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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정강철 |
위 지문은 교단(전 광주 광덕고 국어교사·2026 광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심사위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선 굵은 작품들을 발표해온 중견 소설가 정강철씨가 최근 펴낸 산문집 ‘기억나지 않는 것들’(문학들 刊)에서 밝힌 자서(책머리글) 전문이다. 우리네 삶은 기억나는 것과 기억나지 않은 것으로 갈릴 수 있다. 어쩌면 기억나는 것들이 삶의 전부처럼 여겨지지만 기억나지 않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일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대하는 기억 안팎을 대하는 자세는 균형적 접점을 균등감있게 잡아 끌며 가는 시간들인지 모를 일이다. 작가에게 기억은 단순하게 기억나는 일이나 현상이 아닌, 삶의 시간과 족적들이 얼기설기 엮어져 있는, 드러난 표면일 수 있고, 기억 밖의 일이나 현상은 속에 감춰진 표면일 수 있겠다. 혹은 단순하게 양 극단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얼마 전까지 교단에 섰었다. 지금은 다만 현직이 아닐 뿐 그에게 새겨진 시간들은 반 평생 교직에 있었다는 것이다. 세월이 지났고, 안일에 빠진 사유들은 모두 부끄러움이라는 기억의 창고에 보관 중인 듯 읽힌다. 제3부 ‘황토를 추억하다’에서 저자는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있으랴. 백발이 되어버린 교사에게 패기와 순정이 남아있을 리 없다. 수업에 지치고 아이들에 눌려 이젠 심드렁해졌노라 고백이라도 할라치면 스스로 놀란다. 문예반 지도와 같은 어리석은 고생은 다 때가 있는 법, 젊은 시절 딱 그 무렵의 일이었을 뿐 이제는 좀 편하게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면, 그렇게 닳아빠진 교사를 학생들은 어떤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인가.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다’고 기술한다.
그에게 또 하나 잊히지 않는 족적은 문학과 문학지도일 것이다. 같은 페이지(376쪽)에 보면 흔하디 흔한 문학적 향방을 결코 기술하지 않는다. 저자는 책 읽는 아이는 위험졌다고 적고 있다. 그 이유로 자신의 나이보다 정신적 키가 더 자랐을테니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 기기 삼매경에 빠진 또래 친구들이 시시해져 보이게 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과 사유의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말을 거는 대신, 결국 말수가 줄어 섬처럼 고립되고 나중에는 왕따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자신의 나이에 걸맞게 자라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 생각에 돌아올 일을, 모두 거창하게 끌고 갈 일이 아니라는 것으로 짐작됐다.
이에 앞서 2부 ‘문학동인 유감’에서 동인의 현대적 의미를 일갈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먼저 동인이란 지향하는 뜻이 같다고 해 모인 사람들로 규정한 뒤 생각이 다른 사람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걸 형상화해내는 작업을 함께하는 사람을 동인이라고 한다면 동인은 같은 시간에 같은 시선을 갖고 그래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처럼 저자가 펼치는 산문들은 상투적 시각을 탈피해 작가적 시선으로 톺아올린 일상의 서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생각지도 못한 사유들 혹은 모두 오른쪽만 바라볼 때 왼쪽을 바라보며 문제의 근원을 해부하고자 하는 작가적 고심, 끊임없이 써댄 결과 보통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문체들, 군더더기없이 촌철살인의 자세를 견지하며 전개한 스토리와 구성이 이 산문집에 모두 녹아있다. 먼저 읽은 분들은 “참 괜찮다”는 반응을 전해온다. 그것은 산문집 몇 페이지를 넘겨보면 그냥 안면이 있어서 인사치레로 한말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터다.
이번 산문집은 ‘빗물의 온도, 문장의 습도’, ‘기억나지 않는 모든 것’, ‘일탈도 힘이 된다’ 등 제3부로 구성, 64편의 알토란 같은 저자의 삶과 사유의 조각들이 실렸다.
김형중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는 표사를 통해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글쓰기의 한계를 고백하며 진실이나 가치는 오히려 기억 너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고백에는 여러 복선이 깔려 있다”면서 “고교 3학년 때 1980년 5·18을 겪었고, 군부독재와 싸우며 대학을 다녔으며, 참교육 운동의 한복판에 서야 했던 세대. 하지만 중심에 있지 못하고 늘 주변을 떠돌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자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대. 이 책에는 격랑의 시대를 함께 건너왔으나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온 자들의 삶이 절제된 언어와 진지한 사유로 빛을 내고 있다”고 평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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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9 (수) 1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