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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호 전남도의원 |
한, 미 관계를 살필 때 자주 카스라 태프트 밀약을 떠올리곤 하는 것은, 우리의 순진함, 제국주의 국가의 무서움을 경계하고자 함 때문이다. 정치가 직업인 필자는, 고대 아테네의 유명한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정치가의 자질로 “식견”, “설명하는 능력”, “조국”에 대한 사랑, “돈에 초연”할 것을 강조하는 것에 울림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지향점이 제국주의에 있기에 크게 평가하지는 않고 있다.
페리클레스가 아테네 번영의 상징 ‘파르테논 신전’을 재건하며 아테네를 제국으로 발전시켰던 데는 동맹국의 희생이 있었다. 페르시아와 전쟁을 주도하여 승리한 아테네는, 언젠가 있을 페르시아와 전쟁에 대비한다는 핑계로,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델로스 동맹’을 만들었다. 그리고 ‘동맹세’, 요즘으로 말하면, ‘방위 분담금’을 요구하였다. 동맹국들은, ‘동맹’을 처음에는 선의로 받아들였으나, 이내 그것이 아테네가 제국으로 가려는 야심에 있음을 알고 반발하였다.
그러자 페리클레스는 “아테네가 제국을 획득한 것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맹국들 스스로 찾아와 자신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약자가 강자에게 종속되어야 한다”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이치라고 강변하였다. 페리클레스는 부와 힘을 지닌 아테네의 위대성을 찬양하고 그 위대성을 가능하게 한 아테네의 호전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전쟁으로 조직해 낸 아테네 국가와 자신을 예찬하였다. 이렇게 동맹을 겁박하며 “뜯어낸” 동맹기금을 ‘파르테논 신전’ 건립에 유용하는 등 제국의 힘을 키웠다.
페리클레스의 탐욕에는 동맹의 지도자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아테네의 강박감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동맹을 압박하여 제국의 길을 지향한 아테네와 페리클레스에 대해 반감을 보였다. 오히려 스파르타가 결성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더 많은 호의를 보였다. 이 동맹은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과 달리 병력 제공을 중심으로 한 상호방위 체제였고,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보장되었기에 많은 도시국가의 지지를 얻었다. 결국, 양 진영 대립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고, 패배한 아테네는 몰락하였다. 상처뿐인 승리를 얻은 스파르타 또한 곧 붕괴되었다. 페리클레스가 추구한 제국화가 어떤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역사는 웅변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다. 한국전쟁 때 수만 명 미군이 전사하였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5천 명 넘게 희생하였다. ‘혈맹’이라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현재도 2만 5000의 주한미군이 주둔하여 동북아시아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 것은 역내 안정이 미국의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역내 안정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과연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까? 우리는 1조 5천억 원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 말하자면 ‘동맹세’를 부담하고 있다. 간접비를 제외한 순수한 직접경비이다.
최근, 우리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체포, 구금하고, 그리고 우리 외환보유고 4100억 달러 대부분에 해당하는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현금 투자하라고 윽박지르는 트럼프 대통령 모습에서, 아테네의 초조함을 숨기려는 페리클레스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는 IMF를 경험하였다. 경험이 없고, 당황하여 당시에는 국부를 쉽게 내놓았던 안타까움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윤석열이 범한 내란을 이겨낸 빛나는 ‘대한 국민’이다. 1930년대 중반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 등에 내버려졌던 우리 동포들은 살아남아 한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였다. 봉오동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 거기에 있었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2000만 민족 가운데 무려 5000만 명이 위대한 항쟁에 나섰다. 대단한 민족이다.
건강한 동맹의 미래를 위해, 아니 미국을 위해 우리 대한민국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부 도 비굴한 모습 보이지 말고 협상에 당당하게 임하라. 나중에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