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시인의 ‘36편 시’ 궤적 따라 삶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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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

이육사 시인의 ‘36편 시’ 궤적 따라 삶 깨우다

■전동진 시인 산문집 ‘나는, 겨울, 강철무지개’ 출간
시 밖 다양한 삶들 작품과 논문 섭렵 후 상상력 발현
‘광야’·‘청포도’ 등 시편 분석…유·무형적 자취 복원
독립운동가 외 생활인이자 실천가로서 진면목 조망

표지
독립운동가이자 저항시었던 이육사. 일찍이 교과서에서 ‘광야’나 ‘청포도’ 같은 시를 접하며 위대한 시인의 품격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의 널리 알려진 시편들 때문에 많은 유작들을 남겼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가 생전 남긴 시는 불과 36편에 불과했다. 그는 시만 쓸 수 있는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 아니다. 조국이 일제 식민치하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투사로서 조국 해방을 위해 싸웠던 그는 수필가, 소설가, 영화비평가, 문화인, 여행자, 경제인, 국제정치전문가, 정치인 등 많은 삶을 감내해야 했다. 시인이기 전에 인간 이육사의 삶의 행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산문집이 나왔다. 대학에 적을 두면서 시인이자 오랜 기간 문학 연구자로 활동을 펼쳐온 전동진씨의 산문집 ‘나는, 겨울, 강철무지개’가 문학들에서 최근 출간됐다.

이번 산문집을 낸 계기는 저자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광주학생운동의 주역 윤창하의 옛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윤창하의 집에서 이육사에 관한 자료를 찾고 읽으면서 저자는 삶과 생활, 사유와 사상, 시가 일치하는 한 인간이자 생활인으로서의 이육사에 매료돼서다. 여기서 언급된 윤창하는 15세에 일제에 붙잡혀 상상하기 힘든 고문을 당했으며, 출소 후에는 심신이 망가져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저자는 잠시 시인들이 ‘시인 이육사’만을, 역사가들이 ‘독립투사 이육사’만을 직시하려 했다는 것을 깨친다.

저자는 이육사의 시에 대해 “그중 절창이라 할 만한 대여섯 편을 빼면 나머지는 태작에 가깝다”고 하는 기존의 평가에 단호히 맞선다. 또 “이육사는 체질적으로 허약해 장기간 무장투쟁을 감당할 몸이 아니었다”고 한 평가에 “그들은 과연 이육사의 수필을 읽어보기는 했을까”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1939년 이육사가 1939년 ‘문장’ 10월호에 실린 ‘횡액’을 언급한다. 이육사는 10월호에서 “내라는 사람은 실로 천대받을 만큼 건강한 몸이라, 365일에 한 번도 누워본 기록이 없으니”라고 밝히고 있어 그의 다방면의 활동이 가능한 단면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육사의 시 36편을 따라가며 그의 시, 소설, 비평, 평론은 물론 관련 논문 200여 편을 탐색해 갔다. 한 편, 한 편의 시를 한 편, 한 편의 논문으로 완성했다. 36편의 시에 저자의 학문 안팎의 상상력이 오롯하게 담겼다고 보면 된다.

이육사의 시 ‘황혼’을 통해 지구행성인의 탄생과 행성적 연대를 읽어 내고, 시 ‘청포도’를 통해 생활의 윤리에 기반한 이육사의 삶과 문학세계를 짚어 낸다. 이육사가 무장투쟁을 선택했다면 17차례의 옥고를 치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육사가 무장이 아닌 ‘문장 투쟁’을 선택한 것은 목숨을 두세 배로 건 더 힘든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밝히려는 것은 다름 아닌 생활인, 그러나 누구보다 강직했던 실천가 이육사의 진면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인 전동진씨는 화순 출생으로 전남대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2003년 ‘시와 정신’ 신인상을 수상해 문단에 데뷔했다. 시집 ‘그 매운 시 요리법’ 외에 비평을 망라한 산문집 ‘서정의 윤리’, ‘서정시의 시간성 시간의 서정성’, ‘문사철 글쓰기’, ‘문화의 스타일·기술성·윤리성’, ‘포에톨로지-서정시의 위상학’, ‘김수영과 비트겐슈타인’, ‘메타인문학&메타인문학 어휘사전’ 등 다수를 펴냈다. 서울사이버대에서 ‘가족코칭상담학’을, 세종사이버대에서 ‘환경조경학’을 수학하며 학문적 배경과 경험을 넓혀 온 가운데 현재 전남대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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