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최무진 ㈜나눔테크 대표 |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 목사에게서 들었던 ‘어려운 사람 곁으로 가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그의 사고방식의 중심에 남아 있다. ‘돈을 벌면 반드시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해야 한다’는 그때의 다짐은 훗날 그가 회사를 세우고 사명을 ‘나눔테크’라 붙인 배경이 됐다. 기술의 시작 지점이 언제나 ‘사람’이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도 이 시기에 이미 형태를 갖춘 셈이다.
사회생활의 시작은 의료기기 영업사원이었다. 처음 수많은 병원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온 것은 대부분 문전박대에 가까운 냉담이었다. 의사에게 명함을 건네고 돌아온 뒤 자신이 준 명함이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경험은 한동안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명함을 주워 의사를 찾아가 “제가 전달을 잘못해 다시 드립니다”라며 다시 건넸다. “그 순간 그냥 돌아섰다면 패배자가 된 것 같았을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굴욕조차도 버티며 다시 한 번 관계를 쌓는 쪽을 선택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이후 창업 과정에서 위기와 의심, 냉대를 견디는 버팀목이 됐다.
지난 2005년 오랜 고민 끝에 광주첨단과학국가산업단지에 나눔테크를 설립했다.
직전까지 최 대표는 의료기기 유통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매출은 늘었지만 ‘대리점의 운명’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자연스럽게 체감하고 있었다. 본사의 정책 변화나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 계약이 종료될 수 있는 구조, 즉 ‘파리 목숨’에 가까운 경영환경이 그의 생각을 바꿨다.
언젠가는 스스로 만드는 기업을 해야 한다. 그것이 창업 선택의 이유였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제조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창업 초기 선택한 아이템은 ‘엑스선 골밀도측정기’였다. 자녀들의 키 성장과 골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흐름을 읽고, 그는 의료기기 개발 경험을 가진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기술을 배웠다. 이후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고, 예상보다 빠르게 시장 반응이 왔다.
첫 모델이 매출 30억원을 기록하며 초기 기업 기반이 마련됐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의료기관 중심의 전문 의료기기라는 한계가 있었고 시장 확장성 또한 크지 않았다. 그는 기술 개발의 방향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정적 전환점은 2008년 자동심장충격기(AED) 분야에서 찾아왔다.
당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며 공공시설·학교·다중이용시설에 AED 설치가 의무화되기 시작했고, 시장은 본격적인 태동 단계였다.
![]() |
| 최무진 ㈜나눔테크 대표가 자사의 자동심장충격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GIST가 접촉했던 기업들이 사업 참여를 주저하면서 결국 기회는 다시 나눔테크로 돌아왔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GIST와의 공동개발을 통해 3년가량 개발에 몰두했고, 2011년 제품 상용화에 성공했다.
물론, 초기 시장 진입은 쉽지 않았다.
기존 시장은 필립스, 지앤이 등 글로벌 기업이 장악하고 있었고, 신생 기업인 나눔테크에게는 레퍼런스도 검증 이력도 없었다.
“출시 초기 반년 동안 한 대도 못 팔았다”는 그의 말처럼 시장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전환점은 2010년 현대자동차의 구급차 수출 프로젝트였다. 이라크 전쟁 지역에 투입될 900여 대의 구급차에 AED를 설치하는 사업에서 나눔테크가 기술력을 인정받고 최종 선정된 것이다.
한 달간의 기술 검증을 통과하며 나눔테크는 첫 대형 레퍼런스를 얻게 됐고, 이는 국내 시장에서도 신뢰를 얻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공기관, 학교, 기업 등을 빠르게 공략했고, 시장 인지도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나눔테크 AED의 차별성은 ‘일체형 구조’다. 배터리와 패드를 하나의 팩으로 구성해 위급 상황에서 더 빠른 부착과 충격 전달이 가능하도록 했다. 당시 시장의 주류가 분리형 구조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는 기술적 차별성이자 시장을 선점한 요소였다.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1분이 지날 때마다 급격히 떨어진다. 나눔테크의 일체형 AED는 이러한 시간의 벽을 실질적으로 줄여주는 기술이었다.
이러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나눔테크는 조달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해 왔으며 지금까지 학교·공공기관·기업 등에 약 4만5000대의 AED를 공급해왔다. 제조사 중 가장 많은 공급량을 기록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나눔테크는 R&D를 기업 성장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전체 매출의 약 20%를 매년 연구개발에 투입했고, 현재까지 30여건 이상의 특허를 확보했다.
최근에는 AI 기반 알고리즘을 활용한 차세대 심장제세동기 개발에도 착수했으며 특허 출원을 준비 중이다. 자동 분석의 정확도는 AED의 생명력과 직결되는 기술이기에 AI 기반 알고리즘은 나눔테크가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사업 범위는 점차 확대됐다. 거북목·경추 질환 증가 흐름을 반영해 경추 스트레칭 마사지기를 개발했고, 고주파 자극기 등 건강·재활 제품군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 |
| ㈜나눔테크 직원들이 입고검사장에서 제품 조립과 성능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
그는 창업 초기부터 “모두가 정직해야 회사가 오래 간다”고 강조했다. 거래처에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 기업, 직원에게는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 기회를 주는 기업, 사회적으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기업이 되겠다는 원칙이었다.
여기에 직원 복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더해졌다.
그는 제조업의 경쟁력을 “기계보다 사람의 손끝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눔테크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정년 60세 이후에도 재고용을 통해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숙련 인력이 쌓아온 경험을 쉽게 잃지 않기 위함이다.
직원 복지를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투자’로 바라본다. 실제로 정직한 노력에 대한 보상, 장기 근속자 중심의 인사제도, 제조업임에도 낮은 이직률 등은 나눔테크 조직문화의 특징으로 자리했다.
그는 이를 “기업이 잘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말한다.
판매수익 일부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한적십자사 등에 꾸준히 기부하고 있으며 청년 심장수술 지원, 교육기관 발전기금 기탁 등으로 사회적 책임도 실천하고 있다.
지금 나눔테크의 시선은 해외로 향하고 있다.
![]() |
| ㈜나눔테크의 자동심장충격기 |
최무진 대표는 “우리 제품 하나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기술이 사람을 돕고, 기술을 만드는 사람이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신념은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의 경영의 중심에 있다.
‘정직한 제품, 신뢰받는 기업, 생명을 살리는 기술’. 그는 이 세 가지가 나눔테크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라고 말한다.
“세계 어디에서든 우리의 기술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그의 말은 기술 기업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준다. 나눔테크의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하고 있다.
송대웅 기자 sdw0918@gwangnam.co.kr
송대웅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2025.11.16 (일) 22: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