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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쯤 전남의 한 군수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저는 재임 기간 동안 개발사업을 일절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른 지자체들이 개발과 성장을 주장하지만 저희는 개발을 하지 않고 아껴두려고 합니다. 언젠가는 정말 그 진가를 알아보고 제 발로 찾아오는 그런 자연과 함께하는 땅으로 남겨둘 요량입니다.” 정말로 그 군수는 이렇다할 개발사업 없이 조용히 임기를 마치고 떠나갔다. 후임 군수들은 아차 늦었다 하면서 뒤늦게 관광사업 등을 벌이며 주변 자치단체를 뒤쫓았지만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 군은 인구는 해마다 줄고 키우는 소가 사람보다 많은 어중간한 땅으로 남아있다.
최근 미국에서 기업을 하는 호남 출신 사업가들이 광주를 방문했다. 모처럼 고향에 왔다며 광주시에 한나절 관광 일정을 요청했다. 시 공무원들이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그쪽에서 무등산을 보고 싶다는 말을 해준 덕에 고민은 해소됐지만 다음 단계는 어떻게 무등산에 오를지가 또 걱정. 한 분이 어린 시절 타봤던 지산유원지 모노레일을 기억해 냈고 일행은 결국 그걸 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1980년에 운행을 시작해 45년이나 된 모노레일에 외지인을 태우는 것이 맞는지 망설였다. 그래도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 탑승을 결행해 큰 차질 없이 마무리가 됐다. 외지인들의 무등산 오르기는 이렇게 끝났지만 찝찝함은 남았단다. 이게 무등산 맛보기의 정답이자 최선인가.
유럽 여행길에 스위스 알프스에 오른 적이 있다. 물론 걸어서가 아니고 열차를 타고. 푸른 초원에 야생화가 핀 평지에서부터 3000미터 산정상까지 정말 신기할 정도로 기차는 잘 올라갔다.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봉우리 관람과 전망대에서의 컵라면은 잊을 수가 없다. 1896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갑오경장이 있던 때 그들은 알프스 산을 깎고 굴을 뚫어서 이 산악열차를 건설했다. 주민 편의와 전쟁용 대피소를 겸해 건설했는데 지금은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을 끌어 모아 수익을 올리는 ‘캐쉬 카우-돈 낳는 암소’ 역할을 하고 있다.
솔직히 광주의 관광은 답이 없다. 별의별 아이디어에 노력을 다해보지만 이렇다할 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광주와 더불어 ‘노잼도시’, 재미없는 도시로 일컬어지던 곳이 대전시였다. 그런데 대전은 대형 유통업체가 줄줄이 생기고 최근 성심당이라는 제과점이 전국적인 ‘빵지’ 성지로 급부상하면서 노잼도시 오명을 벗었다.
광주의 상징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면 단연 무등산이다. 외지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무등산 경험하기를 희망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의 전경이 아니라 무등산에 발길을 디뎌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행 길에 미리 등산화와 등산복을 가져오지 않는 이상 무등산에 발을 들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저 무등산을 바라보며 군침만 삼키다 발길을 돌리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광주시장 몇 명이 조용히 무등산 케이블카 설치 타당성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도 나쁘게 나오지 않았지만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덮어버렸단다. 어설프게 아젠다로 띄우려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무등산개발 반대운동이 일어나면 감당하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으로 짐작된다.
최근 광주시의회가 무등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용역을 실시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용역을 하는 것의 적절성 등이 관심이었지만 나중에는 케이블카 설치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용역 결과는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이 수익성이나 편의성 측면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쪽으로 나왔다. 모처럼 광주시의회가 이른바 광주의 ‘뜨거운 감자’인 무등산 케이블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결론을 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눈도 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흐지부지되는 상황이다.
노잼도시라 비판하면서도 무등산을 건드리는 것은 금기시하는 광주의 이중적인 정서가 수십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광주시의회의 최근 도발적인 무등산 케이블카 용역결과 발표가 논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 불이 붙었나 싶었다가 금세 꺼져버리는 성냥불 같다는 느낌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기믄 기고 아니믄 아닌’ 광주의 근성대로 무등산 케이블카 논의에 화끈한 불이 한번 붙어보면 어떨까.
2025.11.17 (월) 0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