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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조혜수씨는 “공연은 계속 실연자들이 해줘야 살아 있는 콘텐츠가 된다고 생각한다. 만들어놓은 콘텐츠로 다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고, 광주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무대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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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인트리 구성원들이 공연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5·18 민중가요 작사·음악극 연출·연기 등 스펙트럼 확대
·“더 좋은 작품·창작활동으로 보답” …새 공연기획 목표도
“광주에서 뮤지컬을 한다는 건 어쩌면 불모지에 씨앗을 심는 일에 가까워요. 하지만 그 가능성을 알아봐 주신 분들이 있었고, 이제는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뮤지컬 단체 파인트리의 대표이자 배우 조혜수씨는 자신의 활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대에 서는 배우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글을 쓰고, 연출하며, 지역의 이야기를 음악극과 뮤지컬로 풀어내는 창작자로 걸음을 넓히고 있다. 그에게 무대는 꿈이 시작된 곳이자, 광주의 역사와 함께 성장하는 삶의 현장이다.
1995년생인 그는 올해 서른셋, 12년 차 배우다. 호남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TV 속 배우들을 동경했다. 화면 속 인물이 울면 시청자도 울고, 웃으면 함께 웃는 모습이 신기하고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라는 직업이 참 신기했어요. 누군가가 연기하는 인물의 상황에 사람들이 몰입하고 감동을 받잖아요. 저도 언젠가 화면 너머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죠.”
지금은 무대에 서고 있지만, 그의 첫 꿈은 영화배우였다.
카메라 앞에서 새로운 인물을 살아내면, 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가닿는 일을 꿈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는 무대 위에서 또 다른 감각을 발견했다. 관객의 숨소리와 배우의 몸, 음악과 조명이 한 공간에서 맞물리는 현장성은 그를 무대로 붙잡았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그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지역의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공연의 힘이었다. 특히 광주라는 도시가 품은 이야기,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와 마주하는 작업은 단순한 연기 이상의 경험이었다.
“주제 자체에 정말 가슴 아파하면서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배우로서 큰 경험이자 자산이죠. 광주는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가진 도시잖아요. 그 안에서 활동하면서 이렇게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 경험은 최근 창작 음악극 ‘나는 80년 이후 생이다-슈퍼스타’로 이어졌다. 이 작품은 1980년 이후 태어난 청년 세대가 오월을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음악과 이야기로 풀어낸 무대다. 2026년 광주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뮤지션을 꿈꾸는 밴드부 소리침공 학생들이 민중가요를 접하고, 오월정신을 주제로 한 앨범 제작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은 지난 2020년 5·18민중항쟁 40주기 기념앨범 ‘나는 80년 이후 생이다’와 2021년 두 번째 앨범 ‘청춘 속에 두려움 없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박성언씨를 중심으로 1980년생부터 1994년생까지 광주의 청년 음악인들이 5·18을 기억하기 위해 제작한 앨범이다.
첫 앨범이 기존 민중가요를 편곡해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부른 작업이었다면, 두 번째 앨범은 청년 예술인들이 직접 만든 창작곡으로 구성됐다. 그는 두 번째 앨범 수록곡 ‘금남로에 침 뱉지마라’의 작사에도 참여했다. 이 곡을 비롯해 ‘청춘출정가’, ‘오월 기다림’, ‘대한민국을’, ‘몽타주’ 등은 음악극 속 주요 넘버로 다시 무대화됐다.
그는 이 앨범을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라 이야기와 결합한 음악극으로 확장했다. 음악을 일부러 찾아 듣지 않는 사람들이 80년 이후 세대가 오월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창작자도, 들어주는 분들도 깊은 감동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음악회나 음원을 일부러 찾아 듣지 않는 분들도 있잖아요. 제가 뮤지컬 배우니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 앨범이 새롭게 쓰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뮤지컬보다는 앨범이 중심이 되는 음악극이 더 맞겠다고 봤죠.”
작업 과정은 그에게 오월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지만, 5월에 대한 깊은 공감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왜 어른들이 46년 전 일을 이야기하며 아직도 눈물을 흘리는지, 왜 오월이 계속 기억돼야 하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솔직히 깊은 공감대는 없었어요. 그런데 오월 어머니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만들면서, 광주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오월정신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길을 걷고 있는 것도 그날의 청년들이 희생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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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의 버스’ 영숙을 연기한 조혜수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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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혜수씨가 연출한 창작 음악극 ‘나는 80년 이후 생이다-슈퍼스타’ 무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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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혜수씨가 이끌고 있는 뮤지컬 단체 파인트리의 정기공연. |
그 말에 그는 밤을 새워가며 시리즈물 연극을 만들었다. 경험은 부족했지만 무대에 대한 절실함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작업은 주변 문화계 선배들과 관계자들의 눈에 띄었고, 이후 파인트리는 굵직한 사업들을 맡는 전문 뮤지컬 단체로 성장해갔다.
지역에서 뮤지컬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처럼 시장이 크지 않고, 제작 기반이나 관객층 또한 넓지 않다. 그는 이를 솔직하게 ‘불모지’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지역 관계자들이 신기하게 바라봐주고 기쁘게 받아들여줬다고 했다.
“뮤지컬은 서울 쪽에서 훨씬 활성화돼 있고 시장이 크잖아요. 여기는 그렇지 않으니까 어떻게 보면 불모지예요. 아마추어 단체로 창단하다 보니 학연, 지연, 혈연이 없었는데 SNS를 보고 연락을 주신 분들,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주신 지역 관계자분들이 많았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활동 원동력으로 배우로서 무대에 서고, 창작자로서 이야기를 만들며, 단체 대표로서 동료들과 함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 그 자체를 꼽았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기회와 깊이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공연 그룹을 이끌면서 힘든 순간도 많지만, 지금의 삶에 큰 행복과 감사함을 느끼고 있죠.”
그는 배우로서 앞으로도 꾸준히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다. 기회가 된다면 서울의 큰 작품 오디션에 도전해 존경하는 배우들과 함께 공연하고 싶은 마음도 품고 있다. 20대 때부터 간직해온 배우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시에 창작자로서의 길도 이미 시작됐다. 그는 광주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만들 계획이다.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되, 형식은 더 자유롭고 대중적으로 확장하고 싶다는 것이다.
“공연은 계속 실연자들이 해줘야 살아 있는 콘텐츠가 된다고 생각해요. 만들어놓은 콘텐츠로 다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고, 광주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무대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올해 계획을 묻자 그는 “벌려놓은 일이 너무 많다”며 웃었다. 배우 활동은 계속 이어가야 하고, 단체 대표로서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이미 만든 콘텐츠를 다시 무대에 올리는 일,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일, 또 다른 창작을 준비하는 일까지 그가 해야 할 일은 끝이 없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을 알아봐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고 싶다는 소망을 들려줬다. 단순히 지역에서 버티는 단체가 아니라, 남도의 이야기를 품은 예술인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지역에서 시작했지만 지역에만 머물지 않고, 남도의 이야기를 품고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는 예술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과 창작 활동으로 보답드리고 싶습니다. 남도를 빛내는 예술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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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8 (화) 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