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84년 백악관 집무실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및 DB 금지] |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 민주당 측 ‘대응 연설자’로 나선 얼리사 슬로킷(미시간) 상원의원이 연설 중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며 1980년대 제40대 대통령을 지낸 로널드 레이건을 소환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내건 외교안보 슬로건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는 수십년간 미 공화당 외교 정책의 상징과도 같았다. 냉전 시기 소련 같은 적들이 미국이 언제든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믿도록 한다면 그들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의원들은 공화당이 여전히 ‘레이건의 당’이며 ‘힘을 통한 평화’가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의제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있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5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을 소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노선과 맞물려 최근 백악관과 의회에서 수사적, 이념적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힘을 통한 평화’를 노골적으로 강조해왔다. 백악관이 전날 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무기 및 정보 제공 지원을 중단한다면서 내놓은 보도자료 제목도 ‘트럼프 대통령은 힘을 통해 평화를 선도한다’였다.
지난달 공화당의 주요 정치 일정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례행사 연설에서도 트럼프는 무역전쟁에 대해 “관세는 강력한 외교 도구”라며 “전 세계가 힘을 통해 평화를 되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캐나다, 멕시코 등 전통적인 동맹국들과 관계를 단절하고 오랜 적성국이었던 러시아와 손을 잡는 외교 행보를 두고 ‘힘을 통한 평화’의 의미가 왜곡됐다는 비판과 우려가 워싱턴 정가에서 커지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이런 기류에 따라 공화당 내에서는 당의 오랜 외교 정책 교리가 변질될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야당인 민주당에선 심지어 공화당 출신인 레이건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마저 감지되고 있다.
케빈 크레이머(공화·노스다코타) 상원의원은 WP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역사에 대한 관점을 잃고 있다는 것이 좀 걱정된다”며 “세상의 갈등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테이블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애덤 시프(민주·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은 지난주 의회에서 “만약 (레이건 전 대통령이) 오늘날 공화당이 우크라이나라는 민주주의 동맹국에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본다고 상상해보라”고 했다.
짐 코스타(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지난주 “레이건의 당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공화당이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화당 내 비평가들과 중도파 의원들은 핵심 외교 원칙을 둘러싼 이런 불협화음은 당내에서 부상하는 고립주의자들과 보다 전통적인 지지자들 간에 벌어지는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의 마이클 소볼릭 수석연구원은 “‘힘을 통한 평화’는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지만 ‘미국 우선주의’가 실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논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1기 정부에선 ‘미국 우선주의’와 ‘힘을 통한 평화’가 상호보완되도록 노력한 이들이 있었지만, 2기 정부에선 새로운 수사가 힘을 얻었고 극우 트럼프 동맹이 추진하는 미국 우선주의가 1930년대 미국의 고립주의에 더 가까워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공화당 내 충직한 레이건주의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피하면서, 보다 미묘한 방식으로 전통적인 외교 정책 비전을 재조명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연합뉴스 @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