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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호 시와사람 발행인 |
서점이 사라지는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시각매체들, 즉 디지털의 발효로 종이책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졌으며, 책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다. 스마트폰의 기능이 발달되어 언제든지 유튜브와 온라인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는데 익숙해진 시대의 흐름이 골목서점의 문을 닫게 했다. 그리고 서점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서점을 통해 주문하면 손쉽고 저렴하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이다.
‘골목서점’ 또는 ‘동네서점’이라는 말이 정겹다. 동네 골목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기도 하고, 책을 애인이나 지인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책을 선물하는 일은 매우 품격있고 근사한 일이었다. 헌책방에 가서 뒤적거리다가 귀한 책을 발견하면 보물을 얻은 것처럼 큰 기쁨이었다. 누군가가 밑줄을 그으며 읽은 책을 읽는 일은 낭만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정겹고 친근한 골목서점들이 거의 사라졌다. 겨우 학교 앞에 문방구를 겸한 곳에 참고서를 진열한 서점들이 골목서점의 명맥을 잇고 있다.
지난해 연말, 책이 불티나게 잘 팔리는 시기가 있었다. 소설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몇 달이 지난 오늘은 서점들이 적막하다. 가끔 서점에 가면 그 공간이 너무 휑하다. 드문드문 책을 사러 온 사람들이 고맙고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한 진리이다. 누군가가 오랫동안 사색하거나 연구한 책 속의 지혜와 지식을 책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어 책을 읽는 일은 저자들에게 고마운 일이다.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쓴 책, 먼 나라 사람들이 쓴 책을 읽는 일은, 신비롭고 즐거운 상상력을 발현하는 정신 여행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사람들을 만나고. 먼 나라에 가지 않아도 세계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환상적인 여행도 할 수도 있어, 책 읽는 일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세상에서 제일 영양가 풍부한 식사가 되기도 한다.
물론 책을 읽지 않아도 시각매체를 통해 이러한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느끼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즉 책을 읽다가 마음이 가는 대목에 밑줄을 긋고 읽는 감성은 디지털 매체에서는 느껴보지 못한다. 그리고 손에 침을 발라가며 책장을 넘길 때의 촉감은 물성을 느끼게 하고, 손에 쥔 책의 부피와 무게감은 책을 소유하고 있다는 문화적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더불어 책들이 서재에 꽂혀있는 것들을 보면 그동안 읽었던 책들의 이름들이 지닌 이력과, 책과 함께 했던 시간, 그 시간을 통해 연상되는 수많은 서사들이 행복하게 한다. 그러므로 서재에 꽂힌 오래 전에 읽은 책을 펼치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서재에서 꺼낸 어떤 책 뒤에 골목서점의 이름과 구입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그 책을 통해 생쥐처럼 들락날락했던 골목서점이 떠오르고 마음씨 좋은 서점 주인이 떠오른다. 서점에 가면 늘 책을 읽고 있던 어여쁜 아가씨도 생각난다. 이처럼 골목서점은 단순하게 책을 파는 상점의 기능뿐만 아니라 사람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그런데 이러했던 골목서점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정말 소중한 무엇을 잃은 듯 마음이 쓸쓸하다. 서점들이 자취를 감춘 그 자리에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는 상점들이 채워져 있다. 자본주의의 풍경이 휘황찬란하다.
골목서점,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근대의 풍경 하나가 사라졌을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또는 옛 추억이 깃든 낭만적 풍경 하나가 사라졌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골목서점이 사라지는 모습을 방관하면서도 아무렇지 않는 이 시대는 지성의 양식을 공급하던 식당이 사라진 사건이며, 지성과 실존의 생태계가 위기에 처한 중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골목서점들이 자취를 감추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자본 생태계를 위한 탐욕에만 혈안이 되어 소중한 것의 상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골목서점이 옛날처럼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늘 책을 가까이 두고 읽는 일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어느 날 골목서점이 다시 우리 곁에 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