수 있겠지만 작은 규모의 아담한 사찰로 ‘내가 찾던 곳이 한눈에 이곳이다’ 하는 생각을 던져주는 도량은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우선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 덕분이었을까. 다른 사찰을 찾아보면 처마에 풍경이 아무 소리내지 않고 매달려 있거나, 등이 달려있는 사찰이 많은데 바람에 일일이 반응하는 풍경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겨울이어서 세간 살림이라야 넘치지 않겠지만 도량이 잔뜩 욕망으로 채워진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온통 자연에 둘러싸인 미소사에서 든 생각이다.
한겨울 나무들 역시 모두 욕망을 비워낸 지금, 세를 들어온 인간의 공간도 모든 것을 비워내고 있지 않을까 한다. 미소사 가는 길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서야 당도할 수 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산사에 오로지 홀로 길을 잃고 서 있는듯한 자아와 마주친다.
유명 사찰 위주로 둘러봤던 기억에 비춰 보면 너무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이 폐부를 찌르고 들어온다. 정글 같은 세상사에 한두번 마음을 다치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혼잡스러운 도량이면 사판승들이 거주하는 사찰로 생각할 수 있는데, 바람 소리만 차고 넘친다. 이곳은 이판승 몇이서 수행하는 공간 같다. 사판승인들 어떠랴. 누군들 절간의 살림을 챙겨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곳 미소사에서는 다 부질없는 것 같았다.
내세울만한 건축물 하나 없는 아담한 규모의 산사지만 진정으로 자아를 만나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여겨진다. 초면의 사람보다 이곳에서 만나는 초면의 나무들과 동물들이 오히려 더 낯설게 다가온다. 그만큼 자연을 접하며 살지 못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무엇을 더 가져보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세상살이일지 늘 묻곤 하지만 그럴수록 견물생심은 더욱 심하게 발동했다. 세속의 잔상일 뿐이었다.
비워가며 살아가라 했거늘 물질적 풍요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못하는 듯하다. 산사로 오는 길에 삶의 후기를 작성하고 있는 실버촌 풍경을 봤으면서도 쉬이 세상에 오염된 정신은 좀체 씻겨지지 않는다. 미소사는 필자의 눈에 그렇게 띄었다.
미소사는 꽃피는 시즌이면 겨울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황매화, 무늬 옥잠화, 팥꽃나무, 조팝나무, 양지꽃, 할미꽃, 미국산딸나무, 라일락, 동백꽃, 금장초, 노랑꽃 미나리아재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꽃들이 만개해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는 곳이다. 이제 만개를 서두르고 있는 듯하다. 미소사는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는 사찰로 보였다. 사찰 본채라야 극락전과 신선각, 범종루 정도가 전부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몇 곱절은 더 많은 도량일 것이다.
세속에서 흔히 말하는 랜드마크로는 깍지 낀 듯한 아치형 소나무를 꼽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시들어 회색빛 미소를 띄우지만 아치형 소나무 만큼은 살을 에는 듯한 한 겨울에도 표정 하나 변함없이 푸르름 그 자체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아가며 서로 의지하는 듯하다.
숨을 몰아 쉬며 암자에 도달하자 앞 마당 입구에 배너가 세워져 있었다. 세속의 기준이겠지만 ‘녹색사찰’이라는 명칭이 눈길을 잠시 붙잡았다. 미소사가 녹색 사찰을 내세운데는 온 생명의 벗, 환경보살의 길로 나아가기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비닐·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며, 음식은 먹을만큼 담아 먹고 남기지 않기 등 빈그릇 운동을 실천하겠다는 나름의 다짐인 듯 읽혔다. 암자를 방문하면 이런 다짐 배너를 보기는 처음이다. 암자가 오염 요인이 별로 없을텐데 이런 친환경 배너를 내걸었다는 게 사찰의 의지로 읽혀졌다.
하필 방문했던 날에는 바람이 거세서 그런지 극락전 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바지런을 떨며 정적만으로 더욱 깊어진 골짜기를 타고 하염없이 세속으로 하산해 간다. 저토록 제 몸을 두들겨 내는 소리가 심신을 관통해간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아래에 멈춰 섰다. 고개를 뒤로 제껴 풍경을 바라봤다. 명징한 소리들이 공중으로 흩어져 갔다.
그 풍경소리는 쇳소리의 차가움이 아니라 여태껏 졸음에 빠져 깨어나지 못한 마음의 곳간에 차곡 차곡 쟁여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마의 풍경 소리가 그날 오래도록 멎지 않은 것은 아마 세상의 소리를 들은 탓이 아니었을까. 사찰은 이미 자연의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자연의 섭리를 깨치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깨달음이 아닐까 한다. 작지만 정리정돈이 잘돼 있는 경내가 더욱 마음을 차분하게 주저 앉힌다.
풍경이 그냥 처마에 매달려 있는 것으로는 만족되지 않았는지, 제 맡은 소임을 다한다는 생각이다. 겨울바람이 그만큼 매섭다는 이야기 아닐까. 풍경이 그치질 않고 계속 울려댄다. 청아하고 명징한 풍경 소리 덕에 잠시 마음의 고요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고요의 끝 자락에 서 봤다. 세상은 크기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마음에 와 닿았다. 더 이상 형식에 집착하지 말고, 단 한 순간이라도 깊이로 살아내야 한다는 다짐을 해보는 계기가 됐다. 봄이 눈앞이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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