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위기의 여수·광양항 해법은? <1>침체의 늪 지속
검색 입력폼
광양

[특집]위기의 여수·광양항 해법은? <1>침체의 늪 지속

주력산업 부진에 물동량 줄고 경쟁력 흔들
석유화학·철강·자동차 수출·환적화물 등 타격
부산항 독주 성장 정체…대응 전략 마련 시급

국내 최대의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단과 부두
여수국가산단 전경


광양국가산단 전경
국내 최대 석유화학·철강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항만으로 성장해온 여수·광양항이 최근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국내외 경기침체,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와 중동 산유국의 증산까지 겹치면서 석유화학 제품 수출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수 석유화학 제품은 여수·광양항 전체 물동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왔는데, 이 부문이 흔들리면 항만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단순한 업황 부진을 넘어 항만 물동량 구조 자체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게다가 오는 2029년에는 컨테이너 자동화 부두 개장이 예정돼 있지만, 정작 물동량이 줄어드는 ‘시설 과잉·물량 부족’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본보는 5회에 걸쳐 여수·광양항의 현안을 진단하고 해결방안 등을 제시해 본다.



여수·광양항은 연간 2억7000만t 안팎의 물동량을 처리하며 부산항에 이어 전국 2위의 종합항만 지위를 지켜오고 있다. 컨테이너, 석유화학, 철강, 시멘트 등 다양한 화물을 처리하며 국가 경제와 수출입 물류를 떠받쳐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광양만권의 주력 산업인 석유화학과 철강이 모두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물동량 증가세가 꺾이고 정체 내지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실제 물동량 추이를 보면 2018년 3억33만t, 2019년 3억1103만t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20년 2억7540만t, 2021년 2억9545만t, 2022년 2억7236만t, 2023년 2억7652만t, 2024년 2억7439만t으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1억3220만t을 처리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억3935만t보다 5.1%(715만t) 줄어든 수치다.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올해 전체 물동량은 2억6440만t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같은 감소가 일시적인 경기 변동에 따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과 중동 산유국의 공급 확대에 따른 석유화학 제품 가격 하락, 국내외 수요 둔화로 인한 생산 감축, 그리고 이에 따른 원료 수입·제품 출하 감소가 모두 맞물리면서 구조적인 하락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수익성 악화, 공장 가동률 하락, 인력 감축 등의 연쇄적인 파급효과가 불가피해지고 있으며, 이는 곧 항만 물동량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수·광양항의 화물 구성은 석유화학 원료 및 제품이 52%, 철강 원료 및 제품이 34.6%, 시멘트 등 기타 화물이 13.4%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석유화학 업종의 경기 변동이 곧 항만 성적표로 이어지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여수·광양항 물동량 감소세는 곧바로 배후 산업단지의 위기와 맞닿아 있다. 여수석유화학산단의 올해 상반기 생산실적은 42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4조원보다 2조원 줄었다. 제철산업의 중심인 광양국가산단 역시 10조2000억원에 그쳐 전년 동기(11조4000억원) 대비 1조2000억원 이상 감소했다.

석유화학업계의 심각한 경기 부진과 글로벌 철강 수요 둔화가 동시에 겹치면서 주력 업종의 생산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결과다. 이 같은 산업단지 생산 실적 하락은 자연스럽게 항만 물동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으며, 항만의 성장세를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컨테이너 물동량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241만TEU를 기록한 뒤 줄곧 내림세를 보이며 2022년과 2023년에는 나란히 186만TEU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201만TEU로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올 상반기 처리량은 102만TEU로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으나, 석유화학 제품 수출이 부진한 탓에 하반기 전망은 밝지 않다.

한국산업단지공단 통계에 따르면 여수석유화학단지의 수출 실적은 지난해 상반기 164억달러에서 올해 상반기 142억달러로 13.4% 감소했다. 업계는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회복을 모색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생산량과 수출이 대폭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컨테이너 물동량 역시 동반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광양항의 또 다른 주력 화물인 자동차 수출 역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광양항은 평택항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자동차 수출 거점으로, 최근까지 연간 100만대 이상을 꾸준히 수출하며 성장세를 이어왔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수출 물량은 49만대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줄었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현지 공장에서 직접 생산을 시작하면서 수출 물량이 감소한 영향이 크다. 향후 미국 내 생산 확대와 보호무역 강화가 이어질 경우, 자동차 화물 물동량도 장기적으로 감소세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환적화물 감소다. 환적화물은 항만의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는 핵심 요소이지만, 최근 몇 년간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37만TEU였던 환적화물은 2023년 25만TEU로 줄었고, 올해 상반기에는 12만TEU에 그쳤다. 전년 동기 대비 22.1%나 감소한 수치다. 이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여수·광양항에 기항하기 어렵다는 점과 맞닿아 있다. 진입항로 수심이 충분치 않아 선박이 일부 화물을 다른 항에서 내려야 하는 불편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선사들의 기항 회피, 즉 ‘스킵’ 현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환적화물 유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면 부산항은 같은 기간 꾸준히 컨테이너 물동량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2440만TEU를 처리하며 전년보다 5.4% 성장했고, 올 상반기에도 1268만TEU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했다. 환적화물 비중도 해마다 늘고 있어 부산항의 독주 체제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인천항은 올해 들어 성장세가 주춤했지만, 여수·광양항에 비하면 여전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이다.

여수광양항만공사 관계자는 “여수·광양항의 물동량은 대부분 호남지역 주력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며 “특히 석유화학업계의 경영 악화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질 경우 원료 반입과 제품 수출 물량이 동시에 줄어들어 항만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광양=김귀진 기자 lkkjin@gwangnam.co.kr         광양=김귀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광남일보 (www.gwangnam.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