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 농산물로 나누는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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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농산물로 나누는 추석

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정성욱 목포농협 용해지점장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1993년 발표된 노래 ‘신토불이’의 첫 구절은 단순한 트로트의 형식을 넘어, 시대의 아픔과 농민의 절규를 담아낸 민중가요였다. 당시 우루과이 라운드(UR) 타결로 농산물 시장 개방이 추진되면서 쌀값은 폭락했고, 수확을 앞둔 농민의 시름은 깊어졌다. 그러나 정치권은 정쟁에 몰두했고, 농민의 목소리는 외면당했다.

이 노래는 그런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우리 땅에서 난 곡식과 음식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했다. ‘우리 땅과 몸은 둘이 아니다’란 철학에서 출발한 가사는 민요풍의 리듬에 실려 시위 현장에서 직접 불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단순한 유행가가 아닌, 농민의 삶을 대변하고 시대의 상처를 위로한 노래였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또다시 우리 농업의 가치를 되새겨야 할 시점에 서 있다.

다가오는 추석, 우리는 자연스레 가족과 이웃, 그리고 고마운 분들을 떠올리게 된다. 명절 선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명절을 앞두고 쌀, 고기, 과일 등 먹을거리를 나누며 풍요로운 명절을 함께했다. 오늘날에도 먹을거리를 선물로 받는 일은 여전히 따뜻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것은 배를 채우는 양식이자, 보내는 사람의 정과 농업인의 땀방울이 함께 담긴 선물이기 때문이다.

최근 소비자의 소비 패턴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가격과 편의성 중심의 소비에서 벗어나, 품질과 가치, 윤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누가 만들었는가’, ‘어디서 자랐는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산자의 얼굴이 보이는 우리 농산물에 대한 신뢰와 선호가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식재료 선택을 넘어, 건강과 환경, 지역 공동체를 생각하는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수입 농산물은 저렴한 가격과 대량 공급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장거리 운송으로 인한 신선도 저하, 생산 과정의 불투명성, 그리고 국내 농업 기반을 위협하는 문제점도 함께 지니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이상기후와 국제 정세 불안으로 인해 수입 농산물의 가격 변동성과 공급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우리 농산물의 안정성과 품질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우리 농산물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햇과일, 햅쌀, 한우, 전통 장류, 지역 특산물 등은 품질도 뛰어나고 정성도 가득하다. 무엇보다 생산자의 손길이 느껴지는 믿을 수 있는 먹거리다. 이런 선물은 받는 이에게 건강과 따뜻함을 전하고, 주는 이에게는 우리 농업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안겨준다.

하지만 우리 농업은 지금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고령화와 인력 부족은 농촌의 일손을 줄이고, 기후 변화는 작물의 생육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이상기후로 인해 과일 작황이 불안정하고, 생산비 상승으로 농가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 농산물을 소비하는 일은 단순한 구매를 넘어, 농업인을 응원하고 농촌을 지키는 실천이 된다.

이에 발맞춰 농협중앙회는 최근 창립 제64주년 기념식과 함께 ‘농심천심(農心天心)운동’ 선포식을 개최했다. 농업인과 소비자, 정부·지자체가 함께 농업·농촌 가치 확산, 농업소득 증대, 농촌 활력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구현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농심천심운동은 우리 농산물 애용 운동인 신토불이(身土不二)와 도시·농촌 간 교류 확대에 기여한 농도불이(農都不二)의 정신을 계승한 운동이다. 이는 농업·농촌·농협의 존재 이유와 방향을 제시하는 출발점이며, 농협법 제1조의 정신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농협법 제1조는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역 농협이나 로컬푸드 직매장을 활용하면 중간 유통 과정을 줄여 생산자에게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가고, 소비자는 신선한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이는 ‘협동조직을 통한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농협법의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길이기도 하다.

더불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서도 농수산업 종사자 보호를 위해 농수산물 및 그 가공품에 대한 예외 조항이 마련돼 있어, 명절에는 30만원까지 선물할 수 있다.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마음 편하게 농수산물 선물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한우·굴비·인삼 세트 등은 품격과 정성을 동시에 전할 수 있는 훌륭한 선택이다. 이번 추석, 우리 농산물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 그것은 곧 우리 농업을 지키는 선택이며, 농촌의 미래를 밝히는 작은 불씨가 될 것이다.

들녘을 스친 바람과 땀방울의 시간이 담긴 우리의 식탁이 풍성할수록, 농업인의 삶도 풍성해진다. 우리 농산물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웃는 따뜻한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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