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앨범 낸 이소은 "유기농 음식 같은 음악도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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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앨범 낸 이소은 "유기농 음식 같은 음악도 필요하죠"

"동심 연결은 행운, 다시 느낄 통로 마련하고 싶었다…은은한 음악 좋아"
뉴욕서 8년 변호사 활동 후 스튜디오 설립…"내 삶의 다양성 음악으로 표현"

가수 이소은[이소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다디단 케이크도 좋지만, 무해한 유기농 음식 같은 음악도 분명 필요하죠. 대중음악이 가진 화려한 포인트 없이도, 잔잔히 듣는 이를 어루만지는 그런 음악이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서방님’, ‘오래오래’ 등의 히트곡으로 사랑받은 가수 이소은이 20년 만에 새 앨범을 냈다.

동시집 ‘나의 작은 거인에게’에 실린 12편의 시를 자신만의 감성과 음성으로 재해석해 ‘이소은 시선-노츠 온 어 포엠’(Notes on a Poem)에 정성스레 담아낸 것이다.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스쿨을 거쳐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느라 오랜 공백이 있었지만 이소은의 목소리와 감성은 여름 계곡물처럼 여전히 청량했다. 맑은 시구(詩句)는 구김살 가득한 어른들을 꾸짖는 죽비와도 같았다.

이소은은 최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이뤄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세월이 지나고 보니 동심과의 커넥션(연결)이 여전히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며 “작가 C.S. 루이스가 ‘언젠가 나이를 먹으면 동화를 다시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말처럼 나이가 들으니 동화와 동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생겨나더라. 이렇게 동심을 다시 느낄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는 아이들의 이해 수준에 맞춘 소재이지만, 그 내용은 현재 우리 어른들이 느끼고 겪는 것들을 향한 응원이기도 하다. 우리가 한 발 한 발 내디딜 수 있는 힘을 준다”며 “어른들도 공감할 수 있는 종합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소은은 이번 앨범에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해 동요 작곡가 레마(본명 김은선)와 함께 아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빚어냈다.

새로운 출발 앞에서 자기 자신을 향한 믿음을 노래한 타이틀곡 ‘컴퍼스’, 학교에 가지 못한 할머니의 삶이 애틋하게 묘사된 ‘등굣길’, 여름의 사과처럼 삶이 계속 영글어가기를 염원한 ‘여름의 사과가 말했다’ 등 16곡을 빼곡하게 수록했다. 이 가운데 4곡은 이소은이 직접 가사를 영문으로 번안한 것들이다.

이소은은 “(여섯 살 난)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며 “데모 2∼3개만 우선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2주간 100번 넘게 들었다. 삶에는 늘 우연히 만나는 운명이 있다고 믿는데, 이번 앨범이 그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는 기간인 20년 만에 앨범 작업을 하게 되니 얼떨떨하기도 하고, 모르는 것도 있었지만, 프레시한(신선한) 느낌도 받았다”며 “내가 최신 가요계 트렌드를 잘 몰라서 오히려 다양한 시도를 즐겁고 보람 있게 할 수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TV와 유튜브에서 자극적인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딸에게도 안심하고 들려줄 수 있는 ‘유기농 음악’에 대한 갈증이 그를 다시 녹음실로 불러들였다. 딸과 조카는 수록곡의 코러스에 직접 참여해 순수한 목소리를 뽐냈다.

이소은은 “아이들은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다 쉽게 받아들인다. 우리 딸이 이번 앨범의 노래 가사를 의미도 잘 모르면서 따라 부르고 있더라”며 “이걸 보면서 좋은 영향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아름다운 언어와 순수한 멜로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곡을 붙였지만, 앨범에 담은 16곡이 동요는 아니다.

이소은은 한 편의 뮤지컬 넘버를 연상시키는 ‘덤프트럭’, 1980년대 느낌이 물씬 나는 신스팝 분위기의 ‘예외 없이’, 재즈 사운드가 돋보이는 ‘이름 쓰기’ 등의 곡으로 1998년 데뷔 이래 27년 동안 쌓아 온 내공을 풍성하게 펼쳐 보였다.

크로스오버 밴드 ‘두번째 달’ 멤버 최진경, 프로듀서 양시온, 재즈 피아니스트 남메아리, 프로듀서 이기현, 첼리스트 홍진호 등 힘을 보탠 이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이소은은 “아이들도 나름의 눈높이가 있고, 당연히 좋은 음악을 선호한다”며 “아이의 취향을 발전시켜주는 좋은 음악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훅(Hook·강한 인상을 주는 후렴구)이나 ‘빠바밤’ 하는 하이라이트는 없어도 은은하게 몸에 배는 음악이 좋다”며 “심플하면서도 많은 감동이 나올 수 있게끔 사운드에 신경을 썼다”고 소개했다.

수록곡 가운데 ‘예외 없이’는 과거 ‘평화의 새’에서 ‘유해조수’로 전락한 비둘기를 소재로 한 가사가 예사롭지 않은 곡이다. 비둘기가 서울 시내에 급증한 1980년대의 분위기를 강렬한 신시사이저 사운드로 표현한 점도 흥미롭다.

이소은은 이 곡에서 “사람들은 비둘기가 싫다고 너무 대놓고 말한다 / 비둘기 기분은 안중에도 없이…/ 예의상 작게 말하자”라며 일상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재치 있게 꼬집었다.

그는 “너무 쉽게 툭툭 혐오의 말을 내뱉는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재미있는 소재에 ‘하하 호호’ 웃으면서 노래를 듣다 보면 확 느껴지는 게 있을 것”이라며 “그게 음악의 힘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소은은 “미국에서 살면서 한동안 관용의 문화가 정착했다가 다시 (유색) 인종이나 빈자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생겨났음을 매일 피부로 느낀다”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반감도 느껴진다. 누군가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함께 대화하는 방법을 만들어 나가는 게 옳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소은은 변호사로 활동하다 현재는 개인 스튜디오를 설립해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는 “8년을 (변호사 일을) 했다면 오래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트너 변호사가 되고 법조계에서 톱을 찍고 싶은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나의 스튜디오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며 “나는 청각 콘텐츠를 좋아하는데, 마침 딸도 오디오북 마니아여서 오디오 시리즈를 제작하고픈 생각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소은은 30일 서울 이화여대 영산극장에서 13년 만에 소극장 공연을 열고 오랜만에 팬들을 만난다. 이번 신곡과 오랜 기간 사랑받은 대표곡을 두루 들려줄 계획이다.

그는 “내 음악 장르가 왔다 갔다 하듯, 나의 삶과 정체성도 장르가 다양한 것 같다. 지난 과정은 때로는 어색하고 마찰도 있었지만, 익숙해지면 또 길이 열리더라”며 “이러한 삶의 모습이 이번 앨범에서 음악으로 표현된 것 같다. 가장 나다운 이야기를 나답게 공연에서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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