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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민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 |
어쩔 수 없이 1~2년 단위로 집을 옮겨야 한다면, 옮겨 다니고 있다면 한 발 뒤로, 4대 보험을 받지 못한다면 한 발 뒤로, 가족 형태 때문에 학교, 또래 집단에서 놀림당하거나 곤란했던 적이 있다면 한 발 뒤로, 이성·애인이 있는 척한 적이 있다면 한 발 뒤로, 보증금 마련을 위해 부모님께 도움을 받은 적이 있거나 요청할 수 있다면 한 발 앞으로, 미래에 배우자가 응급수술을 받을 경우 보호자 동의서를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있다면 한 발 앞으로, 휴가철 해변을 자유로이 다닐 수 있다면 한 발 앞으로, 출신 지역을 말할 때 ‘그 지역 사람들은 좀~하더라’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면 한 발 뒤로, 식습관 때문에 모임을 피한 적이 있다면 한 발 뒤로, 면접 볼 때 결혼·출산 계획을 질문받은 적 있다면 한 발 뒤로, 보고 싶은 공연·영화를 볼 수 있다면 한 발 앞으로.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거나 평범한 질문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다. 그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다른 출발선을 갖게 한다. 지역, 성별, 가족, 학벌, 장애, 건강, 안전, 주거, 성 소수자 차별과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청년들이 선 위치의 차이를 만든다.
당시 실험에 참가한 청년들은 공공의료에 가까운 복지 시스템과 포괄적 차별 금지법 제정, 장애인 노동자, 경력단절 여성의 문제, 학자금 대출 문제 등을 이야기했다. 청년 일자리는 일자리 개수의 문제가 아니며 정책의 수혜자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아쉽게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들이다. 청년세대 내 격차는 더 넓어졌고 그 격차를 좁히는 것에 대한 해법이 여전히 사회적 책임보다 개인에 더 맞춰져 있다.
최근 한 중앙지가 ‘빚에 갇히다’라는 주제로 청년 부채 문제를 3주간 기획 보도했다. 부족한 소득을 메꾸기 위해 잠시 빌리려 했던 소액의 빚이 불안정한 소득으로 더 큰 빚으로 늘어나는 과정과 원금을 다 갚을 만큼의 금액을 이자로 내고 있는 현실들을 다뤘다. 취재 기자가 대부업체에 취업해 추심 과정의 현장도 다뤘다. 해당 기사에 대한 관심과 응원도 뜨거웠지만 한 편으로 그들이 진 빚에 대한 조롱과 비난에 댓글도 적지 않았다. 빚이, 돈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빚이라는 숫자이지만, 빚을 지게 된 과정은 숫자처럼 객관적일 수 없다. 가난은 위기에 약하고 위기는 예측 수준을 항상 넘어선다. 노력이 한순간의 위기에 쉽게 무너지는 것도 가난 혹은 취약한 기반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다. 누군가에게 당연함이 누군가에게 당연하지 않음을, 나의 출발선이 나의 노력만으로 갖게 된 것이 아님을, 빚을 낼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의 상황을, 혹 어쩔 수 없는 빚으로 어려움에 처했다면 그 누군가가 빚의 무게에 무너지지 않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특히 이들의 이야기가 빚 있는 청년이라는 하나의 수식어로 설명될 수 없는 것 또한 말이다.
청년 기본법 통과 후, 올해로 3번째 청년의 날을 맞았다. 9월 17일 청년의 날(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을 기념해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이뤄졌다. 목적은 사라지고 행사만 남은 수많은 이벤트를 보는 마음이 그리 반갑지 않다. 청년 기본법은 청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함임을 기본이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5년 전, 손잡고 나란히 서 있던 이들이 손을 놓고 서로 앞과 뒤로 나눠져만 했던 56개의 질문이 내포하는 문제. 그것들은 사실상 청년세대가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할 청년정책이자 미래 사회 정책의 중요한 과제이다. 어디에 선 청년이던, 그가 서 있는 위치가 위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화려한 이벤트 속 정작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