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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노머스에이투지(AUTONOMOUS A2Z), ‘로이, 코이’(ROii, COii) |
(재)광주비엔날레(대표이사 윤범모)가 12년 만에 다시 주관하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서로 다른 ‘나’와 ‘너’를 이어주는 ‘포용디자인’(Inclusive Design)을 주제로 19개국 16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장애와 연령, 성별, 문화적 배경과 관계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포용디자인의 핵심 원리 덕분에 가족 단위 관람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은 물론 장애인 단체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디자인이 더 이상 장식이나 기능 개선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조건과 차이를 가진 존재를 끌어안는 방법임을 강조한다. 이번 전시는 일상을 채우는 작은 생활용품부터 모빌리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개별적인 ‘나’와 동시에 ‘너’인 우리를 인식하는 디자인의 방식을 조명한다. ‘세계, 삶, 모빌리티, 미래’ 네 개의 키워드로 보는 포용디자인은 인간 생활과 존재 방식에 스며든 디자인이 누군가에게 생활 속 장벽이 될 수 있음을 일러주고, 우리에게 다른 감각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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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액터스, ‘고요한M_마음을 잇는 따뜻한 이동’ |
국내외 여러 디자인대학의 결과물을 소개하는 1전시관의 통지대학교(Tongji University) 출품작 ‘닫힌 문 너머로: 고립, 은둔청년들의 독백에서 대화까지’(2025)는 반복된 좌절과 실패를 겪은 중국의 고립, 은둔 청년의 경험을 담은 심층 인터뷰를 재구성한 작업이다. 중국 젊은이들이 즐겨 이용하는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홍슈’에 올라간 게시물은 직접 대면하고 대화하기를 어려워하는 청년들에게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콘텐츠이자 대화로 기능한다. 전시장에 방문한 관람객들이 직접 작성한 고립, 은둔 청년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도 함께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환대하는 포용디자인을 선보이는 2전시관에서는 공존하는 해법을 설명하는 의미있는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코액터스(Coactus)의 ‘고요한 M: 마음을 잇는 따뜻한 이동’(2020)은 청각장애인 운행하는 택시 서비스로 누구나 차별없이 고요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이동 서비스를 소개한다. 차내에 설치된 태블릿을 통해 청각 장애인 드라이버와 목적지 및 하차지점에 대한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장애 등급이 없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기 어려운 고령자와 교통약자가 ‘블랙캡’을 타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점이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휠체어를 탄 채로 승하차가 가능한 ‘블랙캡’ 모델은 3전시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포용디자인의 영역은 가정과 일터, 공공시설물 등 공동체에도 적용된다. 푸르메재단의 ‘세상에 없던 일자리를 디자인하다’(2025)는 발달장애 청년들이 일자리를 영위하며 존중받는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푸르메소셜팜’을 다룬다. 토지, 민관협력, 기업 등의 참여로 이루어진 포용의 울타리를 상징하는 지붕 구조물 아래 ‘푸르메소셜팜’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들의 사진과 삶에 대한 다짐을 통해 ‘진짜 일’에 대한 가치를 보여주는 소셜팜의 순기능을 보여준다. 농장 건립비의 3분의 1인 50억 원을 기부한 SK하이닉스, 토지 기부자, 모종 기부자, 여주시청 공무원, 소셜팜에 대한 학술적 조사 연구를 실행하는 연구자와 직무교육 담당자까지 이들의 참여와 실천이 개인의 삶과 지역 공동체를 생성한 근원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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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메재단, ‘세상에 없던 일자리를 디자인하다’. |
러플(LUPL)의 ‘인클루시브 패션-모두를 위한 옷에 대한 제안’(2025)은 의복을 입는 것조차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시작했다. “옷 입는 게 불편하지만 결국 예쁜 옷을 입고 싶다”는 장애인 인터뷰에 착안해 입기도 편하고, 패션 감각이 있는 옷을 만들었다. 좁은 목선을 넓히는 사이드 지퍼, 물건이 빠지지 않는 깊은 주머니, 와이드 밴딩 등 휠체어나 의족을 사용하는 장애인이 옷을 입을 때 겪는 불편함을 세심하게 개선했다. 아이헤이트먼데이+이노션의 ‘점자 양말’(2021)은 외출 시 양말의 짝과 색상 구별에 어려움을 겪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획이다. 양말 바닥면에 ‘믿음직한 블루’, ‘신비주의 라벤더’ 등 색상 정보와 색상의 감상적인 느낌을 점자로 표기해 시각장애인이 그날의 기분에 맞게 양말을 골라 신을 수 있다.
인간의 기본 권리가 된 이동성을 실현하는 무인 셔틀도 있다. 3전시관 입구에 전시된 ㈜오토노머스에이투지(AUTONOMOUS A2Z)의 ‘로이, 코이’(ROii, COii)(2025)는 귀여운 생김새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중 ‘로이’((ROii)는 다양한 상황을 감지해 사고를 예방하는 안전 시스템이 탑재된 자율 주행 전기버스다. 휠체어 이용자를 포함해 누구나 쉽게 탑승할 수 있는 낮은 바닥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실시간 교통 정보와 연동돼 최적의 경로를 운행되기 때문에 노선이나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한 운행이 가능하다. 대중교통이 닿기 어려운 도로 상황이나 지역에 이동의 기회를 제공한다. ‘로이’(COii)는 ‘청계A01’라는 이름으로 지난 23일부터 청계광장에서 광장시장까지 무료 시범 운행 중이며 곧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코이’(COii)는 물류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안정적인 배송 서비스를 위해 고안된 물류 디바이스다. 에어리스(Airless) 타이어를 적용해 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환경에 적합하며, 타이어 정비에 드는 시간 역시 최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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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민욱(영국왕립예술학교, RCA), ‘불균형 시소’. |
로봇 기술을 통해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다양한 신체적 능력을 요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되는 작품도 있다. 1전시관 작품 중 단연 눈길을 끄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산업디자인전공의 ‘레버넌트’(Revenant)(2025)는 화재로 신체를 잃은 소방관에게 새로운 신체를 부여하는 사이보그 기술을 상상한 작품이다. 인명 사고를 예방하고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바이퍼팩’(Viper Pack)(2025)은 군 작전 환경에서 팔의 기능을 보완하거나 대체하기 위한 외골격형 로봇 장치이다. 뱀 형태의 분절을 적용한 구조물이 어깨부터 팔 전체에 유연하게 부착되어 부상 시 팔의 역할을 하며 평소에는 공구나 장비를 보조할 수 있다.
모든 생명과 환경을 고려한 포용디자인의 미래를 다루는 4전시관에는 혼자 탈 수 있는 시소가 놓여있다. 팽민욱(영국왕립예술학교, RCA)의 ‘불균형 시소’(2025)는 시소의 좌우 무게가 비대칭으로 설계되어 혼자서도 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둘이 타야 하지만 ‘함께할 수 없음’에 적응한 구조물이 관계를 말할 수 없을 때 배제의 경험이 더 뚜렷해짐을 상상한다. 출생률이 낮아지고 관계의 밀도가 희미해지는 동시대에 어떤 연결을 꿈꾸고 나아가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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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플, ‘인클루시브 패션-모두를 위한 옷에 대한 제안’. |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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