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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기업에 다니는 B씨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했지만, 자신이 근무하던 자리는 이미 다른 직원으로 채워져 있었다. 회사는 B씨를 다른 부서로 발령냈다. B씨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인데 결국 자리에서 밀려났다”며 허탈해했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3월부터 본격 시행한 ‘일·생활 균형경영 공시제’(워라밸 공시제)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의 핵심 제도로 출발했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고 행정 감독이 이뤄지지 않아 ‘지침 수준의 제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워라밸 공시제는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 기업이 육아휴직·출산휴가·시차출퇴근 등 일·생활 균형 관련 제도운영 현황을 일반에 공개하도록 한 제도다.
가정 친화적 직장문화 확산을 유도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이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의 사업보고서를 통해 육아휴직 정보 등을 기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법적 강제력이 없는 탓에 사실상 ‘지침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시를 누락해도 제재 수단이 없어, 제도를 제대로 공개하는 기업은 10곳 중 6곳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위상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받은 코스피 상장사 848곳 사업보고서를 전수 분석한 결과, 육아휴직 정보를 공시하지 않은 기업은 221곳(26.0%), 정보를 일부만 기재한 기업은 77곳(9.1%)에 달했다.
공시 대상 상장사 10곳 중 3.5곳은 정보가 누락되거나 파악조차 불가능했다.
문제는 이러한 부실이 정부 스스로 발주한 사전 연구용역에서 이미 예견됐다는 점이다.
노동부가 발주했던 ‘일·생활 균형 경영공시제 도입 방안 연구’ 보고서에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참여를 의무화해도 법적 강제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담겼다.
또 “기업에만 부담을 지우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제도의 실효성을 위해 정부가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내용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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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당 지적이 정책 설계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은 채 시행되면서, 현재 공시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이는 결국 정부의 이원적인 정책 발굴 구조가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공시제는 고용노동부가 총괄하지만, 실제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관리하는 기관은 금융감독원이다.
그러다 보니 제도 시행 후 누락 여부를 점검할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감독 권한도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노동계는 정부가 실질적인 감독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제도가 ‘행정 성과용 통계’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제도만 정책을 시행하고 관리·감독이 뒤따르지 않으면 오히려 기업의 ‘면피용 자료’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공시를 누락해도 처벌이나 제재가 없어 기업들이 사실상 공개를 회피하고 있고, 법적 강제력이 없다 보니 사실상 무용지물이다”며 “공시 의무 강화와 감독체계 정비를 병행하지 않으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용성 기자 yo1404@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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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9 (수) 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